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20] 1917년 9살 운룡, 죽염이라는 신물질 탄생시켜
‘하늘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 집안에 신의(神醫)를 내리셨구나! 장차 나의 손자 운룡에 의해서 세상은 새로운 의학의 시대를 맞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내 평생의 살아온 이유가 이 아이를 보기 위함이었던 게로구나. 아,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김면섭은 운룡이 창안해낸 방법대로 대나무소금(죽염)을 만들어보기 위해 장비를 마련하게 하였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였기에 멀리 남쪽에 사람을 보내어 왕대나무를 사오게 하고 운룡이 제시하는 대로 쇠그물이 안에 달린 커다란 철통을 만들게 했다.
화력을 최대한으로 올리기 위해 운룡이 고안해낸 고열 장치인 풀무와 풍로를 제작했다. 그것은 바람을 불어넣되 그 바람이 좁은 관을 통하여 세찬 기운으로 화로 안의 불길을 돋울 수 있도록 특별히 고안된 풍로장치였다. 운룡의 둘째형 김봉진 역시 천재적인 인물로 당시 일본 기계공학 서적을 탐독하여 공학에 밝아 두꺼비집을 발명하여 영국에 제조법을 넘긴 사실이 있다. 운룡은 이 둘째형의 방에서 기계공학책을 심심풀이로 틈틈이 읽어 기계발명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운룡은 하나하나 일꾼들에게 그림을 그려 보이며 이것 저것 지시하여 드디어 머릿속에서 원리로 발명해낸 죽염을 세계 최초로 만들어 보일 준비를 다하게 되었다. 소나무 장작 이외에도 연료로 송진과 관솔을 구해오고 일꾼을 시켜 깊은 산속에 가서 황토를 파오게 하고 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9세 신동 운룡의 아이디어대로 대나무소금 만들 만반의 준비가 완료되었다.
일꾼들은 시키는대로 왕대나무를 잘랐고 왕대나무속에 천일염을 다져넣은 뒤 황토를 발라 마개를 했다. 손자가 말하면 할아버지가 지시하고 일꾼들은 소금 든 대통을 철통에 차곡차곡 채워넣고 소나무로 불을 때고 다음 날 열이 식으면 소금을 꺼내 재를 떨어내고 절구에 빻아 다시 새 대나무에 다져 넣고 거의 스무 날이 지나가는 동안 총 여덟 번을 구워내었다.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면 대나무가 타면서 죽력이 소금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물론 황토의 극미량 약성분도 화력에 의해 소금기둥속에 함유된다. 이 소금기둥을 식힌 후 가루로 빻아서 다시 새 왕대나무에 다져넣고 황토로 마개를 하고 처음과 같은 방법으로 불을 때 이와같은 과정을 여덟번 되풀이하니 왕대의 죽력성분은 8번이나 고스란히 소금속으로 배어들어간다.
마침내 마지막 아홉 번째 소금을 용해(鎔解)시키기 위해 운룡의 창작품인 풀무와 불통이 동원되었다. 이 때만큼은 운룡도 바짝 더 신경 쓰는 듯 보였다. 별보다 더 광채로운 두 눈을 번뜩이며 자신이 고안해낸 장치에 무슨 하자가 없는지 이모저모 다시 살펴보았다.
운룡이 고안해 장치한 풍로에 송진을 불어넣으면서 바람을 풀무질하여 잡아넣어 돌리니 순간적으로 고열이 발생하여 불길은 쇠통을 녹일 듯이 고온으로 올라갔다. 두툼한 쇠통이 불을 받아 빨갛게 달아, 그것마저도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은 상태에서 송진을 불어넣어 더욱 더 화력을 높이니 마침내 철통 속에서 죽염이 용암처럼 녹아 시뻘건 불물이 되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일꾼들은 쇠를 녹인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소금을 녹인다는 말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어 죽염이 액체로 끓어 나오는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의 눈에는 아홉 살짜리 운룡이 아이인지 어른인지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존재로만 비쳤고 이 아이가 이상한 짓거리로 만들어낸 이 끓는 대나무소금이 100년 후 온 세상에 암약으로 퍼져나가게 될 죽염이라는 신물질이 되리라는 것을 그 누구도 꿈에도 몰랐다.
