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이런 날, 할머니 말씀’ 박노해

정한수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있어도 별일 아닌 걸 가지고
무슨 대단한 사태인 양
호들갑을 떨고 악소문을 퍼뜨리고
불안과 불신과 공포의 공기를 전하며
동네와 장터를 흉흉하게 만드는
근본 없는 자들을 향해서
할머니가 하는 말

염병하네, 엠병하네, 엠병하네

저이가 염병을 퍼뜨리고 있다는
저이가 전염병과 다름 없다는
할머니의 단호한 일갈

염병하네, 엠병하네, 엠병하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어린 내 손을 잡고
계곡 물가에서 귀를 씻기고 눈을 씻기고
마당 장독대 위에 정한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린 후
호미를 들고 자기 할 일을 했다
마음 밭에 쳐들어오는
염병할 잡초 뿌리를 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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