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주독 미군 감축 ‘즉흥적’ 혹은 ‘소탐대실’?

트럼프(오른쪽)와 메르켈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미 트럼프 대통령이 6월 6일 독일 주둔 미군을 오는 9월까지 현재 3만4500명에서 2만5천명으로 9500명 줄이는 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우선주의에 맞춰 방위비 증액을 이행하지 않는 동맹국을 상대로 주둔 미군을 대규모로 줄이는 첫 사례다.

트럼프는 독일 정부에 미군 감축에 대한 사전 경고는 물론 통보조차 없었다. 트럼프류의 기막힌 외교 행태의 좋은 보기다.

주독 미군 감축은 지구촌 경찰을 자임했던 미국이 그 역할을 대폭 포기하면서 동맹국의 안보 분담을 늘리는 트럼프 식 국제질서를 행동에 옮긴 조치다. 트럼프와 메르켈의 ‘앙숙 관계’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메르겔이 워싱턴에서 예정됐던 주요 7개국 정상회담 불참을 알린 뒤 두 정상 간의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그러나 독일이 미국에 대해 갖는 의의는 각별하다. 트럼프는 유럽과 미국의 안보질서에 대한 역사 공부를 보다 깊이 해야 한다. 냉전시대 독일은 유럽 방위의 최전선이었다. 주독 미 육군의 7군은 주한미군의 8군과 함께 육군의 해외 주력부대였다. 주독 미군은 주독 영국군, 서독 연방군과 함께 유럽 방위를 양분했다. 서독 연방군은 나토 군사전략의 중심개념인 신축대응전략의 첫 단계를 담당했다.

현재 나토는 미국과 전술핵 공동사용권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한국이 독자적 핵무장을 하기 어려우므로 미국의 전술핵 공동사용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었다. 통일은 사실상 서독의 동독 흡수였다. 통일독일의 군사력 규모는 1994년까지 37만으로 감축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냉전 당시 동독 주둔 소련군 38만과 같았다.

탈 냉전시대의 유럽의 안보질서는 크게 달라졌지만 독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세계의 국력을 GDP로 보면 미국과 일본, 다음이 독일이다.

유럽에는 역내 국가 간에 있어서 다양한 이해의 갈등과 국내 문제가 분쟁으로 파급될 우려가 잠재되어 있다. 유럽의 문제는 유럽이 해결해야지 미국이 끼어들 수 없다. 1998년 코소보 사태에서 독일군은 NATO군의 일부로 참전했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에서 군비는 대폭 축소되었지만 영국은 15만, 프랑스의 20만, 독일은 18만을 유지하고 있다.

메르켈 독일총리는 대처와 같이 나토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한다. 트럼프가 부담을 가질 만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번 행태는 동맹관계에서 생각하기 어렵다. 9500명 줄이는 것이 합참의 면밀한 검토를 거쳤는지도 의문이다. 엘리트 사회의 주류에서 훈련받지 않은 트럼프라고 하나 너무 서투르다.

흑인 시위 진압에 주 방위군을 동원한 것도 에스펀 국방장관의 비판을 받았다. 코로나 사태와 더불어 재선에서 악재로 작용할지 모른다.

냉전 시대 서독은 유럽에서 한국에 가장 가까운 나라의 하나였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국내 송금은 주요한 외화 획득원이었고, 사관생도가 서독 육군사관학교에 유학해서 김관진, 김태영 등의 인재로 자라났다. 중국이 미국의 주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지금 주한미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독 미군의 감축에 따라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도 검토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2만2천명 이하로 줄이지 못한다는 국방수권법이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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