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천사의 미소

“어허허”, 언제부터인가?환이가 “아버, 아버” 하며 따라옵니다. “그래 말 잘 듣지” 하면 제 말은 잘 따라 합니다. 그런 환희가 오늘은 병원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것도 노란 링거액을 맞으면서. 오늘도 환희는 웃습니다.

나를 바라보면서, 환이는 오늘도 “아~녕” 하고 인사합니다. “어 어” 그것이 환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인가 봅니다. 그런 환이를 보는 사람들은 가련한 눈짓을 지어봅니다. 환이는 그렇지만 슬퍼하지 않습니다.

늘 이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지내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도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쉬운 말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 혹은 하느님과 좀 더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이야기하기도 할 것입니다. 차마 절대 명제에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혹시나 앓을 수 있는 똑같은 질병을 앓게 되고, 이마저 없었다면 이들은 주변의 안타까운 시선만 받아보다가 사라지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나는 결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나 앓을 수 있는 질병을 이들이 앓고 있기에 매우 부족한 능력으로 그나마 십분 발휘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소위 절대개념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에 달려가 큰 일은 없는지 요모조모 물어보고 때로는 의사를 닥달해보기도 합니다. 여기저기 자신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을 찾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어디선가 조금이라도 더 좋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십리길도 멀다 생각하지 않고 능숙한 운전솜씨를 발휘하여 그 어느 때 보다 빨리 달려 갈 것입니다.

이들은 그렇게 훌륭한 보행능력이나 이동수단이 없습니다. 불과 100여m 채 되지 않는 거리도 한참 걸어서 오게 됩니다. 인내가 없으면 돌보는 사람을 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척도를 가지고 다가갑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자신의 이해와 관련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로 재듯이 다가옵니다. 아마 모든 생물은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질병이란 놈은 결코 그런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사람의 몸을 파고듭니다. 이들 중에는 사회에서 꽤나 명성을 쌓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이는 어땠을까요. 애당초 평범한 삶이란 것을 살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먹고, 자고, 배설하고 때로는 아주 원시적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 이외에 발설해본 적이 없던 것 같은 환이는 어땠을까요?

그런 환이가 병상에 누웠습니다. 때로는 침상에서 떨어지기도 하여 주의를 주지만 안됩니다. 중심도 못 잡으니 당연히 쓰러지겠지요. 그런 환이가 이제는 침상에서 못 내려오게 달래보기도 합니다. 어쩐 일인지 내말은 잘 알아 듣습니다. 그렇다고 환이 곁에만 붙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가슴만 답답해오는 것 같습니다.

상처로 얼룩진 얼굴은 환이의 일그러진 미소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 환이도 언젠가는 완쾌되어 자신의 둥지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고향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자신의 모습인 듯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잘한 일이라고, 잘하고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하는 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누군가의 눈에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숲을 보는 사람들은 나무를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너도 나도 숲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편합니다. 나무를 쳐다보면 물을 줘야하고 잘 자라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아집니다. 울창한 숲을 쳐다보면 만사가 해결된 듯합니다. 때로는 풍성한 만족감에 도취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어떻게 되는지는 그 숲이 사라진 다음에야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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