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22] 조부 김면섭은 따뜻하고 모자람 없는 유일한 대화상대였다

꽃길 함께 걷는 할아버지와 손자

‘이 아이는 분명 나의 손자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어떤 이름으로 달리 불러야 옳단 말인가? 이 아이를 일반 사람과 똑같은 사람으로 여겨도 되는 것일까? 이 아이는 정녕 사람의 육신을 빌려 이 세상에 온 신이란 말인가?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우주와 인간 존재에 관계된 비밀을 저리도 환하게 꿰뚫어볼 수 있으며, 그 질서의 흐트러짐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할 수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모를 일이로구나!’

“운룡아, 할아비는 오늘 너에게 난생 처음 듣는 여러 가지 얘기를 듣게 되는구나. 무슨 말을 해도 좋으니 조금도 마음 쓰지 말고 무엇이든지 얘기해 보거라. 보통 사람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곳에 무궁무진한 약물이 있다고 하는 네 얘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 좀 더 듣고 싶구나.”

김면섭은 대화의 문을 아예 활짝 열어젖히듯 그렇게 말했다.

운룡도 그런 기회가 흔치 않다는 것을 느꼈음인지,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말했다.

“그것의 전부를 말씀드리기에는…… 그게 간단치가 않아요. 또 그중의 대부분은 지금 시대에는 아직 필요치 않기도 하고요.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으니까, 간단한 것 몇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우리나라의 산삼이 얼마나 훌륭한 약재인지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중국 의서에서는 인삼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는 산삼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셨어요? 그들도 고려 인삼을 뛰어난 약물로 여겼잖아요. 자기네 땅에서 나는 산삼은…… 별로 나지도 않지만…… 난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우리나라 땅의 공중에는 삼의 색소와 분자가 충만해 있으나, 중국 땅의 공중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에요. 거기에다 그 산삼의 분자를 키워내는 땅의 성분에도 우리나라와 중국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지요.”

운룡은 비록 친할아버지를 상대로 하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누구에게인가 자신의 속생각을 피력한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듯, 조급하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 설명하였다.

“삼의 분자라는 것은 씨앗을 말함이더냐? 어째서 그것이 우리 땅에는 충만한데 중국 땅에는 희소하다는 겐지 말해 보거라.”

김면섭은 자신이 알 수 없는 점에 대해 손자에게 솔직한 의문을 드러내며 물었다.

“씨앗은 종자이고 분자는 씨앗과는 다르지요. 분자라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질 바탕소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것이 천계의 운행에 따른 감응으로 뭉쳐져 산삼에 깃들면, 비로소 산삼이 산삼이게 되는 거예요. 간혹 중국에서 나는 삼에 아무런 약성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은 바로 그 삼 분자의 결핍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모양은 산삼의 모양을 갖추었더라도 그 약성은 산삼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땅이 특별한 것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제가 할아버지의 손자로 태어난 것도 그것과 무관치는 않아요. 백두산 꼭대기에 있는 하늘못, 즉 천지(天池)는 바로 천계의 은하수를 담는 그릇과 같은 것이에요. 그래서 천지에 괴어 있는 물은 보통 물과는 다르지요. 은하수에서 곧바로 내려오는 감로(甘露)의 정(精)이 그대로 들어 있는 천지의 그 물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연안의 바닷물로 스며들어가 우리나라 전체를 영역(靈域)으로 감싸 안게 되는 거예요. 더구나 우리 한반도는 지구의 간방(艮方)에 위치하는, 지구의 두뇌 격 자리에 있어요. 따라서 하늘 위의 칠성(七星)과 오행성(五行星)ㆍ삼태성(三台星)의 정기를 모두 함유함으로써 지상의 으뜸 신약(神藥)이라고 할 수 있는 산삼의 분자가 한반도 상공에 충만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 땅에서 자생하는 모든 식물과 곡식, 어류들에서는 특별한 맛이 나지 않던가요? 서해에서 잡히는 조기는 단맛이 있지만 중국 땅 조기는 퍽퍽하고 단맛이 덜하지요. 고사리같은 산나물과 약초도 맛과 효능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한반도 땅에는 감로정이 흐르고 한반도 상공 중에는 산삼분자가 빽빽이 분포해 있어서 그래요. 분자는 만물의 바탕이 되는 것, 물성의 바탕이라서 공이 아닌 색, 색소분자라고 할 수 있어요. 색소는 만물을 이루는 기본 요소이지요. 지상 만종의 동물, 식물은 서로 다 달라도 쪼개고 쪼개 근본으로 들어가면 마지막은 색소로 이루어진 게지요. 색소가 만가지 생명체의 기본바탕이고, 결국 생명체란 뿌리가 같은 색소합성체라고 할 수 있지요. 살아서는 지상에 색소합성체로 존재하고 죽어서는 색소가 분해되어 공간에 분포하게 되어 있지요. 병이란 것은 생명체의 몸에서 이 색소가 고갈되어 나타납니다. 지상 뭇 생명체의 몸에 고갈된 색소를 공간에서 합성하여 보충해주면 못 고치는 병이 없지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전 지구촌 사람이 병으로 죽는 법은 없도록 만들어 놓겠어요.”

