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⑭] “약이 우주이며, 우주가 곧 약이다”

강원도 고성 화진포 하늘에 떠있는 별을 헤다  

운룡의 눈앞에 광대무변한 색소의 세계, 약소의 세계가 펼쳐졌다. 지금껏 보아오던 별빛과 삼라만상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운룡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우주의 어느 곳이든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껏 가본 적이 없는 지상의 수많은 땅과 바다들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천체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 이 지구상에 있는 동, 식물과 무생물들에 감응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이 한반도가 우주의 약성분자를 모아들여 갖은 약으로 넘쳐나는 약성의 집합소임을 보았다. 비로소 자신이 왜 한반도에서 태어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은 자신이 뭔가 다른 존재임을 막연히 알고 있었으며, 그 ‘다름’ 때문에 보통 사람들 속에서 외따로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마저 느꼈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 하나의 사항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면서 거대한 의학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의 순간이 온 것이었다. 운룡은 자신이 남과 다름은 인류를 병마의 고통에서 구원해 낼 소명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임을 확고히 깨달았다.

운룡은 밝아진 영혼의 눈으로 한반도 전체를 조망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땅 위와 공중, 그리고 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갖가지 약소(藥素)들과 그것들의 치밀한 조직이 하나하나 확대되어 비쳐졌다. 그야말로 거대한 약의 창고인 셈이었다.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들, 땅 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온갖 식물들, 먹이사슬에 따라 저마다의 생존을 영위하는 모든 짐승들, 심지어 땅 속에 묻힌 광물들까지 포함해서 약성을 띠고 있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약성이 발휘할 수 있는 효능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집에서 기르는 오리의 뇌수 속에는 맹독을 풀어내는 극강한 해독제가 들어 있었고, 밭에서 나는 오이에는 화독을 풀어주는 신비한 효능이 들어 있었다. 독사와 땅벌이 지닌 독수에는 폐질환의 특효 성분이 있고, 도마뱀의 체내에는 미량의 독성분과 함께 풍부한 보혈 강장제 성분이 있음도 보였다.

동해산 마른 명태에는 독사에 물렸을 때나 가스 중독 시에 그 독을 풀어주는 강력한 해독 성분이 들어 있고, 바닷물 속에는 각종 난치병들을 낫게 할 수 있는 핵비소 등의 무궁무진한 약소들이 들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그 신비한 약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운룡에게는 그 약소들의 원리와 근거에 대해 이제 명확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개개의 사물들이 천계의 28수 별자리의 별들 중 특정 별과 감응하여 기본 성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천체의 별들이 지상의 삼라만상과 상응하는 모습이 눈앞에 환히 드러났다. 바로 색소 인자의 흩어지고 모이고 합해지고 소멸되고 생성되는 그 모든 과정에 뭇별들이 관여하고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뭇별들의 주재에 따라 만물은 생겨나고 자라며 또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별들과 지상의 생명체는 서로 상관관계로 매여 있는 존재였다. 이 우주는 거대한 인연체였다.

28수 별자리

인체에 유해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 독사나 지네 등은 대개 화성(火星), 즉 형혹성(熒惑星)의 정기(精氣)에 응해 화생(化生)한 생물체이고, 그것들의 독성을 풀어 없애는 명태·집오리·오이 등은 28수 별자리 중 수성(水星) 분야의 일곱 별 가운데 여성정(女性精)에 응하여 화생한 것들이다.

눈이 밝은 운룡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맑게 갠 날 밤에 목성(木星), 즉 세성(歲星)의 정기를 관찰하다 보면 유독 푸르스름한 기운(목성의 정기)이 어려 있는 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벌나무(山靑木)인데, 노나무(梓白木)와 흡사하게 생겼지만 노나무보다 잎이 조금 작고 광채가 나며 줄기가 짧은 외양을 갖고 있다. 그 벌나무는 목성인 세성정에 응해 화생한 나무이므로 인체 내의 독성분을 빨아들여 배출하는 역할을 하는 등 간 질환에 영약(靈藥)이다.

또 참옻은 천강성정과 세성정이 한데 어우러져 화생한 것으로서 각종 난치병에 묘약이 된다. 옻나무 속에 들어 있는 천강성의 독기는 세성의 생기(生氣)를 좇아 독으로써 독을 없애는 소위 이독공독(以毒攻毒)의 작용을 하므로 만병을 퇴치하는 효능을 지니며, 그 속에 아울러 들어 있는 생기는 꺼져가는 생명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독기의 약리적 작용을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옻나무의 색소는 만년이 지나가도 변하지 않고 부패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 몸의 색소를 보존하고 부패를 방지하며 온갖 질병을 치료하는 선약(仙藥)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더듬어 가다 보면 약성의 종류와 강약의 정도가 다를 뿐이지, 지구상의 만물 가운데 모든 약이 다 존재했다. 약이 없어 인간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약의 존재를 몰라 죽어가는 것이다. 약이 우주였고, 우주가 곧 약이었다. 

약의 분포는 비단 지구상의 만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의 범위로까지 확대된다. 운룡의 영안(靈眼)이 거기에까지 미치게 되자 약의 세계는 실로 무변광대한 우주 그 자체였다. 약이 우주였고, 우주가 곧 약이었다.

공간 색소 인자 가운데 약의 분자로 작용하는 것들과 바닷물 속에 함유된 약의 미립자들도 점차 운룡의 영안 앞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볼 수 없겠지만, 그로서는 그 모든 것을 아주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볼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을 인간의 각종 질병에 적용시켜 나간다면 치유되지 않을 질병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주 안의 자연의 원리에 따라 생기고 소멸하는 것 중의 하나가 질병이므로, 우주 자연의 원리로써 다스리지 못할 질병이 존재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자연만물 중 하나인 인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노화(老化)하고 노화의 종착점에서 색소가 소진하여 죽음을 맞게 되니 생명력이 소멸된 육신은 다시 분해되고 흩어져 우주로 귀환하는 것 뿐이다. 노화 또한 색소의 고갈이므로 색소의 고갈을 막고 충전해줌으로써 인간이 늙지 않고 죽지도 않고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일곱 살의 운룡은 우주만물의 생장소멸의 대원리를 깨달으며,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기필코 인간을 괴롭히는 수많은 질병들을 치료하는 우주의 원리를 세상에 전하겠다는 각오를 마음속에 다졌다.

운룡은 우주 운행 법칙에 따라 자신이 지상에서 가장 약성이 충만해 있는 한반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반도 상공에 무궁무진하게 분포하고 있는 약성들을 발굴해내고 활용하여 지구인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알았다. 한반도 상공에는 영약이라고 할 수 있는 산삼의 분자를 비롯하여 갖가지 우수한 약의 분자들이 가득 차 있고, 지상과 주변의 바다 속에도 무궁무진한 약물들이 존재함을 운룡은 확신에 차서 보게 되었다. 운룡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창공의 약분자들을 호흡하며 벅찬 가슴으로 끝간데 없는 약분자 체계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신약의 보고 한반도여!

오색 무지개를 통해 거대한 신약의 세계와 우주의 원리를 동시에 깨닫게 된 운룡은 그때로부터 이 세상 그 누구와도 완전히 소통할 수 없는 절대적 고독감 속에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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