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18] 까치독사 독수로 폐암 말기 환자 살리다

“운룡의 눈에는 독사독이 환자의 혈관을 맹렬하게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심장으로 폐로 독수가 흘러들며 폐혈관속의 병독과 만나는 것이 느껴졌다. 환자는 독과 독이 만나는 순간 잠깐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 같았다.”(본문 가운데)

운룡은 그 무렵, 독사의 독수를 이용하여 또 다른 부족증(폐암으로 추정됨) 환자의 병을 완치시킨 일도 있다.

운룡이 살던 곳의 이웃마을에 아내와 슬하에 4남매를 두고 나이 40이 내일모레인 한 가장(家長)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리보전을 하고 드러눕더니 도통 운신을 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미 운룡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중병에 걸린 환자들을 여러 명 낫게 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장성한 아들이 운룡을 찾아와 제 아버지를 살려낼 방법이 없겠느냐고 구원을 청해 왔다.

운룡은 환자 집으로 가서 환자 상태를 살펴보고 한눈에 폐에 암이 들어 두어 달을 넘기기 힘든 중환자임을 알아보았다. 암이 뭔지도 모르는 시대였고 앞으로 도래할 세상은 암으로 다 죽어나가는 공해독 세상이라는 것을 운룡은 알았지만 말을 꺼낼 수가 없다. 폐암은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폐 조직이 망가질 때까지 본인으로서는 통증을 모르는 채 지내게 되므로, 이미 그 환자처럼 막바지에 이른 환자는 치료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 일반적인 형편이었다. 그러나 운룡은 자신 있는 어조로 환자에게 말하였다.

“아저씨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저를 믿고 제가 하는 방법대로 따라주신다면 병을 고쳐드리겠습니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은 물에 빠진 사람의 절박한 심정으로 운룡에게 매달리며 애원을 하였다.

“내 몸의 병만 고쳐주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 얘야, 내가 어찌 너를 믿지 않고서 내 몸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하겠느냐? 무슨 방법이라도 네가 하라는 대로 할 테니 부디 나를 좀 살려 다오.”

운룡은 자신이 생각한 치료의 방법으로 ‘두꺼비를 잡아다가 환자의 손가락을 물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실인즉 운룡이 사용하고자 하는 약물은 두꺼비가 아니라 까치독사였으나,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그렇게 둘러서 말한 것이었다. 물론 환자의 큰아들에게는 자신의 그런 의도를 사실대로 얘기해 주었다.

“야, 정말로 독사에게 물리게 하면 우리 아버지 병이 낫는 거냐?”

“아이 참, 나를 믿으래도 그러네. 아무 염려 말고 내일 나하고 뱀이나 잡으러 가.”

소년 운룡은 걱정 때문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는 총각을 도리어 다독거려 주었다.

다음 날, 운룡은 당나귀 가죽과 곰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준비하여 환자의 아들들과 친구 몇 명과 함께 까치독사를 잡으러 나섰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뱀을 잡아 자루에 담아온 운룡은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가 해가 완전히 기운 연후에 환자의 집으로 갔다. 환자의 방에 호롱불도 켜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환자의 큰아들과 운룡만이 들어가 조심해 가며 자루 속의 뱀을 꺼냈다. 환자의 큰아들에게 뱀의 머리를 집어 입을 벌리게 한 뒤, 운룡은 환자의 엄지손가락을 잡아 뱀입으로 집어넣고 독사의 이빨이 환자의 살을 파고들도록 꼬옥 눌렀다. 독사 독수를 환자의 체내에 주사시켰던 것이다.

“으, 으……! 웬 놈의 두꺼비 이빨이 이렇게 야무진가?”

환자는 독사의 이빨이 엄지손가락을 파고들 때 통증을 느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제 다 됐어요.”

운룡은 촛불에 불을 붙여 비로소 방 안을 밝혔다.

“이게 뭐냐? 이, 이건 뱀이 아니냐?”

환자는 자신의 손가락을 물었던 뱀을 보고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아저씨가 놀라서 싫다고 하실까봐 잠깐 거짓말을 했어요. 이제 아저씨는 살았어요.”

운룡의 눈에는 독사독이 환자의 혈관을 맹렬하게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심장으로 폐로 독수가 흘러들며 폐혈관속의 병독과 만나는 것이 느껴졌다. 환자는 독과 독이 만나는 순간 잠깐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 같았다.

환자의 큰아들은 겁에 질려 운룡을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허둥거렸다.

“우리 아버지 이러다 돌아가시는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의원에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큰일났다.”

다 죽어가던 폐암 환자인데 그 전에도 어떤 의원에 간들 못 다스리던 것을 이판에도 또다시 의원 타령이라 운룡은 기가 막혔지만 차분히 말했다.

“날 믿고 기다리면 네 아버지는 산다. 걱정 말고 기다려.”

아들은 죽어가던 아버지지만 그래도 막상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오자 겁이 덜컥 나 안절부절 못했다. 운룡의 터무니없는 말을 믿은 자신이 그 잠깐동안 원망스러웠으리라.

운룡은 환자의 폐암독에 의해 까치독사의 꼬리 끝부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독사치침주사법으로 환자가 완치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30분 뒤에 까치독사는 완전히 죽고 운룡은 자신의 독수 양의 계산이 맞았음을 한번 더 확인했다.

독사독은 극도로 맹렬한 독이라 조금만 양이 지나쳐도 오히려 환자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운룡의 눈은 어떤 초정밀 저울보다 더 정확하게 독수의 양을 잴 수 있었다. 미래의 나노 단위까지도.

“숨 쉬기가 편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구먼.”

독사의 치침(齒針) 주사를 맞은 지 세 시간쯤 지났을 때, 시커멓게 죽어가던 환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환자 자신이 회복되는 상태를 알렸다. 조마조마 기다리던 일가족은 눈에 띄게 생기가 보이는 가장의 행동거지에 기뻐했고 환자의 아내도 그저 운룡에게 감사했다.

“정말로 네가 하늘에서 내린 아이로구나. 고맙다, 고마워.”

“아주머니, 폐에는 보양이 제일이니 고깃국물로 몸보신 잘 해 드리세요.”

운룡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나선 환자의 장남이 운룡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수고했다, 운룡아. 네 덕분에 우리 아버지가 살아나실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운룡도 또 한 사람의 생명을 건지게 된 것이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운룡아, 참 이상하다. 다른 사람들은 독사에 물리면 죽는다고 난리가 날 텐데, 어째서 우리 아버지는 독사에 물려야 병이 나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운룡은 어둠 속에서 빙그레 웃었다.

“응, 그거…….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환자의 몸에 들어 있는 병의 독수를 100으로 보면 독사의 독수는 36에 지나지 않아. 그런데 독사의 독수 36과 환자의 독수 36이 서로 중화됨으로써 원기를 돋우는 보양제가 되어 환자를 회생시키는 것이고, 환자의 나머지 독수 64가 독사를 죽게 하는 거야.”

운룡은 나름대로 상대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였지만, 환자의 아들은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덧붙여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여하간 너는 우리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사람임에 틀림없구나.”

죽어가던 또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해놓고 깜깜한 길을 대낮처럼 익숙히 걸어가는 운룡의 머리 위 밤하늘엔 별빛이 총총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저 그 뿐이었다. 식민지의 밤하늘 한 귀퉁이에서 가련한 한 목숨을 경천동지할 새 의학으로 완치시켰지만 소박한 환자 가족의 고마움의 말 한 마디가 운룡이 받은 전부였다. 그러나 하늘과 땅과 만신이 모두 엎드려 운룡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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