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그 여름의 끝’  이성복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백일홍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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