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⑪] 까치독사에 손가락 물린 운룡, 그러나

“운룡은 뱀을 가만히 쥐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뱀의 꼬리가 부풀어오르면서 차츰차츰 운룡의 팔을 감았던 기세가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그 뱀은 운룡의 팔뚝에서 맥없이 풀어져 땅바닥을 향해 길게 늘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늘어진 채 마지막 안간힘을 쓰느라 겨우 꿈틀거릴 뿐이었다. 운룡은 태연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은 까치독사

한여름의 무더위는 반도의 북쪽이라 해서 비켜가지 않았다. 허름한 삼베 잠방이 차림에 비쩍 마른 팔과 볼록 튀어나온 배를 그대로 드러낸 벌거숭이 아이들이 몰려가는 곳은 주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마을 시냇가였다. 시내 가장자리 풀숲에 잠방이를 훌러덩 벗어 던져놓고 알몸으로 물속에 뛰어들어 물장구도 치고 자맥질도 하며 허기지는 것도 잊은 채 놀다 보면 어느덧 해질 무렵이 되고는 했다.

운룡은 아이들과 물놀이를 할 때에도 가능하면 홀로 떨어져서 놀기를 좋아했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소란스러움 속에 생각이 흐트러지고, 공연히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운룡은 아이들이 노는 아래쪽에 넓고 깊게 팬 웅덩이에서 홀로 헤엄을 치며 놀았다. 그 웅덩이는 어른의 키로 두 길이 넘을 만큼 깊었고, 위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소용돌이를 그리며 돌기 때문에 수영을 잘하는 아이들도 좀체 들어가지 않는 곳이었다.

운룡은 몸을 떠받쳐주는 듯한 물의 부력과 손발을 휘저어 생기는 반발력을 적절히 이용하여 때로는 물이 도는 방향에 따라, 또 때로는 그것과 반대 방향으로 헤엄 치며 놀았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웅덩이의 밑바닥에까지 자맥질해 들어가 햇빛이 어른거리는 물속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물속의 물체는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으며, 늘 크게 확대되어 보였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돌멩이를 그 물속에서 건져내어 물 바깥에서 보면, 물속에서 보았던 것보다 사뭇 작았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가만히 있자면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물 흐르는 소리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운룡의 마음을 평화롭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땅바닥을 박차고 수면 위로 솟구쳐 참았던 숨을 터뜨릴 때에는 세상과 새롭게 만나는 것 같은 재미를 느꼈다.

어느덧 서녘으로 기운 햇살이 시냇가의 미루나무 그림자를 길게 늘여놓고 있었다. 그때 풀숲에 놔두었던 옷을 입으러 갔던 아이들 가운데 소동이 벌어졌다.

“뱀이다, 뱀!”

아이들 대여섯 명이 우왕좌왕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운룡은 잽싸게 물 밖으로 나와 그곳으로 달려갔다. 짙은 잿빛 바탕에 검고 붉은 줄무늬가 얼룩덜룩한 뱀이 미끄러지듯 풀숲 사이로 몸을 감추고 있었다. 길이가 두 자는 넘어 보이는 놈이었다.

“저리 비켜! 이건 까치독사야. 내가 잡을게.”

운룡은 겁에 질려 있는 아이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뱀의 목 부위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덥석 움켜잡았다. 그러나 어린 운룡의 손아귀 힘이 아직 약해서인지 뱀이 몸부림치다 반사적으로 운룡의 엄지손가락을 물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앗, 운룡이가 뱀한테 물렸다!”

운룡의 손가락을 문 뱀은 어느새 제 몸으로 운룡의 팔뚝을 칭칭 감고 있었다.

“햐, 이놈 봐라. 네가 나를 물었겠다. 너 같은 미물에게 물려서 죽을 나였으면, 내 처음부터 이 세상에 오지도 않았다. 어따, 이놈 기운이 제법인데……?”

운룡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신의 손가락을 문 채 팔뚝을 감고 있는 뱀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운룡을 둘러싼 아이들은 새파랗게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그중 한두 명은 운룡의 집에 알리기 위해 마을 쪽으로 소리치며 달려가고 있었다.

“큰일 났어요! 운룡이가 뱀한테 물렸어요!”

운룡의 곁에 있는 아이들도 한마디씩 했다.

“운룡아, 어서 뱀을 놓아줘. 그러다가 독이 퍼지면…….”

“운룡아, 너 괜찮니? 어쩌려고 그래?”

운룡은 그 모든 광경이 도리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따위 미물에게 해(害)를 입지 않아. 조금만 두고 봐, 어떻게 되는지.”

운룡은 뱀을 가만히 쥐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뱀의 꼬리가 부풀어오르면서 차츰차츰 운룡의 팔을 감았던 기세가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그 뱀은 운룡의 팔뚝에서 맥없이 풀어져 땅바닥을 향해 길게 늘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늘어진 채 마지막 안간힘을 쓰느라 겨우 꿈틀거릴 뿐이었다. 운룡은 태연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갔다.

운룡이 뱀에 물렸다는 말을 들은 집안 어른들은 기절초풍을 했다. 운룡이 독사독에 중독되어 잘못될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특히 운룡의 조부 김면섭의 걱정과 절망감이 컸었다.

“저 아이를 잘 건사해야 한다는 천명(天命)을 받았건만, 내 오늘 하늘에 죄를 짓게 되었구나. 어린 것이 독사에 물렸으니…… 어이구, 이 일을 어찌해야 할꼬?”

김면섭은 안절부절 못하며 나름대로의 의학 지식을 총동원하여 무슨 약을 달여야 하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린 운룡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할아버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 약 달이는 일 그만두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약이 아무 필요도 없어요.”

아닌 게 아니라 시간이 흘러가는데도 운룡에게는 독사에 물린 반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운룡의 조부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동시에 운룡이 ‘범상치 않은 아이’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 때에도 운룡은 일종의 답답함 심정을 느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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