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⑫] 운룡은 ‘삼국지’ 등 고전 속 천재들과 대화하는 게 낙이었다

운룡이 《삼국지》에 재미를 붙이고 거듭 읽는 것은 실생활에서 가족들이나 동네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로는 도통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었다.

‘왜 사람들은 나의 겉모습만 보고, 내 안에 들어 있는 참 모습은 보려고 하지 않는 걸까? 하기야 내 몸 속에 흐르는 피가 어떤 독사의 독수(毒水)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영독(靈毒)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통 사람들이 알 수는 없겠지.’

“너 뱀에 물렸는데 정말 괜찮겠니?”

김면섭이 여전히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손자에게 물었다.

“네. 저는 괜찮다고 했잖아요.”

운룡은 대수가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것 참 알 수 없는 일이로고. 다른 애가 뱀에게 물리면 안되느데 어째서 너는 물려도 괜찮다는 게야?”

“할아버지. 무릇 독이 독을 치는 법이라 핏속에 독이 없는 맹물인 보통사람은 독사에 물리면 독사독에 중독이 되어 죽지만 제 피는 영독이 차 있어서 독사가 오히려 저의 영독에 중독되어 죽는 거예요. 독사독은 제 피의 영독에 중화되어 힘을 잃고 제 영독이 오히려 독사 몸에 들어가 중독시키는 거예요. 어째 할아버지는 의학을 많이 공부하셨는데 그것도 생각 못하시나요.”

“허허 그놈 참.”

핀잔을 받은 김면섭은 그래도 대견하고 귀여워 죽겠다는 듯 너털웃음을 웃었다.

김면섭은 찾아온 스님과 대화를 하던 중에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아이들로부터 기별을 받고 밖으로 나갔던 것인데, 손자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기이하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었는데 딴은 독이 독을 친다는 의학적 원리가 맞는 것 같기도 하였다. 다만 인간의 몸은 거의 다 비슷비슷한데 전혀 다른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게 자기로서는 납득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 소동에 함께 따라 나온 노스님도 그 일대 사람들에게 도사로 알려져 있는, 두무산 영기봉 은적사의 무주 스님이었다.

“소승이 처사님의 손자 상호를 보건대 불력을 크게 떨칠 법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마도 신장들의 보호를 받아 불 속에 뛰어들더라도 상함을 입지 않을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오니 처사님께서는 손자의 일로 그리 자심한 걱정일랑 하지 않으셔도 무방할 듯싶습니다.”

스님은 자기대로의 해석을 할 뿐이었다. 독이 독을 친다는 과학적 중화방법은 스님에게는 인식되지 않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운룡은 제 방으로 들어가 벌써 몇 번째 읽는 것인지 모를 《삼국지》를 펼쳐 들었다. 방 안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날빛이 스며들어와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 적벽대전의 실감나는 대목을 읽기에 충분했다. 운룡이 《삼국지》에 재미를 붙이고 거듭 읽는 것은 실생활에서 가족들이나 동네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로는 도통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었다.

비록 과장이 가미된 이야기이지만 그 역사 속에는 보통 사람들 틈에서 고독하고 외로운 자신의 수준에 얼추 맞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출귀몰하는 제갈공명의 전술과 조자룡의 창 솜씨, 조조의 빈틈없는 지략, 그리고 유비, 관우, 장비의 우애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어린애라고 묵살당하며 자신의 생각조차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도록 함구령이 내려진 가운데 생활하는 운룡으로서는 그 같은 이야기 속에 잠시 동안이라도 침잠해 들어가는 편이 훨씬 더 속 편했다. 실제로 제갈공명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저 무지한 촌무지렁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훨씬 즐거울 것 같았다. 꿈속에서 운룡은 화타나 편작이나 제갈공명이나 공자님과 대화를 주고 받았다.

“화타 선생, 선생은 애시당초 치료 방법이 잘못된 것 같아요. 조조처럼 의심많은 놈에게 뇌속의 종양을 들어낸다고 칼을 들이대면 암살범으로 몰리기 딱 좋소. 조조같은 놈은 탕약으로 머릿속의 종양을 말라붙게 치료해 주어야지요.”

화타는 어린 운룡의 사리에 맞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제갈공명님. 사람들은 무식해서 당신이 천하의 재사라 하는데 내 보기에는 형편없소. 자기 몸의 병도 못 고치는 양반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자지 않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밤낮없이 그렇게 애쓰며 몸을 혹사하면 과로독이 피에 차서 장부를 녹여버리는 걸 몰랐소?”

그러면 공명은 멋쩍게 웃는다.

“공자님도 그래요. 우째 사랑하는 제자 안회의 병에 그리 깜깜해서 죽게 내버려둔단 말이에요. 공자님쯤 되면 뱃속의 병은 알아보셔야지요.”

공자님도 무안하여 미소만 지을 뿐이다.

현실에서 외로운 운룡은 책속의 천재들과 대화하는 것이 낙이라면 낙이었다. 그러던 운룡에게 드디어 깨달음의 때가 다가왔으니, 그것은 1915년의 어느 여름 날이었다. 운룡이 일곱 살되던 해이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깬 운룡은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날이 밝으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운룡은 이부자리를 개어놓고 방바닥에 좌정하여 정신을 집중하기 위하여 눈을 감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지만 운룡에게는 모든 사물이 환히 드러나 보이니 눈을 감고 시선을 거두어야 머릿속이 조용해진다. 운룡은 수정보다 맑은 정신으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였다.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과 땅위의 뭇생명들, 약초들, 짐승과 인간, 썩고 문드러지고 망가지는 육체, 그리고 고통, 약성에 대해서 눈에 보이지만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원리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고 있다. 목마른 자의 타들어가는 갈증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을 속시원히 해결해주는 중요한 열쇠를 찾지 못한 답답함이 운룡의 가슴을 죄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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