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19] 9세 운룡, 죽염의 이치를 조부에게 설명하다

“우리나라의 서쪽 바다에는 연평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 섬 주변의 해수(海水)는 다른 어떤 곳의 해수보다도 무궁무진한 신약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요. 백두산 천지에서 압록강을 거쳐 흘러온 감로정이 그곳 해중(海中)의 샘물과 감응하는 한편, 천계 수성의 조응을 받아 수많은 신약 성분으로 결정(結晶)되는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그 성분들을 정확히 추출하여 조합(調合)하면 수많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영약들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어찌 보면 소금이란 것은 바로 그 해수 성분의 조합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일반 소금 속에는 해수 속에 들어 있는 신약 성분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방법으로 구워서 써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거지요.”(본문 가운데) 사진은 연평도와 주변 바다

 

인산 김일훈의 조부 김면섭의 집은 의원이기에 각종 약초를 널어 말려 약초내음이 집안 곳곳에 배어 있고 늘 무언가 약을 만들고 있었다. 자연스레 운룡에게는 재미난 실험실이자 연구실이다.

얼마 전에는 죽력을 제조했는데 죽력이란 대나무 기름으로, 대나무를 잘라 통에 켜켜이 담고 불을 때서 대나무진액이 방울방울 나오도록 하여 이를 모아두었다가 환자에게 쓰는 것이다. 죽력은 중풍으로 가래가 기도를 막을 때, 폐열로 해수와 가래가 심할 때, 소아경풍, 고열, 가슴답답증, 고혈압, 당뇨에 효능이 있다.

알코올 분해작용, 항균작용, 콜레스테롤 강하작용, 해열, 소염, 혈압강하, 지갈제로 쓰인다. 운룡은 모든 약재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하나도 허투루 보는 법이 없이 세밀히 관찰하곤 하는데 죽력이 제조되는 과정도 유심히 쳐다보았다.

1917년 어느 날 운룡이 아홉 살 되던 무렵 김면섭은 마당 한켠 쇠죽 끓이는 아궁이에서 소금을 굽고 있었다. 소금을 한번 구우면 수분과 함께 나쁜 냄새가 나는 유독 가스가 날아가는데 이렇게 한차례 구워 독가스를 날려버린 구운 소금은 배탈이 나거나 체했을 때 소화제로 먹이면 그냥 소금보다 더 효과가 좋다. 구운 소금으로 양치하고 그 침으로 눈을 닦아주면 눈병이 잘 나지 않는다. 김면섭은 해마다 소금을 구워두고 상비약으로 요긴하게 잘 이용해 왔다.

한참을 할아버지가 소금 굽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아홉 살짜리 운룡은 마침내 할아버지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할아버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오, 우리 운룡이가 궁금했던 게로구나. 지금 할아비는 소금을 굽고 있단다.”

김면섭은 언제 보아도 귀여운 운룡에게 흐뭇한 미소와 함께 대답해 주었다.

“소금이요? 그건 뭣에 쓰려는 건가요?”

김면섭은 손자의 물음에 아무렇게나 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운룡이 여늬 아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부터는 언제나 운룡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번 이렇게 구운 소금은 약으로 쓰는 거란다. 이렇게 소금을 구워 놓으면 사람이 아플 때 병을 낫게 하는 효능이 생기는 거지.”

김면섭은 부지런히 불일을 하면서 운룡에게 소금 굽는 방법이며 그 용도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한번 구운 소금은 운룡의 집안에서만 전승되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민간에서 일종의 ‘가정상비약’ 정도로 사용되어 오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쇠죽 끓이는 아궁이에서 소금을 구워 수분을 제거한 후 보관해두고 사용했다. 소금에는 소독·살균·진통·지혈·강장·조미 등 다양한 기능이 있어서, 체했을 때 먹거나 상처 난 곳에 바르는데 생소금보다 구운 소금이 더 효과가 있었다.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면 이가 튼튼해지고, 소금을 탄 물로 염증이 생긴 눈을 씻으면 안염이 좋아진다.

경험 많은 지혜로운 노인들 중에는 자체적으로 소금을 구워 놓고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사용하기도 하고,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마침 운룡의 집에서도 먼저 구워놓았던 소금이 얼마 남지 않게 되어 새로이 굽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 소금을 굽는 건 좋은 방법이긴 한데 할아버지 방법은 너무 미개해요.”

