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중국군 유해 발굴·송환 추진을

2014년 3월 28일 한국전쟁 당시 숨진 중국군 유해 437구가 한국을 떠나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안치됐다. 중국측은 우리 정부에 감사를 표시했고, 중국 매체들도 당시 송환이 감동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사진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유해를 모시는 장면.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임진강 적성 부근에는 적군묘지(敵軍墓地)가 있었다. 이 지역은 1951년 4월 설마리전투 등 중공군이 유엔군과 격전을 치르던 지역이다. 1953년 정전이 성립한 후, 국군장병 유해를 수습했는데 이때 중공군 유해도 함께 수습해서 적군묘지에 묻었다. 이는 당시 중국을 보는 우리의 정서가 그대로 표현된 것이다.

1990년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송환을 미국에 제안했다. 이래로 미국에 유해를 인도하는 엄숙한 행사가 있었다. 미국은 한 명의 포로도, 한 구의 유해도 남기지 않고 반드시 돌아오도록 한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에 대한 예우는 어느 나라나 숭고하겠지만, 이민으로 생겨난 미국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용사에 대한 추모의 정성은 각별하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한 이래 우리도 중국군 유해가 발견되면 이와 같은 행사를 갖는 것이 좋겠다고 국방부에서 판단했다. 우리에게는 주검을 안장하지 못하면 혼이 구천(九泉)에서 떠돈다고 믿는 민간신앙이 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어떻게 해서라도 수습하라고 외치고, 정부도 이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방부는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중국에 전사자 유해 송환을 제의하여, 유해 송환행사는 2014년 이래 6차례 걸쳐 있었다. 그때마다 중국군 의장대가 인천공항에 와서 엄숙한 행사를 치르고 인수해 간다.

중국의 전사자에 대한 관념은 우리와 다르다. 그들의 이른바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에서 중국은 백만의 희생을 치루었다. 그러나 조선에서 전사한 군인은 그대로 두라는 것이 모택동(毛澤東)의 바램이었다.

북한은 안주에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릉원을 조성했다. 모택동의 장남 안영(岸迎)의 묘지도 여기에 있다. 북한에 오는 주요 중국인사는 여기에 들러 참배한다.

1953년 정전협정이 맺어지기 전에 중공군은 가장 중요한 전력원인 화천발전소를 공격했다. 장도영의 6사단은 필사의 분투로 대첩을 거두었다. 2만이 넘는 중공군이 죽었으며 국군은 이들을 모두 수장했다. 파로호(破擄湖)는 오랑캐를 섬멸했다고 이승만 대통령이 명명한 것이다.

정전협정이 맺어지기 전에 반공포로를 석방한 이승만의 기를 죽이고, 가능한 한 많은 한국군을 살상하라는 모택동의 명령에 따른 공격이었다.

화천댐에 들른 중국 관광객은 중국이 그때 조금만 더 힘을 썼더라면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철없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때 중공군이 시산혈하(屍山血河)를 이루었다”며, “전쟁은 어느 경우에나 피해야 하는 비극”이라고 점잖게 말해주면 입을 다문다.

6.25 전쟁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한 미니 세계대전이었다. 세계 제2차대전을 막 끝낸 영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를 포함해 총 21개 국가에서 참전한 전쟁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21세기에 초강대국으로 대립하고 있다. 우리는 피로 맺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견결하게 유지하며, 동시에 북한과 피로 맺은 중국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러 가지로 복잡한 외교안보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은 화해 협력을 증진하는 데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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