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⑩] 나이와 상관 없이 알 수 있는 것인데…

더일러스트레이티드런던뉴스 삽화 ‘조선인들’ (1865년 1월). 쇄국의 길을 걷던 조선에 물밀듯이 들어온 서양학문은 조선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인산 죽염으로 잘 알려진 인산 김일훈(1909~1992) 선생은 각종 암치료 신약을 발명하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 후에는 독창적인 한방 암치료를 설파하며 난치병 환자를 평생 치료했다. 선생은 만성 질환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일이 없는 세상, 육신이 파괴되는 질병의 고통이 사라지는 세상, 암 환자 발생이 1%대로 낮춰지는 세상, 80대 노인들이 20대 청년들과 함께 일하며 낙원을 만드는 꿈. 이는 선생과 셋째 며느리로 인산 김일훈 문하에서 선생의 묘수, 비법을 전수받은 최은아 한의학박사의 바램이다. <아시아엔>은 최은아 박사가 쓴 <인산 김일훈 선생 전기 의황(醫皇)을 연재한다. 독자들의 애독과 건강 증진에 보탬 되길 바란다. <편집자>

당시 마른 솜에 물기가 스며들듯 암암리에 밀려들어오던 서구 문물은 모든 식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여러 가지 물건들과 사상(思想)들은 폐쇄적인 우리 사회 식자층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중에 특히 여러 사람들이 토론의 주제로 삼았던 것은 천주학과 각종 과학에 관한 서적들에 소개된 내용들이었다.

“과연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한 조물주가 있으며, 그 조물주가 우리 인간을 지옥에 보낼 수도 있고 천당에 보낼 수도 있을까요?”

“그게 혹세무민하는 소리가 아니면 무엇이겠소? 야소라는 인물이 조물주의 아들이라는 것만 시인하면 천당에 갈 수 있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요설을 제정신을 가진 자라면 어찌 받아들일 수가 있겠소?”

“그런데도 지난 1백년 동안…… 대원위 대감 때에 이르기까지 그 모진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무서운 기세로 민간에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면, 천주학에도 뭔가가 있다는 증거 아니겠소?”

“우리도 서양인들의 과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여튼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 기술로 희한한 물건들을 만들어 갖은 재주를 다 부리는 모양입디다. 그런 걸 ‘과학’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소?”

“어디 그뿐인 줄 아십니까? 서양에서는 의술도 우리네와는 달라서 사람에게 병이 나면 배를 갈라 오장육부 중에 병든 부위를 찾아내 그것을 떼어내어 병을 고친다지 않습니까?”

“예끼, 그런 끔찍한 말씀을……. 아니 사람의 배를 가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이오? 심장이 병들었다고 그 심장을 떼어내면, 그 심장이 새로 생겨난답디까? 그런 말도 되지 않는 말씀일랑 아예 하지도 마오.”

운룡은 할아버지와 내방객들 사이에 오가는 그런 얘기들을 듣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어 참지 못해 불쑥 끼어들곤 하여 혼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김면섭은 동네 어른들과 함께 사랑방에 모여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문으로 번역된 영국의 천문학 서적을 읽은 이가 서양의 천문학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화제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귀동냥으로 들어온 여러 가지 사실에 대한 막연한 추측과 신기한 서양 문물에 대한 과장된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서양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걸 한다는구먼. 무슨 원리를 밝혀내고 그것을 이용해서 갖가지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로 또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고 하더라고. 심지어는 저 하늘의 별들을 죄다 들여다볼 수 있는 기계도 만들었다지 뭔가.”

“그게 망원경이라는 것일세. 얼마 전에 한문으로 번역된 서양의 천문학 책을 본 일이 있는데, 거 참 대단하더군. 그러나 저러나 이 땅 덩어리가 둥글게 생겨 ‘지구(地球)’라 하고, 그 지구가 해를 중심으로 우주 공간을 돌고 있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인지 도통 모르겠더군. 서양의 천문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어서…….”

“아무튼 서양은 그 과학이라는 학문의 힘으로 못 이룰 바가 없을 것이라고 호언한다는데, 장차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구먼.”

“아마도 미래에는 서양의 과학이 주도하는 세상이 올 것이야.”

그 자리 한 귀퉁이에 있는 듯 없는 듯 끼어 있던 운룡이 그만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할아버지,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 말씀이나 똑같아요. 서양 사람들이 하는 천문학이라는 건 그 망원경이라는 물건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보는 것인데, 그게 무슨 천문학인가요? 천문학을 제대로 하려면 온 우주를 빠짐없이 쳐다보고 그 운행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그중 터럭 끝만큼만 보아가지고서 무슨 천문학이라고 하겠어요? 서양의 과학이라는 게 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인줄 아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대단하게 생각하실 것 없어요.”

김면섭을 비롯한 좌중의 동네 어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허, 이런 맹랑한 녀석을 보았나? 김공, 거 손자 녀석 말버릇 좀 단단히 고쳐줘야겠소.”

운룡은 그날 할아버지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버릇없이 말참견을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다시는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나서거나 끼어들지 말거라.”

운룡의 아버지는 꾸중을 내린 뒤에 운룡에게 다시 한 번 엄중히 입단속을 시켰다.

‘왜 내 눈에 환히 보이는 천문의 세계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되는 걸까? 알고 본다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것인데,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면서 불 줄 아는 사람이 말해줘도 들으려조차 않는구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