김면섭은 손자의 당돌한 말에 바짝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오늘도 이 녀석이 무슨 신통한 말을 하려는 건가.’ 하고 생각한 김면섭은 부지런히 일하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운룡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소금이 왜 약이 되는지 아세요?”

“글쎄다……. 네가 막상 물으니 할아비도 정확하게 대답하기가 어렵구나. 소금은 옛 의서에도 있듯이 곪은 것을 뽑아내고 새 살이 빨리 돋아나도록 도와주는게 아니더냐. 보통 소화가 잘 안 될 때 소금을 먹는다거나,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바르면 잘 곪지 않는 것으로 보아 소금이 약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구나. 아마도 소금 속에는 사람의 몸에 좋은 성분도 있고 해로운 성분도 있기 때문에, 불로 구우면 그중의 해로운 성분은 열에 의해 날아가고 몸에 이로운 성분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운룡은 아는 자의 여유가 가득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너무 부족처가 많아요. 우리나라의 서쪽 바다에는 연평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 섬 주변의 해수(海水)는 다른 어떤 곳의 해수보다도 무궁무진한 신약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요. 백두산 천지에서 압록강을 거쳐 흘러온 감로정이 그곳 해중(海中)의 샘물과 감응하는 한편, 천계 수성의 조응을 받아 수많은 신약 성분으로 결정(結晶)되는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그 성분들을 정확히 추출하여 조합(調合)하면 수많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영약들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어찌 보면 소금이란 것은 바로 그 해수 성분의 조합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일반 소금 속에는 해수 속에 들어 있는 신약 성분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방법으로 구워서 써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거지요. 할아버지, 소금은 수정(水精)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사람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갈증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소금을 먹으면 갈증이 심해지는 까닭을 아시겠어요?”

김면섭은 운룡의 거침 없는 신비로운 이야기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네 말을 듣고 보니 거 정말로 이상하구나. 소금이 수정의 산물이라면 어찌하여 갈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인지 궁금하구나. 운룡아, 그래 너는 그 까닭을 알고 있느냐?”

김면섭은 곁으로 바짝 다가와 쪼그려 앉은 운룡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김면섭의 눈에는 운룡의 시원스럽게 넓은 이마와 오똑한 콧날이 그날따라 유난히 빛나 보였다.

“그럼요, 알다마다요. 바닷물 속에는 여러 가지 성분들이 녹아 있어요. 사람의 몸에 약이 되는 성분뿐만 아니라, 각종 광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바위들의 성분이나 육지에서 흘러들어간 갖가지 독성 성분도 함께 들어 있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지구 중심은 불로 이루어져 지구속의 화독이 모르게 모르게 바닷물 속에 스며들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화독이 있는 바닷물로 만든 일반 소금에는 그런 약과 독이 그대로 혼재해 있게 되므로 우리 몸 안에서 갈증을 일으키는 거예요. 소금 속에 들어 있는 독성은 화기를 띠며, 그 화기에 의해 갈증이 일어난다고 보시면 돼요. 소금 속의 독성 성분들을 제거해내야 완전무결한 약이 되는데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극강한 온도로 열을 가해 내보내는 거예요. 소금을 그렇게 뜨거운 불로 녹일 때 독성은 날아가고 천상(天上) 태백성(太白星)의 신철분(辛鐵粉)이 그 속에 들어오게 되고, 대나무의 약성분과 황토의 약성분, 그리고 불을 땔 때 쓰는 소나무의 약성분 그리고 쇠통의 금성분이 합해져서 금목수화토 오행이 완전해야 새로운 신약(神藥)이 합성되는 거예요. 그렇게 순수한 수정(水精)의 핵으로 만든 소금은 오히려 심한 갈증이 수반되는 소갈증(당뇨병)을 다스리는 데 최상의 약이 되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만독을 해독하고 만병을 다스리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그게 나병(癩病)을 고치는 신약이라고 한다면 할아버지께서는 쉽사리 믿기지 않으실 거예요. 나병은 크게 화독(火毒)으로 인한 것과 지나친 습(濕)함으로 인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증상을 보면 원인을 알 수가 있어요. 뼈가 녹아 들어가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화독에 의한 나병이고, 온몸의 살갗이 짓물러 터지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습독(濕毒)에 의한 나병이에요. 하지만 수정만으로 이루어진 소금을 쓰면 그러한 나병을 고칠 수 있어요.”

‘이 아이는 번번이 할아비를 놀라게 하는구나!’

