更深耿耿抱愁懷 城北我聞曉笛催 驥路卄年孤枕上 篷窓依舊送明來 깊은 밤 근심으로 뒤척이다 성북쪽에서 새벽 재촉하는 피리소리 흘러간 20년, 외로운 침상봉창은 어제처럼 밝은 날 맞이하네
Category: 오늘의시
[오늘의 시] ‘빈집’ 기형도(1960~1989)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오늘의 시] ‘바람이 불어오면’ 박노해
에티오피아 고원에 바람이 불어오면 아이들은 어디로든, 어디로든 달려 나간다 초원을 달리고 흙길을 달리고 밀밭을 달린다 허기를 채우려는지 온기를 찾는 것인지 소년은 소녀를 만나고 친구는 친구를
[오늘의 시] ‘가을 法語’ 장석주
태풍 나비 지나간 뒤 쪽빛 하늘이다. 푸새것들 몸에 누른빛이 든다. 여문 봉숭아씨방 터져 흩어지듯 뿔뿔이 나는 새 떼를 황토 뭉개진 듯 붉은 하늘이 삼킨다. 대추
[오늘의 시] ‘길’ 박노해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 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오늘의 시] ‘감사하다’ 정호승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프라타너스나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오늘의 시] 백로(白露) 홍사성
태풍 몇 지나가자 겨드랑이 서늘하다 풀벌레 울음소리 창문타고 넘어오는데 흰 이슬 무슨 뜻 있어 맺혀있는 초가을
[오늘의 시] ‘시마詩魔’ 이병기(1891~1968)
그 넓고 넓은 속이 유달리 으스름하고 한낱 반딧불처럼 밝았다 꺼졌다 하여 성급한 그의 모양을 찾아내기 어렵다 펴 든 책 도로 덮고 들은 붓 던져두고 말없이
[오늘의 시] ‘나의 家族’ 김수영
古色이 蒼然한 우리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新鮮한 氣運을 가지고 쏟아져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오늘의 시] ‘코스모스를 노래함’ 오규원
거리에서, 술집 뒷골목에서, 그리고 들판에서 가을은 우리를 역사 앞에 세운다. 거리에서 가을은 느닷없이 1906년 2월 1일, 일본이 한국통감부를 설치한 일을 아느냐고 묻는다. 술집 뒷골목에서 조금씩 비틀거리는 내
[오늘의 시] ‘산이 산에게’ 홍사성
큰 산 작은 산이 어깨 걸고 살고 있다 작은 산은 큰 산을 병풍으로 두르고 큰 산은 너른 품으로 작은 산을 안고 꽃필 때면 큰 산이
[오늘의 시] ‘백일홍 붉은 그늘’ 장옥관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네 핏발 선 눈 그 사람 돌아왔네 빈 마을 온종일 쑤시고 다녔네 백일홍 고목만 더욱 붉었지 꽃상여 타는 강 위로 흘러가고 늙은
[오늘의 시] ‘구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오늘의 시]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오늘의 시] ‘등燈에 부침’ 장석주
1 누이여, 오늘은 왼종일 바람이 불고 사람이 그리운 나는 짐승처럼 사납게 울고 싶었다. 벌써 빈 마당엔 낙엽이 쌓이고 빗발들은 가랑잎 위를 건너 뛰어다니고 나는 머리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