김면섭도 일찍이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운룡의 말대로라면 태백성의 신철분은 그런 상태에서라야 소금 속에 깃든다고 했으니, 철통 속에서 끓는 소금은 그대로 우주로 통하는 길목이 되는 셈이요 우주의 정기를 받아내는 그릇이 되는 셈이었다. 김면섭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마지막 불질을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다.
드디어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대나무 소금, 용암처럼 빨갛게 흘러내리던 불물이 식으면서 금강석처럼 반짝거리는 죽염(竹鹽)으로 화한 신비한 모습 앞에서 김면섭은 꼼짝없이 넋을 잃고 말았다. 용해되었다가 식을 때 결정체를 이루며 굳은 죽염의 형상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 듯 광채롭고 금강산 만물상 모양으로 뾰족뾰족 기기묘묘, 천산(千山)이 자유자재로 변화하며 물결치는 듯한 모습 같기도 했고, 잠룡(潛龍)이 마침내 물결을 일으키며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 같기도 했다.
김면섭은 마음속으로 밀려오는 기쁜 감동을 만끽하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금일, 신의로서 세상에 온 나의 손자 운룡의 지혜에 따라 신약인 죽염의 참모습을 대하였으니 실로 무량한 감개를 표현할 길이 없구나.’
죽염의 결정체는 김면섭의 눈앞에서 앞으로 구할 무수한 인명의 생명 빛을 암시하는 듯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뿜으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1917년 드디어 세계 역사속에 죽염이라는 신물질이 아홉 살 천재의 머리에 의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소금이라기보다 보석같은 죽염을 바라보면서 김면섭은 모든 것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운룡아, 죽염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주련. 이 할애비는 소금이 옛날부터 그저 소염제로 좀 써왔다는 정도만 아는데 네가 만든 죽염의 원리에 대해서는 도통 알 수가 없구나.”
“처음 지구에서 바다가 이루어진 이후 바다는 오랫동안 지구 속의 불기운을 받아 독극물을 이루어왔는데 이 독극물은 지구 최고의 독극물로 어떤 병균이나 독소도 죽이고 소멸시키는 힘이 있어요. 지나치게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되지만 적당히 먹으면 몸속의 어떤 병균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지요. 이 물질이 바로 수정의 핵입니다. 우리나라 서해안 연평도 주변의 바닷물에는 이 수정의 핵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무궁무진한 신약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요. 백두산 천지에서 한반도를 거쳐 흘러온 감로정이 냇물속에 섞여 서해안 바닷물로 모두 모이는데 바다의 수정의 핵과 한반도 땅을 흐른 감로정이 합성되어 최고의 활인핵이 되는 것이지요. 앞으로 도래할 괴질의 시대에는 이 활인핵이 수많은 생명을 살려낼 겁니다. 죽염은 바다속의 활인핵을 추출해낸 것입니다. 수많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비의 영약이지요.”
김면섭은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아이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지구속은 불덩어리이고 바다는 지구의 불에서 나온 화독과 물의 수정을 동시에 함유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에서 합성된 감로정이 강물을 따라 모든 땅의 독과 약성분과 함께 쓸려 서해바다로 흘러들어온다. 이 모든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바닷물속의 결정체에서 독만 제거해내고 약성분은 그대로 보존하고 오행의 원리에 따라 대나무와 황토와 소나무와 철통으로 약성을 보충해준 것이 바로 죽염이다.
죽염에는 소독, 살균, 진통, 지혈, 강장 등 다양한 기능이 있어서, 체했을 때 먹거나 염증이 난 곳에 바르면 신비할 정도로 효능이 있었다. 죽염으로 양치질을 하면 이가 튼튼해지고, 죽염을 탄 물로 눈을 씻으면 시력이 좋아졌다. 위염이나 장염을 치료하고 지독한 감기나 고열에도 빨리 열이 내렸으며 기침 가래에도 특효였다. 사고로 살이 찢어진 곳에도 죽염을 뿌리면 지혈이 되고 염증이 생기지 않았다. 모든 환자에게 어떤 단방약보다 효력이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