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⑬] 무지개 보는 순간 ‘삶과 죽음’ 규명하는 의학원리를 깨닫다
‘뭇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 것인가? 우주와 만물과 생명의 관계는 무엇일까? 나고 병들고 죽는 원리가 도대체 무엇이지?’
운룡은 요즘 내내 머릿속을 맴돌며 떠나지 않는 의문에 다시 사로잡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틈에 기세 좋게 퍼붓던 새벽 소나기가 그치고, 어둠이 걷혀가고 있었다. 대문을 나서는 운룡의 주위로 비에 씻긴 세상이 어둠과 빛 사이의 중간 지대로 형체는 있으되 모든 사물이 색을 띠지 않은 채 회색속에 잠겨 있었다. 심호흡을 몇 번 해보았다. 새벽 공기의 청량한 기운이 폐를 타고 흘렀다.
이 세상의 약의 비밀을 풀어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힌 채 운룡은 뒷동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다란 언덕에 올라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땅을 내려다보며 넓은 창공으로 저 멀리 우주를 조망하며 생각에 잠기곤 하는 버릇이 있었던 터였다. 먼동이 트면서 초목들이 새벽의 회색 바다 속에서 어슴프레 푸른 빛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풀잎에 맺혀 있다가 발끝에 차이는 물방울들이 금세 운룡의 발과 바짓가랑이를 적셨다.
‘인간이 병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동물과 식물이 저마다 다른 독성과 약성을 품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갖가지 질병이 각기 다른 약초의 성분으로 치료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까? 인간의 육체와 약초의 약성분 사이의 상관 관계는 무엇인까?’
잡힐 듯 잡힐 듯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의문속에서 언덕배기에 오른 운룡은 눈앞에 펼쳐진 마을과 집들과 삼라만상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물이 거대한 회색의 바다속에 잠겨 있다가 점점 붉고 푸른 제 빛깔을 띠기 시작하였다. 붉고 노란 꽃, 초록의 나무들, 검누른 흙길, 푸르스름해가는 하늘, 검은 색, 흰색 노란색, 붉은 색, 푸른색, 색이 드러나는 이 세상, 색이 없는 거대한 어둠속에서 밝은 태양의 빛이 나타나자 각각 색을 얻기 시작하여 마침내 찬란하고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세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운룡은 눈앞에 펼쳐진 색의 향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로 그 때 운룡의 눈에 저 멀리 아름다운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적, 황, 청, 흑, 백, 하늘이 거대한 우주의 오색 자락을 운룡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바로 저것이야! 바로 저것이야!
운룡의 머리속에서 천지창조의 번개가 번쩍 하고 빛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운룡은 우주 만물의 비밀인 색소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색소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우주공간에 분포한 분자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저것이었다. 하늘 가득 공간속에 분포하고 있는 약소의 정체, 분자의 정체, 삼라만상을 이루는 모든 물질의 근본원소는 바로 색소였던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색소는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적황청흑백, 모든 만물은 색소의 합성체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 세상 만물은 색소의 합성으로 이루어진다. 처음 어머니뱃속에서 씨 하나가 잉태되어 어머니 몸의 영양분 색소를 공급받아 나누어 먹으며 점점 자라나 태어나고 다른 고기와 야채의 색소를 먹으며 자신의 몸을 키워 나간다. 동물과 식물의 형태는 전혀 달라도 다 같이 색소합성체라는 한 가지 사실은 변함이 없다. 벌레나 뱀이나 닭이나 인간이나 산삼이나 독초나 평범한 야채나 과일이나 모두 색소합성체인 것이다.
사과가 시들어가는 것도 색소가 고갈되어 점차 생명력을 잃는 것이고 색소가 완전히 고갈되면 썩기 시작하여 기체는 증발하고 고형물은 땅속에서 분산되어 흩어진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풀이나 살아서는 지상에 존재하고 죽으면 공간에 흩어지는 것이 색소합성체인 뭇 생명체의 원리인 것이다. 인간이 폐병에 걸리는 것은 폐를 이루는 폐색소, 즉 백색소의 고갈 때문이고 간이 병드는 것은 간을 이루는 간색소, 즉 청색소의 고갈 때문인 것이다. 비장은 비장색소 황색소의 고갈 때문이고 심장병은 심장색소 적색소의 고갈 때문이다. 신장병은 신장색소 흑색소의 고갈로 만종 신장병이 생기는 것이다. 뭇 생명체의 삶과 죽음을 규명하는 의학의 원리를 7세 소년 운룡은 무지개를 보는 순간 깨치게 되었다.
운룡은 눈앞 창공에 가득 펼쳐진 색소의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늘에 가득 펼쳐진 색소의 세계는 지구의 단 한 사람 오직 운룡에게만 보였던 것이다.
오천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신의학의 원년이 밝아오고 있었다. 지구의 궁벽한 외진 땅에서, 나라마저 이웃 작은 섬나라에 뺏긴 비참한 아시아 대륙 마지막 동쪽 끝 한국땅에서 인류구원의 새의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운룡의 생각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이제 무엇이든지 볼 수 있을 뿐더러, 무엇이든지 판단할 수 있으며, 어떤 병이라도 고칠 수 있다는 확실한 자신감으로 충만하게 된 것이었다.
‘무지개로 나타나는 저 색소들이 곧 인간과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임을 이제야 알겠구나!’
그렇다. 인체의 조직을 이루는 구성 원소와 지구와 우주를 이루는 구성 원소는 한가지인 것이다. 생물과 무생물, 지구와 뭇별과 우주는 같은 원소로 이루어진 것이다. 운룡은 그것을 이름하여 색소라 한 것이다. 약을 이루는 구성 인자 역시 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질병이란 한마디로 인체의 구성 인자가 손상된 것이다. 그것을 정상적인 인자로 바로잡아 치료할 수 있는 약이라면 그 구성 인자가 같지 않고서는 아니 된다.
따라서 인체에 가장 적합한 약은 동일한 근원처의 동일한 인자이리라. 그리고 그 인자는 바로 우주 공간에 가득 차 있는 색소들인 것이다. 인체를 이루는 구성 인자인 색소가 결핍되거나 고갈되는 상태가 곧 질병인 것이며, 그 색소가 완전히 고갈되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인체의 조직과 약의 조직은 색소라는 인자로 구성되므로 그 근원이 같아, 인체의 모든 질병에는 반드시 치료약이 있다는 말이 된다. 조직 내의 색소 결핍으로 생기는 질병이라면 모자라는 색소를 충당해줌으로써 고칠 수가 있을 것이요, 색소의 고갈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때, 식물이나 동물, 광물로부터 필요한 색소를 충전받아 완전하게 소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독을 마셔 죽게 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독에 의해 그의 신체 조직속 색소는 타들어가고 생명의 근원인 색소 인자의 결핍, 고갈이 급속히 진행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음에 이르기 이전에 해독약으로써 그 독기를 중화시켜 해독해내고 이미 타버려 소실된 색소는 약용물질로 보충해준다면 더 이상의 색소 인자 결핍과 고갈의 진행이 중지되고, 손상된 색소 인자는 충당되어 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모든 질병의 치료 원리도 그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