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16] “가장 훌륭한 해독제 동해안 북어”

북어국물을 마신 환자의 상태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사에 물려 무섭게 부어오르던 얼굴이 더 이상 붓기를 멈추는가 싶더니 환자의 거친 호흡이 조금 부드러워졌다”(중략) “명태의 체내에 들어있는 해독 성분은 뭍의 공간의 수정수기와 합쳐지면서 더욱 강해지는데, 한겨울 동지에는 공간의 수정수기가 최극강하는 시점이니까요. 그런 조건이 최적으로 갖춰진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동해안이지요.”

한여름 더위가 막 물러간 어느 날이었다. “어르신, 큰일 났어요! 사람 좀 살려주세요!” 운룡의 집 안으로 아낙네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들면서 소리쳤다.

마침 은적사의 무주 스님이 찾아와 도담(道談) 나누고 있던 김면섭은 사랑방 문을 열어젖히고 바깥을 내다보며 정신이 나간 듯 겅둥거리고 있는 그 아낙네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허둥대지만 말고 찬찬히 얘기해 봐요.”

그때 장정이 한 사람을 등에 업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저희 애 아버지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독사에게 물렸다지 뭡니까? 금세 저렇게 인사불성이 되어……. 아이고, 우리 저이가! 어르신, 제발 저이 좀 살려주세요!”

아낙네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애원을 하였다. “허허, 큰일은 큰일이로고……. 이맘때면 뱀에게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있을 때인데, 이를 어쩌누? 하여간 애 아버지를 얼른 방 안에 눕히도록 하시오.”

금세 소문을 듣고 달려온 이웃 사람들이 운룡의 안마당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사이에 김면섭은 환자의 용태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의 환자는 약 1시간 전에 왼발 뒤꿈치를 뱀에게 물린 상태였다. 뱀에게 물린 이빨 자국이 선명했고, 그 주위가 독 기운으로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발목부터 무릎 언저리까지는 이미 퉁퉁 부은 상태였고, 전신이 울긋불긋해진 상태에서 불덩이같이 뜨거웠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환자가 인사불성으로 의식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 보오. 이거 아니 할 얘기지만 이 사람을 살려내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것 같소. 아무래도 독사의 이빨이 핏줄을 건드린 것 같은데, 독사의 독을 즉시 해독할 약재라는 게 특별히 없어서…….”

김면섭은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환자의 아내에게 하릴없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요. 어르신, 어떻게 좀 해봐 주세요. 제발……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우리 애 아빠 살려주세요.” 환자의 아내는 눈물콧물 범벅의 얼굴로 김면섭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애원을 하였다.

모여든 마을 사람들이 중구난방 웅성거리며 저마다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민간요법을 한마디씩 했다. “묵은 된장을 한번 발라보면 어쩔까나?” “똥물이 낫을라나.” “애기쉽싸리가 약이 된다는데.”

그때였다. 밖에서 벌어진 소동에 이끌려 언제 제 방에서 나와 있었는지 환자를 내려다보며 정신집중하여 생각에 잠기던 운룡의 눈빛에 잠깐 섬광이 비치더니 버럭 소리쳤다.

“다 소용없어요. 할머니 북어 사둔 거 있지요. 얼른 광에서 북어를 내다 주세요. 우선 다섯 마리면 돼요.”

운룡의 집은 인근에 소문난 부잣집이어서 광에는 각종 찬거리가 언제나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여 멍하니 서 있는 할머니에게 광열쇠 내놓기를 재촉하고 운룡은 집안일 돕는 여인을 보며 화급히 일을 시켰다.

“아주머니, 솥에 물 넣어 빨리 아궁이 불 피우고 북어 잘 두드려패 주세요.”

들러선 마을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돌아보았다. 그 웅성웅성하는 사이 불이 지펴지고 솥에 잘 두들겨팬 북어가 들어가고 금새 북어국이 김을 내며 펄펄 끓었다. 달리 방법이 없던 김면섭과 무주 스님도 운룡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어린 운룡이 하는 행동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쩐지 운룡이 환자를 살려낼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운룡의 너무도 확신에 찬 태도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들에게 북어국이 정말 약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국이 끓어올랐다. 북어 국물이 누렇게 우러났다. 운룡은 국 한 사발을 떠서 환자의 아내에게 갖다주게 하였다.

“아주머니, 그렇게 울고만 있지 말고 급한대로 얼른 이 국물 떠다가 아저씨 먹이세요. 이걸 먹어야만 아저씨가 살아납니다.”

평소에 마을 사람에게 알려지기로는 ‘이상한 아이’, ‘귀신들린 아이’였고 이 여인네도 평소에 운룡을 곱게 보지 않았지만, 위기에 처한 환자의 아내로서는 어린 운룡이 하느님보다 더 위대해 무조건 매달리는 심정이었다. 귀신이면 어떻고 악마면 어떠랴 죽을 남편 살려낸다는데.

“그래, 알았다. 얘야. 우리 애 아버지를 살려다오.”

