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미테랑 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던지는 교훈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58년 드골에 의해 제5공화국이 시작된 이래 미테랑은 1981년 첫 사회당 정권을 이끌었으며 대통령으로 가장 오래인 14년간을 집권했다. 미테랑은 사회당 내지 진보적 정책을 펼쳤다.
그는 우리의 국가보안법 성격의 국가안전법을 폐지했다. 그는 1982년 사형제도를 없앴는데 이로써 기요틴(단두대)에서 목을 자르던 끔찍한 형이 없어졌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사형제도가 무실화 되었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독가스로 사형이 집행되고 있고,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여든 대를 채찍으로 치는 사형보다 더한 태형이 있다.
미테랑은 동성관계의 법적 허용 연령을 18세에서 15세로 인하, 이성관계의 법적 허용 연령과 동일하게 낮추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관용은 우리도 본뜨고 있다.
유럽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한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지성인 사이에 동성애가 유행이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기본해서 건국된 미국에서는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에서와 같이 성 윤리에 대해서 엄격하다.
미테랑은 주요 산업의 국유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5주 휴가 채택 등 일련의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했는데, 얼마 지속되지 못하고 1983년 긴축 재정으로 전환했다. 재정 적자를 확대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박근혜, 이명박 정부서 확보되었던 재정 건전성이 무너지고 있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우려하고 있다.
미테랑은 외교정책에 있어 통합 유럽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드골은 영국의 유럽 진입을 사사건건 가로 막았다. 미테랑 시대에 획기적 전환을 해서 영국을 유럽연합에 받아들였다. 독일의 슈미트, 콜 수상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화해와 번영, 유럽통합의 초석을 닦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과 화해하는 정책을 편 것은 잘한 것인데, 최근 정대협의 회계문제가 발각되자 여권에서 친일과 반일 프레임으로 이를 덮으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프랑스는 당초 떼제베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병인양요 당시 약탈해간 서적 반환을 약속했는데, 이후 지키지 않고 있었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에서 의궤를 발견했을 때 외교 경로를 통해 반환을 요청했으나 프랑스는 공공재산이라는 이유로 거부하다가 1993년 미테랑이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할 때 한두 책을 가져왔다가 나중 영구임대라는 궁색한 형식을 거쳐 반환하였다.
영국, 프랑스는 외국 유물 반환에 까다로운데 그대로 따르다가는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이 껍데기만 남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영국에 파르테논신전의 기둥 반환을 요구할 때 메리나 메리쿠리 문화장관은 “이것은 돌덩이가 아니라 그리스의 심장”이라고 호소했다.
박병선 박사는 직지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임을 발견하였는데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록되었다.
미테랑은 기술 관료적 성격을 갖는 정치인이라면 불가능했을 사회혁신을 특유의 정치력으로 밀어붙인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지도자로 평가된다. 문재인 정부도 미테랑과 비슷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 미테랑이 잘못한 것은 닮지 말기 바란다.
특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되어 가는 재정 적자는 후대에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