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한가위 배구 잔치’ 박노해
추석이 다가오면
마을에선 돼지 세 마리를 잡았다
우린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지켜보다
돼지 오줌보를 받아 입 바람을 불어 넣고
축구를 하느라 날이 저문 줄도 몰랐다
누나들은 조각조각 천을 이어 붙여
돼지 오줌보에다 씌워 배구공을 만들고
동네 정미소 마당에서 경기를 벌였다
길게 땋은 머리를 묶고
흰 무명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날리며
서브를 넣고 토스를 올리고
힘차게 날아올라 강스파이크를 날리고
환호성이 울리고 호루라기가 울리고
선수보다 열 배는 많은 관중들이 빙 둘러서고
담장 위에도 감나무 위에도 올라서서
응원 박수를 보내고 목청껏 소리치고
둥근 달이 떠오르도록 웃음꽃이 풍성하던
동네 누나들의 한가위 배구 잔치
그래라 그래부러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남 탓도 편가르기도 한번 내려놓고
가난하여 더 나누고 서러워서 더 힘차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검정 치마 휘날리던 누나들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