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⑮] “죽어가는 뭇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나를 바치자”

“연칠이가 운룡에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을 때, 운룡은 이미 들고 있던 장대 끝으로 조금 전에 봐두었던 벌구멍을 푹푹 쑤셔대고 있었다. 두세 차례 벌구멍을 쑤셨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 때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벌떼가 새카맣게 몰려나왔다. 수 백, 아니 수 천 마리도 넘는 것 같았다.”(본문 가운데)

운룡과 같은 마을에 사는 연칠이라는 이름의 사내아이 하나가 부족증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부종증은 폐결핵에 걸리거나 체내의 진액이 부족하여 원기가 몹시 쇠약해지는 증상이다.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 아이의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야윌 대로 야위어 팔다리가 앙상해진 몰골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병이 몸에 들기 전에는 쾌활하게 잘도 뛰어 놀던 아이였는데, 딱하게도 몹쓸 병에 걸려 집 안에 틀어박혀 있거나, 바깥에 나오더라도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해바라기나 하고 있기 일쑤였다. 더욱이 남의 집에서 품을 팔아 식구들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게 하는 정도의 어려운 형편이었던 연칠이의 부모로서는 어떻게 자식의 병구완을 위해 손을 써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연칠이는 그렇게 병마에 붙들린 채 속수무책으로 죽음의 문턱을 향해 끌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일곱살 짜리 운룡은 자기보다 두 살 더 먹은 친구 연칠이를 볼 때마다 안쓰러움으로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연칠이의 병세는 이미 첩약 따위로는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깊어져 있음을 알겠기에, 운룡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그것의 존재 사실도 모르고, 이용 방법은 더더욱 모르는데 상공의 맑은 대기 속에 영약의 분자가 충만해 있으면 뭘 하고, 지상의 곳곳에 갖가지 효능을 지닌 채 존재하는 약물들이 널려 있으면 뭘 하느냔 말이다. 병든 사람들은 그렇게 모르고 있다는 죄 때문에 치료약을 눈앞에 두고도 고통 받다가 죽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일곱 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한 운룡으로서는 무지(無知)한 사람들 속에서 공간 색소 중의 약 분자들을 합성해 낼 수 있는 당장의 방법이 없었고, 바다 속의 신약들 또한 이용할 재간이 없었다. 어쩌면 그에 앞서 운룡이 보거나 알고 있는 신약에 대해서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다면, 모두들 어린아이의 해괴망측한 소리라고 일축해 버리기가 십상일 것이었다. 기존에 알려진 약으로는 연칠이의 생명을 건질 수가 없고, 치료할 수 있는 약은 구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실정 앞에서, 이미 병든 자의 고통을 없애주겠다는 마음의 뜻을 지니고 있던 운룡은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도 연칠이는 기운 없는 몸을 이끌고 바깥에 나와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운룡은 비탈진 언덕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는 연칠이의 모습을 보며 측은한 마음이 일어 견딜 수가 없었다. 무릇 사람의 병을 고치고자 하는 자는 의학 지식이나 의료 기술에 앞서서 환자에 대한 인간애와 측은지심이 있다. 그런 마음이 없고서야 어찌 진정한 천하제일의 명의가 될 수 있으랴.

운룡은 연칠이의 가련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잠시 먼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가까운 주변에서 연칠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구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운룡의 시야에 허공에서 붕붕거리며 날고 있는 땡벌 몇 마리가 들어왔다.

‘그래, 바로 저거야! 연칠이를 살릴 수 있는 약을 알았다!’

운룡은 한시가 급하다는 듯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 엄마, 큰형이 입던 삼베 바지저고리 좀 꺼내주세요!” 운룡의 어머니는 숨이 턱에 차가지고 뛰어 들어온 아이가 다짜고짜 삼베옷을 찾자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아니, 형의 삼베옷은 무엇에 쓰려고?”
“필요한 데가 있어서 그래요. 급하단 말이에요. 얼른 꺼내주세요!”

운룡의 어머니는 아이의 서둘러대는 서슬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삼베옷을 꺼내주었다. 운룡은 황급히 그 옷을 자기 몸에 꿰어 입더니 손목과 발목 부위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끈으로 단단히 여며 묶었다. 제 몸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옷을 입은 운룡은 장대 하나와 말린 쑥 두어 다발을 광 안에서 찾아 들고 나와 쏜살같이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이들은 여전히 놀이에 열중해 있었고, 연칠이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룡은 아이들이 노는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숲 덤불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운룡은 그 숲 덤불 가운데에 위치한 조그만 구멍으로 벌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보았다. 운룡은 재빨리 연칠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연칠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연칠아, 이리 와봐. 내가 구경시켜 줄 게 있어.”
“뭔데?”

연칠이는 운룡이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초점 없던 눈을 들어 간신히 몸을 세워 운룡을 따라 어기적 어기적 걸어갔다. 장대를 부여잡고 커다란 삼베옷을 입은 운룡의 차림새가 다른 아이들의 이목을 끄는 데 한몫을 했던지, 놀이에 빠져 있던 아이들 중 서너 명도 역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따라붙었다.

“야, 너희들은 오지 마!”

연칠이는 운룡이 자기에게만 특별히 무엇을 보여주려 한다고 생각하고 조금도 미심쩍어 하지 않고 숲 덤불까지 따라왔다. 여남은 발짝 뒤에는 여전히 다른 아이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운룡아, 뭐가 있다는 거냐?”

연칠이가 운룡에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을 때, 운룡은 이미 들고 있던 장대 끝으로 조금 전에 봐두었던 벌구멍을 푹푹 쑤셔대고 있었다. 두세 차례 벌구멍을 쑤셨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 때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벌떼가 새카맣게 몰려나왔다. 수 백, 아니 수 천 마리도 넘는 것 같았다.

