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⑧] “호랑이인들 제 영력을 당할 재간이 있는 줄 아세요?”

20세기 초반 한반도 시골풍경. 인산이 태어난 함경도 홍원군은 이보다 훨씬 오지에다 삼림이 우거진 곳이었다. 


인산 죽염으로 잘 알려진 인산 김일훈(1909~1992) 선생은 각종 암치료 신약을 발명하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 후에는 독창적인 한방 암치료를 설파하며 난치병 환자를 평생 치료했다. 선생은 만성 질환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일이 없는 세상, 육신이 파괴되는 질병의 고통이 사라지는 세상, 암 환자 발생이 1%대로 낮춰지는 세상, 80대 노인들이 20대 청년들과 함께 일하며 낙원을 만드는 꿈. 이는 선생과 셋째 며느리로 인산 김일훈 문하에서 선생의 묘수, 비법을 전수받은 최은아 한의학박사의 바램이다. <아시아엔>은 최은아 박사가 쓴 <인산 김일훈 선생 전기 의황(醫皇)을 연재한다. 독자들의 애독과 건강 증진에 보탬 되길 바란다. <편집자>

자신의 인지 능력 밖의 것은 모른다 여기지 않고 무조건 부정하는 지구인의 독선과 무지에 운룡은 진저리가 났다. 자기가 볼 줄 몰라도 다른 누군가는 볼 줄 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들은 한치밖의 것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게다가 자기 외의 타인은 모두 자기와 같은 종류로 아는 이상한 야만족이었다.

자기들보다 몇 배, 몇 만배 더 볼 수 있는 시력과, 자기들보다 몇 배 몇 만배 더 잘 들을 수 있는 청력과, 자기들보다 몇 배 몇 만배 더 과거나 미래까지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못하는 미개족속이었다.

운룡은 하필이면 태어난 곳이 미개한 지구에다 그것도 모자라 나라까지 이웃 일본에 빼앗긴 한심한 나라 미개한 한국땅에 태어난 자신의 처지가 불쌍했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자신을 조금 알아주고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주니 외로움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운룡은 모든 것이 훤히 보였다. 조금만 정신을 집중하면 삼십리 먼 거리에 떨어져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뱃속에 자리잡고 있는 병 덩어리와 그 주위의 혈관까지 보였고 이웃 노인네의 손을 잡고 가는 3대독자의 폐가 말라붙은 정도까지 세밀히 보여 어느 시점이면 숨이 끊어지리라는 계산까지 할 수 있었다.

“저 아주머니 배 속에 큰 혹이 자라고 있어 빨리 약을 쓰지 않으면 여섯 달 안에 돌아 가실 거예요.” 운룡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무심코 한 마디씩 하면 옆에 있던 사람들이 기겁을 하곤 했다. “이 놈이 무슨 재수없는 말을 하는 게냐 !”

운룡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해주고 약을 제대로 써 치료하여 살아나기를 바랐건만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화만 내다가 나중에 정작 죽고 나면 ‘애고, 데고’ 슬퍼하는 모습이 참으로 답답했다. 운룡이 하는 재수없는 말들이 실제로 오장육부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현존하는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할아버지 외의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내밀한 부분까지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동네 사람들은 운룡의 예언 아닌 예언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맞아 떨어져 어김없이 죽어나가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귀신붙은 아이, 저 아이 눈에 띄면 재수가 옴붙는다는 둥 운룡을 손가락질하며 괴물 취급하곤 했다.

“저 아이는 폐가 다 녹아 이제 곧 숨을 못 쉴 날이 올 텐데…”
“아저씨는 머리속에 혈관이 부풀어 있어 곧 터질 텐데요.”

어린 운룡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이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을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한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닌 운룡의 예언들은 각기 그 때가 도래하면 여지없이 적중하는 것이었다. 동네 여자들은 운룡이 지나가면 뒤통수에 대고 들으라는 듯이 말하곤 했다.

“어린놈이 저렇게 아는 소리 하는 건 저거 도깨비 붙은 놈의 새끼야.”
“저놈이 미쳤게 저러지.”
“아무래도 저 아이에게는 귀신이 붙은 게야.”
“저 애 눈에는 안 띄는 게 좋아. 괜히 없을 재앙도 저 애 입담에 달라붙게 될지도 몰라.”

암암리에 운룡을 두고 그렇게 수군거리는 말들이 동네에 떠돌았다. 운룡의 조부 김면섭도 어린 손자의 기이한 능력이 세상에 알려져 도리어 아이의 신상에 좋지 못한 일이 생길까봐 저어한 나머지 운룡에게 철저히 입조심을 하도록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미 운룡에게는 우주의 진리가 감득되어졌던 것이고, 운룡은 자신의 그러한 감각 세계와 무지한 현실 세계는 서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운룡은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인간세상의 고독에 젖어들어갔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광대무변함에 대해서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날 운룡을 데리고 이웃 마을에 급한 볼일을 보러 갔었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어느덧 해가 저물 무렵이 되어 있었다. “내 정신 좀 봐. 날이 저무는 것도 모르고…….”

운룡의 어머니는 뒤늦게 귀가할 일이 걱정이 된 나머지 운룡의 손을 잡아끌며 성급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두 모자가 집으로 돌아가려면 인적이 드문 산길을 15리 가량 걸어야 했다.

“운룡아, 날이 어두워졌으니 네가 앞에 서거라.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비좁은 산길은 두 모자가 나란히 걸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운룡의 어머니는 어린 운룡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품 앞에서 걸어가게 했다. “운룡아, 무섭지 않니?”

운룡의 어머니는 당신 자신이 무섬증을 느끼는지 운룡에게 그렇게 물었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운룡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에미가 너무 급해 정신이 나가서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있었구나. 이 산속에는 늑대가 나타나 애들을 물어간다는데, 이를 어쩌누?”

운룡의 어머니는 사뭇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여차하면 자기가 운룡을 품안에 넣고 엎드리면 아이는 다치지 않으리란 속셈을 하며 어둔 산길을 잰걸음으로 걸었다.

“엄마, 아무 걱정 마세요. 천지의 정기가 한데 뭉쳐 이 세상에 나온 자식을 앞에 두고도 무서워 하신다면 말이 돼요? 호랑이조차 저의 영력(靈力)에 떠밀려 제 근처에는 얼씬을 못하는데 하물며 산짐승들이 저를 해칠 수 있겠어요. 제가 천지간에 단 하나뿐인 영물인데, 호랑이인들 제 영력을 당할 재간이 있는 줄 아세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우리 모자 앞에 호랑이 같은 짐승을 보낸다면, 내 이곳 산신이라도 귀양 보내버릴 터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운룡은 그 일대의 산신이 감응하고 여러 신장(神將)들이 자신을 호위하고 있음을 알기에 두렵기는커녕, 도리어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히 앞장서 어머니를 인도할 따름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왠지 쓸쓸한 감회가 일어 자신의 앞날에 대한 탄식을 하고 있었으니, 뒤에서 오는 그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그런 마음속 감회를 알 까닭이 없었다.

‘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마저 이 우주를 통틀어 단 하나뿐인 존재를 몰라보시는데, 하물며 장차 인간세계에서 누가 나를 알아줄 것이겠는가? ’

희미한 초승달이 모자의 발부리에 옅은 그림자를 얹어주며 따라오던 밤길에서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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