동서고금에 다시 없을 의학의 원리를 술술 펼쳐놓고 인류구원의 소명을 피력하는 어린 운룡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김면섭은 감동을 넘어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김면섭은 평생토록 스스로를 학자라고 자부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반도 북방의 벽촌(僻村)에서나마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으며, 글을 읽고 학자로서의 체모(體貌)와 인품을 갖춤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선비이고자 노력해 왔던 사람이다. 글을 읽음에 있어서도 한쪽으로 치우친 편식으로 비뚤어진 시각(視覺)을 갖게 됨을 스스로 경계하여 유ㆍ불ㆍ선을 두루 섭렵하였고, 이웃에게 봉사하려는 마음에서 의서들을 탐독했다. 진리의 곁불 정도 쬔 수준에 불과해서 내세울 것은 없다고 하겠지만, 천문과 지리에 대해서는 누구를 상대해서라도 풍월을 읊어댈 정도의 식견은 갖추었다. 그러나 막상 어린 손자 운룡으로부터 지상의 모든 사물들이 천상의 별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거나, 백두산 천지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 등을 듣고 보니 자신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뿐이었다.

‘도대체 저 아이의 영안(靈眼)은 이 세상, 아니 저 우주의 어느 곳까지 보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국조(國祖) 단군(檀君)을 비롯하여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와 공자ㆍ노자ㆍ석가모니 등 여러 성현들의 행적을 읽거나 들어왔지만, 운룡이 얘기하는 것과 같은 내용은 접한 적이 없었던 김면섭은 할아버지로서 다시 한 번 손자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면섭은 운룡의 출생을 예견하고 찾아왔었던 김만득이 남겼던 당부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김공, 소생이 당부 드린 말씀을 잊지 마시고 새겨두셨다가 새 손자를 보시거든 부디 잘 보살피십시오. 이미 모르는 것이 없는 상태로 태어날 것이므로 특별히 가르칠 것은 없겠으나, 국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이 나라에서 새 하늘을 열어갈라치면 불필요한 고초를 당할 수도 있으니, 소생은 그 점이 염려됩니다. …….’

그리고 그보다 훨씬 오래전 자신의 생모, 그러니까 운룡의 증조모의 유택으로 노승예불 형국의 혈처(穴處)를 잡아준 외숙이 했던 말도 뒤이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해서 마음 한편에 걱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닐세. 무릇 세상의 이치가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하는 법인데, 자네나 자네 생가의 형제들 기량(器量)으로 이 천하 길지의 대복(大福)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지 적이 염려스럽네. …….’

때는 바야흐로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초기의 10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헌병 경찰 제도를 통해 무단 통치를 실시함으로써 한반도를 자기들의 영토로 하고, 조선인들을 일본인으로 동화(同化)시켜 나가려는 정책을 서서히 노골화하고 있었다. 궁벽(窮僻)한 산골 마을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그곳에까지 일제의 간섭이 자심(滋甚)하게 미치지 않는 편이었지만, 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그들의 우리 민족 말살 정책이 시시각각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했다. 뜻이 있는 우국지사들은 암암리에 항일 결사 조직을 갖춰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아무튼 예로부터 ‘뾰족한 돌은 정을 맞는다.’는 말이 있듯이, 운룡이 지닌 지혜와 의지를 생각할 때 일반적이지 않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인간 세계에서 도드라질 그의 장래가 심히 우려되는 것은 결코 김면섭의 기우(杞憂)인 것만은 아닐 것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는 그동안 읽으신 의서들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지만 필경 할아버지께서 고칠 수 있는 병의 종류에는 한계가 있었을 거예요. 세상에는 할아버지께서 고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상한 중병들이 많이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할아버지께서 읽으신 의서에는 그런 병들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할아버지께서도 그렇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앞으로는 쉽게 고칠 수 없는 새로운 질병들이 더 많이 생겨나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의서들의 어디를 들추어 봐도 그런 병들에 대한 치료약이나 치료법은 나와 있지를 않지요. 그래서 저는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모든 병들을 고칠 수 있는 신약(神藥)의 비밀을 소상히 밝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널리 이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의학을 남길 거예요.”

김면섭은 운룡의 얘기를 들으며 자신의 어린 손자는 단순히 ‘천재’라고 부를 만한 경지를 뛰어넘어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대저 학문에 있어서나 어떤 기술에 있어서 그 분야에 통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쌓아가는 노력과 훈련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자신의 손자 운룡은 특별히 그런 과정도 없이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으니 가히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며 신이 아니되 신과 같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한편으로 자신이 평생토록 쌓아온 학문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인가 하는 허탈감도 느꼈다. 글을 읽는 선비로서 ‘각근면려(恪勤勉勵)’의 덕목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해 온 세월이 그 몇 해이던가? 하지만 총기 어린 눈빛을 빛내며 자신의 생각을 밝혀 말하는 어린 손자의 끝을 알 수 없는 지혜 앞에서 하릴없이 압도당하고 마는 자신의 초라한 지식 역량이 마음속에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운룡이 천지 운행의 원리와 그 실상을 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김면섭은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가 찾아올 경우 그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지에 대해 손자에게 넌지시 물어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운룡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의방(醫方)을 내놓거나, 기존의 처방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운룡은 무엇이든지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 깊이 집중하고 생각하여 그 원리를 명명백백히 파악할 때까지 탐구하였다. 운룡에게는 애매모호한 것이 통하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확실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의 세계에 편입시키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의약의 발견이 있으면 바로 실험을 통해 직접 만들어 사실을 확인했다.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확실해질 때까지 더 쪼개어 생각하거나 근원적인 것에서부터 차근차근 더듬어 올라가 마침내 확실한 실상을 거머쥐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그에게 가장 훌륭한 반려자의 역할을 해준 것은 바로 운룡 자신의 조부인 김면섭이었다. 김면섭은 운룡에게 따뜻하면서도 모자람이 없는 대화 상대자였고, 그의 기상천외한 생각들을 너끈하게 받아들여 주는 유일한 이해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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