김면섭은 다시 한 번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병이라 하면 천형(天刑)에 의한 질환으로서 그 병에 걸린 사람이나 제 아무리 명의(名醫)라 자처하는 사람이라도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병이었다. 그런데 운룡은 민간에서 가정상비약의 용도로 만들어 쓰는 소금으로 그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하니, 김면섭으로서는 쉽사리 믿을 수가 없는 게 당연했다.

“지금 할아비가 굽는 이 소금으로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얘기냐? 나병은 하늘이 내린 천질(天疾)이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고칠 수가 없다고 알려졌거늘, 흔하디흔한 소금으로 그 무서운 병을 고칠 수 있다니 네 말마따나 믿을 수가 없구나.”

“할아버지도 참……. 할아버지처럼 한번 구운 소금으로는 어림도 없고 제가 생각하는 완전무결한 방법으로 대나무소금을 만들어야 아무리 악성 나병이라도 완치될 거라는 말씀이예요. 할아버지, 나병도 단지 병일 뿐이에요. 체내에 들어온 독이 화독이건 습독이건 그것이 뼈와 살과 기름을 태워 녹이는 것이 병이니까 독을 물리치고 새 살이 생기게 하면 못 고치는 병이 있을 수 없지요.”

김면섭은 운룡이 말하는 대나무소금을 만들면 나병까지도 고칠 수 있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소금 속에 들어 있는 독기를 빼내려면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한번 구워내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대나무 소금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약으로 쓸 수가 없어요. 대나무에 그것도 3년 이상된 왕대나무에 소금을 넣고 깊은 산속 황토로 마개를 하고 소나무로 철화로에 넣어 굽고 또 굽고 하여 아홉 번을 굽되, 맨 마지막에 가서는 소금이 녹아 물처럼 될 때까지 극강한 열을 가해야 해요. 그래야만 소금 속의 독성과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되고, 불기운에 따라 태백성(太白星)의 신철분(辛鐵分)을 소금 속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만든 대나무 소금이라야 약효를 제대로 나타내게 되지요. 신철분은 곧 사람의 몸 안에서 뼈를 이루고 힘줄을 만드는 원료 물질로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가장 중요한 물질 중의 하나이지요.”

천상유수같은 아이의 말에 김면섭은 넋이 나갔다. 고금의 어느 의서에도 없는 이야기가 아이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자 신의 경지를 접하듯 정신이 황홀해질 따름이었다.

“네 눈에는 태백성이나 신철분이 보이느냐?”

김면섭은 너무도 신기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 저는 소나무 장작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송진의 좋은 약성분이 솔솔 흘러나오는 것이 눈으로도 보이고 냄새로도 맡아져요. 하늘을 올려다보면 태백성정의 별빛이 우주 공간을 건너 지상의 생명체에 응하는 것이 보여요. 온 세상에 좋은 약성분이 지구에 이렇게 많아도 우리 인간이 미개해서 이용할 줄 몰라 그러는데 이걸 다 이용할 수 있도록 제가 만들어놓을 거야요.”

운룡의 확신에 찬 어조에 김면섭은 그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아이가 정녕 나의 손자란 말이던가. 오 부처님! 이 아이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천지신명이여 도와주소서!

“할아버지, 소금을 이렇게 한번 굽는 것은 너무 미개한 방법이예요.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소금을 대나무에 넣고 황토로 마개를 하고 철통에 넣어 소나무 장작으로 태우면 다섯가지 약성분을 한데 합칠 수 있지요. 그리고 한번 구워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소금독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그걸 가지고 어찌 사람을 살리는 약으로 쓸 수 있겠어요. 구전금단을 아홉 번 구워야 되듯이 구전금단(九轉金丹)의 원리로 아홉 번을 반복해서 굽고 마지막에는 송진으로 화력을 극강히 해서 소금을 녹여내리면 완전무결한 신약이 만들어질 수 있어요. 소금을 한번 구워서는 소금속의 독성분을 제거할 수도 없고 그까짓 약한 화력으로는 독성을 빼내지도 못해요. 소나무 송진으로 화력을 극강히 올려 소금을 완전히 녹아빠지게 해야만 소금속의 독극물은 남김없이 분해되어 날아가고 동시에 천상 태백성의 신철분이 불기운을 따라 소금속으로 합류해 들어올 수 있어요. 소금속에 합류된 신철분은 인체의 뼈를 이루고 힘줄을 만드는 재료인 백금성분이지요.”

김면섭은 이제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 손자의 말을 오롯이 수긍하였다. 마음속으로 감읍(感泣)하여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은 심정을 느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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