“땡끼다!”

구경삼아 뒤따라오던 아이 중의 누군가가 소리쳤고 아이들은 정신없이 도망쳤다. 운룡은 얼른 삼베옷 깃 속으로 얼굴을 파묻으며 땅바닥에 엎드렸다. 벌떼는 얼떨떨한 채 도망도 못 가고 서 있던 연칠이에게 집중하여 달려들었다.

“어어, 으으……. 아이고, 엄마! 아이고 나 죽네……!”

연칠이는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대다가 땅바닥으로 넘어졌다. 하지만 땅벌들은 조금도 기세를 늦추지 않고 연칠이의 온몸에 달라붙어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운룡은 재빨리 부싯돌을 쳐서 말린 쑥 다발에 불을 붙여 들고 달려가 그것을 휘두르며 연칠이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땅벌들을 쫓아버렸다. 운룡도 어쩔 수 없이 손등과 얼굴 등 여러 군데를 벌에 쏘였다.

연칠이는 기절하여 축 늘어진 채 입으로 가느다란 신음만 토해내고 있었다. 헐렁한 잠방이 하나만 아랫도리에 걸치고 있던 연칠이는 온몸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땅벌에 쏘인 상태였다. 운룡은 아직도 연칠이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벌들을 떼어내고, 쏘인 자리에 맺혀 있는 핏방울들을 닦아냈다. 그러고는 걱정 어린 눈길로 둘러서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내가 연칠이를 업을 테니, 좀 도와줘. 자…… 어서!”

운룡은 연칠이를 들쳐 업고 마을로 향했다.

‘연칠이는 이제 살 수 있게 되었다.’ 하는 생각이 들자 연칠이를 업었음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이가 날아갈 듯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기에 체구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옷을 입고 벌에 쏘여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연칠이를 업고 뛰는 운룡의 모습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무서워 보였다. 아이들은 운룡이 가져갔던 장대를 들고 몇 발짝 뒤에서 운룡을 따라갔다. 연칠이는 의식을 완전히 잃고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괜찮아, 연칠아. 이제 너는 살았어.’

운룡은 마음속으로 외치며 사뭇 뛰는 듯이 내달렸다.

아이들 중의 하나가 앞서 달려가 연칠이의 집에 사고 소식을 전했다. 가득이나 병약하여 골골하는 아들이 땅벌에 쏘여 기절했다는 소식을 들은 연칠이의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오다가 운룡과 마주쳤다.

“아이고, 이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우리 연칠이가 다 죽게 생겼구나. 아니고…….”
연칠이의 어머니는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허둥거리며 울부짖었다.
“운룡이가 이 장대로 땡벌 집을 건드리는 바람에 연칠이가 벌에 쏘였어요.”

한 아이가 연칠이의 어머니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일러바쳤다. 그 사이에 운룡은 연칠이네 집 안으로 들어가 마루에다 연칠이를 내려놓고 부랴부랴 달음질 쳐서 연칠이네 집을 빠져나왔다.

“아니고, 저 못된 놈이 우리 연칠이를 죽이는구나. 아이고, 이놈아……. 미친 놈이 무슨 철천지 원수졌다고 불쌍한 우리 연칠이를…..”

운룡은 연칠이 어머니가 퍼붓는 원망과 저주를 등 뒤로 들으며 일단 뒷동산으로 몸을 피해 올라갔다. 온몸이 땀에 젖었고, 봉독의 작용으로 눈두덩이 퉁퉁 부어올랐다. 그래도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때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다. 운룡은 깊은 숨을 토하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도대체 뭐라고 설명을 해야 알아들을까? 연칠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일부러 벌에 쏘이게 했다는 사실을 누가 믿으려 할까? 아마도 또 귀신 붙은 놈이라고 욕을 할 테지. 그러나저러나 며칠 지나보면 알게 될 것이다. 연칠이의 병이 깨끗이 낫는 걸 보면, 내 말을 믿지는 않더라도 욕은 하지 않겠지. 부모의 무지로 제 명대로 살지 못할 뻔한 연칠이를 살렸으니, 까짓 욕 몇 마디쯤 듣는다고 대수이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한테서야 원망을 듣든 손가락질을 받든 상관없다.

하지만 저 하늘과 산들은 내가 어떻게 해서 연칠이를 살려냈는지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 어찌 내가 보고 느끼고 아는 것들을 더불어 보고 느끼고 알 수 있으랴? 인간 세상을 초월한 지혜를 깨달은 나는 평생 고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지(大知)는 곧 무지(無知)”라고 한 노자(老子)의 말씀에 나는 새로이 “대명(大明)은 곧 무명(無明)”이라고 덧붙여야 할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우주의 오묘한 현상을 보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깜깜절벽인 세계를 홀로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숨 막힐 일 아니겠는가? 내가 보고 느끼고 안다고 해서 그것을 일일이 말하려 하다가는 나 역시 명대로 살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장차 육신의 나이를 더함에 따라 음덕(陰德)을 쌓는 일에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다면,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세상에 나를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비난이나 알아주지 않음에 연연해하지 말고, 고칠 수 있는 병을 무지 때문에 고치지 못하고 죽어가는 뭇 생명들을 구원하는 일에 나를 바치도록 하자.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온 바른 뜻 아니겠는가?’

운룡의 상념이 그러한 결론에 이름으로써 연칠이의 일로 당분간 치를 것으로 예상되는 곤욕이 하나도 성가시지 않게 여겨졌다. ‘아무튼 오늘 큰 일 한 가지를 해결했구나’ 하는 마음으로 뒷동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을 때에는 어느덧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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