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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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진짜 나로’ 박노해
진짜 장소에 진짜 내 발로 진짜 표정으로 진짜로 말하고 진짜로 살아 움직이는 진짜 사람을 만나야겠다 그러면 지금 여기 딛고 선 나의 근거들이 감정과 욕구와 관계가
[오늘의 시] ‘돌려라 힘’ 박노해
힘내자 어떻게 한번 빼요 힘 한번 버려 힘 힘들게 붙잡고 있는 걸 한번 놓으면 돼 힘은 내는 것이 아니라 돌리는 것 있는 힘을 제대로 돌리는
[오늘의 시] ‘유랑자의 노래’ 박노해
지구는 여행길이네 인생은 여행이라네 하루에서 다른 하루로 미지의 길을 떠나는 우리 모두는 여행자라네 나에게는 집도 없네 안주할 곳도 없네 온 우주와 대지가 나의 집이라네 계절이
[오늘의 시] ‘아가야 나오너라’ 박노해
한 점은 온전하다 씨앗은 온전하다 둥근 것은 작아도 온전하다 둥근 엄마 뱃속의 아가는 처음부터 이미 온전한 존재 신성하여라 너는 우주의 빛과 사랑으로 잉태된 존재 다만
[오늘의 시] ‘흰 철쭉’ 박노해
이 땅의 봄의 전위, 진달래가 짧게 지고 나면 긴 철쭉의 시절이다 화려한 철쭉은 향기가 없다 그런데 어쩌자고 흰 철쭉에서만 이리 청아한 향기가 나는 걸까 4월에서
[오늘의 시] ‘무임승차’ 박노해
두 손에 짐을 들고 저상버스를 오르다 고마웠다 미안했다 나의 무임승차가 나 대신 불편한 몸을 끌고 울부짖고 나뒹굴고 끌려가면서 끝내 저상버스를 도입한 휠체어의 사람들 오만하게 높아만
[오늘의 시] ‘정월正月 언 가지에’ 박노해
정월 빈 가지에 바람이 운다 이 밤에 나는 아직 울지도 못했는데 정월 흰 가지에 바람이 운다 이 아침 나는 아직 울지도 못했는데 멀리서 눈이 오는
[오늘의 시] ‘좋은 날은 지나갔다’ 박노해
봄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좋은 날은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다 봄을 떠밀어가며 너무 빨리 덮쳐오는 여름 무더위처럼 가을의 등을 타고 너무 빨리 엄습하는 겨울 한파처럼
[오늘의 시] ‘두려워 마라’ 박노해
두려워 마라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실패도 상처도 죽음마저도 실패는 나를 새롭게 하는 것 버릴 건 버리고 나 자신이 되는 것 상처는 나를 강하게 하는 것
[오늘의 시] ‘한가위 배구 잔치’ 박노해
추석이 다가오면 마을에선 돼지 세 마리를 잡았다 우린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지켜보다 돼지 오줌보를 받아 입 바람을 불어 넣고 축구를 하느라 날이 저문 줄도 몰랐다 누나들은
[오늘의 시] ‘인간은’ 박노해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는 만큼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인간은 자신을 성찰하는 만큼 세상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된다 인간은 고귀한 것을 알아보는 만큼 자기 안의 고귀함을
[오늘의 시]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박노해
봄비를 맞으며 옥수수를 심었다 알을 품은 비둘기랑 꿩들이 반쯤은 파먹고 그래도 옥수수 여린 싹은 보란 듯이 돋았다 6월의 태양과 비를 먹은 옥수수가 돌아서면 자라더니 7월이
[오늘의 시] ‘진공 상태’ 박노해
여름날 아흐레쯤 집을 비웠더니 밭에도 흙마당에도 풀이 가득하다 풀을 뽑다 돌아보니 어느새 풀이 돋아난다 여름에는 풀이 나는 게 아니라 풀이 쳐들어온다 빈 공간을 사정없이 침투하고
[오늘의 시] ‘걷는 독서’ 박노해
눈 덮인 자그로스 산맥을 달려온 바람은 맑다 따사로운 햇살은 파릇한 밀싹을 어루만지고 그는 지금 자신의 두 발로 대지에 입 맞추며 오래된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