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 추격자 감독 : 나홍진 출연?: 김윤석, 하정우 개봉?: 2008년 우리 곁에 사이코패스가 있다 잊혀질 만하면 발생하는 사이코패스 범죄. 유영철 강호순 등이 저지른 연쇄
Category: 칼럼
[이슬람 바로알기] ⑧ 수니-시아파 갈등의 근원
지난번 에피소드에서는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메드가 사망한 때까지 서술했다. 이번에는 모하메드 사후 그가 세운 종교커뮤니티를 뒤이어 이끌어가게 된 소위 ‘라쉬둔’(rightly guided ones) 칼리페이트시대(632-661)에 대해 설명하고 이
시리아, 아사드 물러나면 평화 되찾을까
10만명 스러져간 거대한 도살장, 시리아 내전 2년 시리아에서 민주화의 요구로 시작된 평화시위가 내전의 양상으로 번진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평화시위 초반 일부지역 정부군의 폭력적인 탄압은 시위대로
[김중겸 칼럼] 소문의 사회학③ 재미로 하는 가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소문을 듣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면서도 주변은 자잘한 소문으로 차있다.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직장의 한 귀퉁이에서나 술집에서
[추모] 광동제약 故최수부 회장 “아들아, ‘최씨고집’ 이어 세계 일류회사로 키워주렴”
지난 7월24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한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 ‘최씨고집’ ‘뚝심경영’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는 생전 “나는 한눈 팔지 않고 나의 길을 걸어왔다. 천천히 여문 기업이 10년,
[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사회개혁운동은 먼나라 얘기일 뿐
필리핀 서민층들에게는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필자가 18년 전에 조그마한 사무실 겸 공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반공포로 석방
1953년 6월 18일 자정 엄청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2만6930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이다. 면도를 하고 있던 처칠이 놀라 턱을 칼로 베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세계는
[김중겸 칼럼] 소문의 사회학② “재미보다는 공포가 잘 퍼져”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믿게 만드는 신용성(信用性,? believability)이 소문 쾌속유통의 첫째 요건이다. 두 번째는 공포? 불안? 안심? 재미? 학자들의 연구로는 공포소문(恐怖所聞)이 제일 많았다. 불안을 야기하는 정도가 높을수록
[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진보적인 지배층, 보수적인 서민층
진보와 보수, 자본주의와 사회(평등)주의를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필자는 조화롭게 협력하는 개념으로 본다. 모든 인간의 몸속에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함께 존재하면서 남성
[김중겸 칼럼] 소문의 사회학① “소문내는 사람이 미디어의 주체”
소문을 내면 곧 퍼진다? 소문에 관한 많은 오해 가운데 하나가 소문의 즉시 전파성이다. 소문을 내기만 하면 이내 퍼지게 된다는 소박한 생각이다. 이?오해로 인하여 (1)사회 불안을
아시아의 목소리 ‘매거진 N’ 8월호 발간
*아시아기자협회(AJA)와 아시아엔(The AsiaN)이 만드는 월간지 <매거진?N> 8월호(제2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이번 호에 실린?독자 여러분의 창간호 리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류성현 / 법무법인 ‘광장’ 조세전문 변호사 나는 늘 세금과
태국은 ‘소셜 미디어’ 대국
*코트라 방콕무역관이 전하는 생생한 태국 현지 경제이야기를 아시아엔(The AsiaN)에서 들려드립니다. 더 많은 해외시장정보는 글로벌윈도우를 참고해 주세요. 세계에서 페이스북 가입자가 가장 많은 도시는 어디일까요? 페이스북의 본고장인
[란코프 칼럼] 북한 ‘7·1 경제개혁’ 불씨 되살아날까
간과해선 안될 2002년?’7·1 경제조치’ 여파 북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베트남이나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 노선을 취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지난 몇 십 년 간
[김중겸 칼럼] ⑤ 마약을 둘러싼 혈투···아프간, 콜롬비아의 경우
아프칸의 양귀비(Poppy) 이곳 전통작물은 양귀비다. EU, 러시아, 이란에 헤로인 원료로 대량 공급한다. UN과 NATO와 아프간 정부가 양귀비 밭 없애기를 추진해 왔다. 벌써 10년이나 넘은 Eradication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일본군서도 배울 게 있었다···김석원과 채병덕
김석원 장군은 구한말 무관학교로 입교하였다가 한일병탄 이후 일본육사로 편입되어 27기로 임관, 이후 일본군 대좌까지 복무하였다. 해방 후 일본군 출신은 근신하여야 된다는 생각에서 군에 바로 들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