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17] 할아버지는 운룡을 알아주는 유일한 대화상대였다

국내 최초 죽염 발명가이자 한방 암의학 창시자인 인산 김일훈 선생(1909~1992)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다.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운룡은 대번에 무겁게 가라앉은 집 안 분위기를 감지하였다. 사실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운룡의 특이한 언행 때문에 적지 않은 신경을 써왔던 그의 부모들은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부모가 전해들은 사건의 내막으로 보건대 단순히 철모르는 어린아이의 극심한 장난기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운룡이 비범한 아이라는 생각은 진작부터 해온 터였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이유로 늘 걱정을 해오던 터였기에 그의 부모가 느끼는 낭패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부모는 운룡이 멀쩡한 동네 어른을 보고 “뱃속에 병이 깊어 몇 달 안에 큰일을 겪게 될 터이니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하지 않나, “비명(非命)에 죽은 조상의 혼령이 붙어 물에 빠져죽을 수이니, 조심하세요”, “저 아이는 부모의 악혈(惡血)을 받고 태어난 탓에 열 살 안에 죽을 거야”라는 섬뜩한 말을 하는 통에 당사자나 그 가족들로부터 맹렬한 항의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운룡의 그런 예언들이 차례차례 적중하게 되자 부모의 걱정은 일종의 두려움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생각한 대로 운룡을 가리켜 ‘귀신 들린 아이’이니 ‘재앙을 초래할 아이’이니 하면서 수군거렸다. 이래저래 운룡은 부모로부터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라”는 함구령을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으며 지내야 했던 것인데, 결국 또 한 번 일을 저지른 셈이 되었다.

“연칠이 아버지가 다녀가셨다. 네가 연칠이를 벌에 쏘여 다 죽게 만들었다고 하더구나. 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런 못된 장난을 한 것이냐?”

운룡의 아버지는 가까스로 화를 삭이면서 엄한 목소리로 운룡을 다그쳤다. 그러나 운룡은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린다 해도 이해와 그에 따른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송스러웠지만 잠자코 있는 것이 상책이다 싶었다. 아버지가 내렸던 함구령을 곧 아버지를 대하며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운룡 자신에게도 묘한 느낌을 주었다. 아버지로부터 종아리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운룡이가 들어왔느냐? 이리로 좀 보내거라.” 하는 할아버지의 음성이 사랑방 쪽에서 들려왔다.

“할아버지 덕분에 아버지로부터 벗어난 운룡은 자기를 알아주는 유일한 대화 상대인 할아버지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운룡의 조부 김면섭은 유심히 운룡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떼었다. 운룡으로서는 언제 들어도 부드럽고 다정한 할아버지의 음성이었다.” 사진은 자전거를 함께 타는 할아버지와 손자. 운룡과 조부 김면섭의 관계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할아버지 덕분에 아버지로부터 벗어난 운룡은 자기를 알아주는 유일한 대화 상대인 할아버지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운룡의 조부 김면섭은 유심히 운룡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떼었다. 운룡으로서는 언제 들어도 부드럽고 다정한 할아버지의 음성이었다.

“네가 오늘 연칠이란 아이를 벌에 쏘이도록 했다는데, 사실이더냐?”

“네, 할아버지. 제가 일부러 그랬습니다.”

운룡은 비로소 또렷한 어조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랬다니…… 그러다가 그 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랬단 말이냐? 땅벌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기나 하는 게냐?”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리 한 것이니까요. 연칠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 애의 병을 낫게 하려고 그랬단 말이지? 흠…… 그래, 너는 벌에 쏘이게 하면 그 애의 병이 낫는다고 생각한 게냐? 멀쩡한 사람도 땅벌에 쏘이면 죽을 수 있는데, 하물며 병치레하느라 골골하는 아이가 어떻게 그 봉독을 견딜 수 있을 것이며…… 게다가 그리 해야 그 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니 할아비는 도통 네 생각을 알 수 없구나.”

김면섭으로서는 어느 의서에서도 본 적이 없는 기상천외한 얘기를 하는 손자에게 호기심을 느끼며 그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연칠이가 앓고 있는 병독은 이미 온몸 깊숙이 퍼져 있어서 극약이 아니면 다스릴 수가 없는 지경이었어요. 오늘 땅벌에 쏘이게 하지 않았으면 아마 서너 달도 살기 어려웠을 거예요.”

김면섭은 손자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 땅벌은 제 몸 안에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독수(毒水)를 지니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것을 이용한 거예요. 그런데 땅벌의 독수로써 연칠이의 병독을 없애려면 한두 마리 분량의 독수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마리의 땅벌에게 쏘이게 한 거예요.”

운룡은 자신의 생각을 할아버지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오호라, 이독제독(以毒制毒)의 방법을 썼다 그 말이로구나. 하지만 네 생각대로 되지 않고 봉독이 과한 탓에 그 아이가 죽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랬느냐?”

조손(祖孫) 간의 대화는 어느새 의학적 토론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아이, 할아버지도……. 제가 그것도 모르고 그랬을라고요. 그 방법을 막연하게 알고 요행수를 바라며 대충 사용했다면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몇 마리 정도의 벌에 쏘이게 하면 그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히 아는 걸요. 한번 두고 보세요. 얼마 지나면 연칠이의 병이 깨끗이 나을 테니까요.”

운룡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김면섭의 눈을 마주보며 호언장담을 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할아버지를 제외한 집 안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욕설과 원망과 비난의 눈초리는 어린 운룡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연칠이가 살아나야겠기에, 마음속의 확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 실행한 독벌주사법인지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날마다 연칠이네 집에 가서 연칠이의 용태(容態)를 살폈다.

연칠이 부모는 운룡에게 욕설을 퍼부었지만 운룡은 연칠이가 잘못되지 않도록 관찰하고 돌보기 위해 매일 무지막지한 욕설을 참으며 다녀갔다. 온몸이 고열로 불덩어리 같았으며 내내 혼수상태였다. 그럭저럭 3일이 지나자 의식을 잃고 있던 연칠이가 눈은 떴으나 아직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며 의식이 왔다갔다 하였다. 그러나 일주일 쯤 지나자 열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의식이 또렷해졌고 백지장 같던 얼굴에 불그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마침내 운룡이 생각한대로 땅벌의 독이 연칠이의 병독을 치료해내었던 것이다.

연칠이가 건강을 되찾자 연칠이 아버지가 운룡의 집을 찾아와 용서를 구하고 치하했다.

“운룡이 덕분에 잃을 뻔했던 자식 놈을 살렸습니다. 일전에는 뭣도 모르고 찾아와 소란을 피워서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무지렁이의 막된 행동으로 여기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연칠이의 아버지는 운룡의 할아버지에게 깊이 사죄했다. 다른 집안 식구들은 연칠이네가 송장 메고 쳐들어올까봐 걱정이 태산같았다가 완치되었다는 소식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동네에서는 운룡을 두고 더 수군거렸다.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언제 죽을지 모르던 산송장같은 연칠이가 멀쩡한 애로 변해서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는 것을 본 사람들이 운룡이 귀신붙은 아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죽을 목숨 살렸겠나며 오히려 더 꺼림칙하게 대했던 것이다.

운룡은 감사와 존경의 빛이 아닌 이상한 눈초리로 자기를 슬금슬금 곁눈질하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서 고독과 비애를 느꼈다. 남보다 조금 잘 나면 선망의 대상이지만 너무 뛰어나버리면,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너무 벗어나버리는 우주적 지혜는 오히려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뼛속깊이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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