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신발 깔창’ 박노해

신발 끈을 묶고 정원 일을 나서는데
어라, 새로 산 신발 깔창이 반항한다
깔창을 꺼내 보니 날 빤히 바라보며
밟히기 싫다구, 나 밟히기 싫다구요

그래, 안다
나도 평생을 짓밟히며 살아왔다
그래도 난 매일 널 꺼내서
씻어주고 말려주며 감사하지 않니

누군들 밟히고 또 밟히고
소리 없이 헌신하는 걸 좋아하겠냐만
그게 우리 길인 걸 난들 어쩌겠니

만일 내가 누군가를 짓밟고 오르고
힘없이 우는 이들을 지나쳐 버리고
세상을 망치는 자들을 피해 간다면
그래라, 내 발을 짓물리고 부러뜨려라

시무룩하던 신발 깔창이
내 발을 감싸주며 순명한다
그래 웃자, 우리 웃어버리자
진정한 사랑은 발바닥 사랑이니

자, 우리 나무를 심으러 가자
오늘의 귀인을 만나러 가자
이 좋은 아침 길을 함께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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