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방랑자의 꿈…귀향인 오디세우스 혹은 노마드 아브라함?

[아시아엔=이우근 국제PEN 한국본부 인권위원장, 숙명여대 석좌교수]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 들고 훌쩍 집을 떠나 낯선 곳을 이리저리 떠도는 꿈에 가끔 빠져들곤 한다. 집이 싫어서일까. 일상이 따분해서일까. 아니다. 방랑하는 노마드(Nomad)의 거칠고 고독한 길녘이 문득 그리워져서다.

​길은 관광객에게 이동하는 통로에 불과하지만, 노마드에게 길은 삶 그 자체다. 관광객은 여행경비를 계산하지만, 노마드는 비용을 계산하지 않는다. 그날그날의 일용할 양식에 감사할 따름이다.

관광객은 기념품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노마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낯선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걷고 또 걸을 뿐이다. 관광객이 시간에 쫓기며 일정표에 끌려다닐 때, 노마드는 도회지의 시간에서 벗어나 자연의 대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노마드는 자유인이다.

목마(木馬)의 계략으로 10년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또 다른 10년 동안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이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다. 20년 만에 아내와 아들을 얼싸안는 오디세우스의 뜨거운 격정을 상상해보라. 가슴 뭉클하지 않은가.

외눈박이 거인의 섬나라 키클롭스에서의 힘겨운 탈출,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가 버티고 있는 메시나 해협의 아슬아슬한 통과,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들을 꾀어 바다에 빠뜨리는 사이렌의 유혹…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견뎌내며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호메로스는 서사시 <오디세이아>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소설을 읽은 사람보다 그 소설로 박사학위를 딴 연구자들이 더 많다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는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을 쓴 현대판 <오디세이아>다. 오디세우스의 10년 유랑을 단 하루에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으로 뒤바꾼 <율리시스>는 영문학의 높은 산봉우리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단테는 <신곡>에서 오디세우스가 자기의 재능을 목마라는 속임수의 잔꾀로 타락시켰다는 이유에서 그를 지옥에 떨어뜨린다. 귀향의 끝은 지옥이었던가.

​‘타자(他者)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리스인 오디세우스와 고향을 떠나는 히브리인 아브라함을 비교한다. 서구철학에서 타자와의 만남은 ‘주체와 자아(自我)의 인식’ 안으로 환원되고, 헤브라이즘은 그 폐쇄적‧자기중심적 삶을 깨뜨리라고 요구한다. ‘개인과 주체의 사상’으로 축소되는 헬레니즘과 ‘공동체와 연대(連帶)의 정신’으로 확장되는 헤브라이즘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는 신(神)은 그러나 아브라함이 나아갈 목적지, 그 타자의 땅이 어디인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가야 할 곳을 알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2천년 디아스포라를 예고하는 노마드의 조상이 되었다.

​노마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스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귀향한 오디세우스가 또다시 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방랑하다가 남극에까지 이른다는 서사시를 썼지만, 그것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아니다. 오디세우스의 방랑은 고향에서 끝난다.

고향 몽골을 떠나 유목민 병사들과 조랑말 떼를 이끌고 아시아와 유럽을 정복한 칭기즈칸은 지금의 중국 북서쪽에 있었던 탕구트 침공에 나섰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고향 마케도니아를 떠나 그리스‧페르시아‧인도의 세 대륙을 평정하고 헬레니즘 문명 시대를 연 알렉산더 대왕은 서른세 살 젊은 나이에 정복지 바빌로니아에서 죽는다.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객지를 떠돌다가 객지에서 죽는 것이 노마드의 일생이다. 타자의 땅을 방랑하는 노마드에게 삶과 죽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귀족 톨스토이는 자신의 농노들을 해방하고 저작권 수익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서류에 서명한 뒤, 여든 살이 넘은 늘그막에 집을 나와 거칠고 외진 땅을 홀로 방랑하다가 시골 기차역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다. 그는 노마드로 죽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교회(사도행전 7장)를 중심으로 메마른 황무지를 헤매던 유랑의 무리였다. 유랑하는 노마드 공동체인 광야교회는 신성한 장소에 세워진 붙박이 성전(聖殿, temple)이 아니었다. 유랑하는 무리와 함께 이동하고 함께 움직이는 일상 속의 성막(聖幕, tabernacle)이었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다.

​예수도 한 자리에 정착해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 산과 들, 강과 호수, 마을과 시장터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눴다. 그는 골방에서 홀로 고요히 명상 수련하는 수도사도 아니었고, 성전에서 장엄한 제사의식을 집전하는 제사장도 아니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집이 있지만, 그는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노마드였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그늘진 삶의 자리를 찾아가 소외된 이들과 함께 호흡하다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일생은 노마드의 삶이요 노마드의 죽음이었다.

​노마드는 목적지를 미리 알고 떠나지 않는다. 고향에서의 인습적인 삶, 그 현재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 노마드의 첫걸음이다. 그 떠남은 방랑의 길, 타자의 땅에서 닥치게 될 숱한 위험을 기꺼이 무릅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목숨 건 결단일 터…

아직껏 집을 나서지 못한 채 방랑자의 꿈속에 깊이 잠들어있는 까닭은 분명코 그 결단을 내릴 의지와 용기가 없어서이리라. 꿈결에 스스로 묻는다. 안락한 명사의 삶에 머무를 것인가, 예측할 수 없는 동사의 삶으로 나아갈 것인가. 귀향인 오디세우스가 될 것인가, 노마드 아브라함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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