환자의 아내는 급히 서둘러 뜨거운 북어 국물을 받아서 호호 불어 식히며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환자를 흔들어 깨우며 퉁퉁 부은 입술 사이로 숟가락을 디밀어 넣었다.

국 사발이 비워지면 다음 국 사발을 채워 가져가 먹이고, 그것을 다 먹이면 또 한 사발의 북어 국을 떠다 먹이기를 반복하였다. 어느덧 솥 안의 국물을 절반가량 먹였을 때, 환자의 상태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섭게 부어오르던 얼굴이 더 이상 붓기를 멈추는가 싶더니 환자의 거친 호흡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고통과 부기로 일그러졌던 환자의 표정이 점차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기운을 얻은 환자의 아내는 더욱 열심히 환자의 입안에 북어 국물을 흘려 넣었다. 마침내 환자가 한숨을 몰아쉬는 동시에 감았던 눈을 떴다.

“아주머니, 아저씨는 이제 살아났어요. 그 국물을 계속 마시게 하세요. 집에 가셔도 완전히 나을 때까지 한동안 북어국물 먹여야 합니다. 전신에 퍼진 독을 해독해줘야지 독이 남아 있으면 안되요.”

그 때까지 환자의 상황을 지켜보던 운룡이 이제 제 할 일 다했다는 듯 일어서며 환자의 아내에게 당부하였다.

“아이고, 얘야……. 고맙다 고마워…….”

환자의 아내는 눈꼬리에 말라붙은 눈물 자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끝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 때까지도 집에 가지 않고 방문 밖에서 운룡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운룡의 등 뒤에서 저마다 한마디씩 하였다.

“정말 알 수 없는 아이야.”

“쟤한테 도깨비가 붙었다는 얘기가 사실인가 봐.”

“어린애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니……”

“지난번에 연칠이의 병도 고쳐준 걸 보면, 쟤는 사람이 아닌가봐.”

“눈빛을 봐. 쟤가 어찌 사람이냐. 나는 무섭구먼.”

그 광경을 모두 보고 들은 김면섭과 무주 스님은 의미 있는 눈길을 서로 주고받을 뿐 말이 없었다. 독사에게 물려서 인사불성이 되어가지고 업혀서 왔던 환자는 저녁 무렵에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며 제 발로 걸어서 돌아갔다.

김면섭은 운룡을 불러 앞에 앉혔다.

“네가 오늘 장한 일을 했구나. 할아비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으니……. 그런데 너는 독사에게 물린 데에는 북어가 약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구나.”

“할아버지, 저는 그런 것을 저절로 알 수 있어요. 모두 보이거든요.”

운룡은 할아버지만은 자신의 얘기를 사실대로 받아들여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흐음, 그렇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북어의 성분이 독사의 독을 해독시키는지도 할아비에게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손자에게 배우고자 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다만 손자의 범상한 능력을 재차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김면섭의 심정이었다.

“독사는 사화독을 지니고 있고, 마른 명태는 그 독을 풀어내는 해자수정의 화생물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잡아 말린 명태는 천상 28수 중의 여성정에 응해 화생한 생물이라 그 체내에 극강한 해독 성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데다 북어에는 바다 속의 수정수기와 말릴 때 공중의 수정수기까지 더해짐으로써 최상의 해독약이 되는 것이지요.”

운룡은 거침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피력하였다.

“음, 그러니까 독사의 사화독이 수정수기의 결정체인 북어의 극강한 해독 성분을 만나면 중화되어 독이 소멸되버린다는 말이로구나. 그것 참 신기한 얘기로구나.”

“그래요, 할아버지. 그리고 같은 북어라도 동해안 동지태가 가장 훌륭한 해독제가 됩니다.”

“그건 왜 그렇지?”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명태의 체내에 들어있는 해독 성분은 뭍의 공간의 수정수기와 합쳐지면서 더욱 강해지는데, 한겨울 동지에는 공간의 수정수기가 최극강하는 시점이니까요. 그런 조건이 최적으로 갖춰진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동해안이지요.”

김면섭은 손자의 기특함에 내심으로 거듭 탄복을 금치 못하며 다시 물었다.

“다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구나. 운룡아, 너는 그와 같은 약리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운룡은 모처럼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그 기회가 마음에 흡족하여 평소의 생각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말했다.

“할아버지,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채 태어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잖아요. 그러나 아주 드물게는 생이지지자(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 법 아니겠어요? 할아버지의 손자는 거기에 속한다고 생각하세요.”

김면섭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역량으로는 손자를 감당하기가 태부족임을 절감하였다. 그로서는 오직 운룡의 안위를 염려하고, 운룡이 무사히 성장하기만을 지켜주겠다는 속다짐을 할 뿐이었다.

“할아버지, 남보다 조금 더 알면 그것이 ‘아는 것’이 되어 자랑거리도 될 수 있지만, 남들의 이해를 초월하여 알게 되면 도리어 ‘이상한 자’나 ‘미친 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얘기를 제가 해도 누가 저더러 옳다고 하겠습니까?”

어린 운룡의 입에서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오자, 김면섭으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함께 앉아 있던 무주 스님 역시 운룡의 얘기를 들으며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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