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친일파는 조선말 친청파. 친로파 등과 더불어 조선의 살길을 모색하던 김옥균, 박영효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친일파는 실패했다. 나라를 망해먹은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Author: 김국헌
설악산 가칠봉과 백선엽 장군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53년 휴전회담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동부전선의 고지전투가 혈전이었다. 이 승전이 없었다면 설악산은 우리 땅이 아니다. 설악산이 없는, 내린천이 없는 강원도가 ‘하늘이
대북전단과 확성기 방송 중 어느 게 더 위력적?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2004년 4월 남북군사회담은 확성기 방송을 제거하고자 하는 북한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졌다. 방송내용은 북의 심기를 거슬릴 것이 별로 없었다. 일기예보 등 평범한
트럼프의 주독 미군 감축 ‘즉흥적’ 혹은 ‘소탐대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미 트럼프 대통령이 6월 6일 독일 주둔 미군을 오는 9월까지 현재 3만4500명에서 2만5천명으로 9500명 줄이는 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우선주의에 맞춰 방위비
홍콩보안법·대규모시위는 시진핑 체제 ‘위협’?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중국이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자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영국이 홍콩을 반환할 때 중국이 영국에 약속한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라는 약속을 깨뜨리는 행위다. 심지어
트럼프의 ‘2019신국방수권법안’ 서명과 계속되는 ‘미중 갈등’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트럼프미 대통령은 2018년 8월 ‘2019 신국방수권법안’에 서명했다. 이는 1947년 트루먼 독트린과 1969년의 닉슨 독트린에 맞먹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며, 중국과 북한에는
일본이 통일한국의 식민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미래를 예상하는 시나리오 가운데 일본이 통일한국의 식민지가 된다는 놀라운 예측이 있다. 듣기는 좋으나 일본이 코로나 대응에서 한국에 비해 말이 안 되는
현충일, 현충원, 매헌기념관 그리고 윤봉길 의사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현충원은 지성소(至聖所)다. 서울 현충원 제단에 새겨져 있는 노산 이은상의 헌사를 되새겨 보자. 이곳은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프랑스 미테랑 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던지는 교훈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58년 드골에 의해 제5공화국이 시작된 이래 미테랑은 1981년 첫 사회당 정권을 이끌었으며 대통령으로 가장 오래인 14년간을 집권했다. 미테랑은 사회당 내지 진보적
6·25 참전 중국군 유해 발굴·송환 추진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임진강 적성 부근에는 적군묘지(敵軍墓地)가 있었다. 이 지역은 1951년 4월 설마리전투 등 중공군이 유엔군과 격전을 치르던 지역이다. 1953년 정전이 성립한 후, 국군장병
‘김정은 사망설 소동’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김정은 소동’을 통해 많은 것이 드러났다. 승자는 역시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소식에 대해 모른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잘
독립신문 창간 서재필과 한국 진보정치 선구 서민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서재필은 1864년 전남 보성출신으로 외숙이던 참정대신 김성근(金聲根)의 집에서 공부하였다.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김옥균,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협회 활동을 했던 개화기 초기의 애국지사다.
허정숙·여연구는 왜 북한권력의 꽃바구니가 됐을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허헌은 1886년생으로 일제하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는 김병로와 비슷하다. 해방 후 여운형과 손잡고 건준에 참여하여 부위원장을 지냈다. 입북해서 김일성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분단·분열의 시대’ 몽양 여운형이라면···.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몽양 여운형은 1886년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1945년 8월 15일 건국준비위원회(건준) 위원장을 맡았다. 박헌영은 9월 6일 건준을 조선인민공화국(인공)으로 변화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족사학자 신채호와 박열의 공통점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단재 신채호는 1870년생으로 박은식과 더불어 민족사학의 중심을 이룬다. 신채호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비판했다. 역사는 승자의 몫이다. 삼국사기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 중심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