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Category: 오늘의시
[오늘의 시] ‘등燈에 부침’ 장석주
1 누이여, 오늘은 왼종일 바람이 불고 사람이 그리운 나는 짐승처럼 사납게 울고 싶었다. 벌써 빈 마당엔 낙엽이 쌓이고 빗발들은 가랑잎 위를 건너 뛰어다니고 나는 머리칼이
[오늘의 시] ‘신발 깔창’ 박노해
신발 끈을 묶고 정원 일을 나서는데 어라, 새로 산 신발 깔창이 반항한다 깔창을 꺼내 보니 날 빤히 바라보며 밟히기 싫다구, 나 밟히기 싫다구요 그래, 안다
[오늘의 시] ‘매미를 읊다'(蟬唫) 정약용
허물은 벗어버려 나무 끝에 매달고 억센 발톱으로 나뭇를 단단히 잡고 있나니 그대가 날개 돋아 신선이 되는 날 예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걸 본 사람이 없다오 委蜕空空樹杪懸
[오늘의 시] ‘처서’ 권영오
배 지난 자리를 물이 다시 덮어주듯 그대 지난 자리에 여치가 와서 우네 울음은 저기 저 멀리 당신도 저 멀리
[오늘의 시] ‘이런 날, 할머니 말씀’ 박노해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있어도 별일 아닌 걸 가지고 무슨 대단한 사태인 양 호들갑을 떨고 악소문을 퍼뜨리고 불안과 불신과 공포의 공기를 전하며 동네와 장터를 흉흉하게
[오늘의 시] ‘봉숭아여’ 나태주
봉숭아여, 분꽃이여, 외할머니 설거지물 받아먹고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라던 풀꽃들이여 여름날 꽃밭 속에 나무 의자를 가져다 놓고 더위를 식히기도 했나니, 나도 한 꽃나무였나니
[오늘의 시] ‘섬집아기’ 한인현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아이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오늘의 시] ‘그 여름의 끝’ 이성복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오늘의 시] ‘비 오는 날의 기도’ 양광모
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때로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사랑과 용서는 폭우처럼 쏟아지게 하시고 미움과 분노는 소나기처럼
[오늘의 시] ‘마음 하나’ 조오현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다 들었다 다 놓아도 빛깔도 모양도 향기도 없는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더라
[오늘의 시] ‘홍수가 쓸고 간 학교’ 박노해
마을에 큰 홍수가 있었다 아직 다 복구하지 못한 학교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모여 수업을 한다 무슨 사연일까, 자꾸만 문밖을 바라보는 소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고 만 걸까
[오늘의 시] ‘참 오래 걸렸다’ 박희순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게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나
[오늘의 시] ‘침목’ 조오현 “끝끝내 받쳐온 이 있어”
아무리 어두운 세상을 만나 억눌려 산다 해도 쓸모없을 때는 버림을 받을지라도 나 또한 긴 역사의 궤도를 받친 한 토막 침목인 것을, 연대인 것을 영원한 고향으로
[오늘의 시] ‘자화상 그리기’ 박노해 “고난도 비난도 치욕도 다 받아 사르며 가라고”
광야의 봉쇄수도원 수녀님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모습이라며 몽당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려 보냈는데 이게 나야, 웬 이쁜 외계인, 혼자 웃다가 번쩍 다시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