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환자의 향기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고 체면을 세워주고,?어린아이가 노상방뇨를 하거나 실수하여 대변을 지리면 달래주거나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상기시켜 그 아이의 기 (氣)를 살려 주었다.

“아니 누가 이렇게, 누고 아이고, 아침마다 이게 무순 일이고, 치우지도 않고 말이데이.”

동네 아주머니는 어김없이 아침마다 마주치는 배설물에 대고 한마디 하셨다. 그렇다고 전날 밤에 누가 몰래 그러는지 지키거나 범인을 잡자고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투덜거리면서도 연탄재를 부수어서는 분뇨에다 덮고 빗자루로 쓱쓱 쓸어 담아 뒷간에 툭 밀어 넣으셨다.

어릴 적 아이들이 자신의 배설물을 만지고 노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 엄마가 매우 심하게 나무라거나 “애비 지지다”라고 하면서 금지된 행동임을 알려주기도 했다. 엄마의 젖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의 배설물은 역한 냄새나 자극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는?아이들의 배설물에 관심을 기울이고?배설물의 상태를 살펴보아 아이의 건강 상태를 짐작하기도 하였다.

꽃동네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일반 병원의 환자와는?모습이 다르다. 많은 환자들이 침상에 누워서 지낸다. 정신이 온전한 경우도 흔하지 않아서 멀쩡해 보여도 도움을 줘야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단순한 조치를 받는 환자들도 아니어서 매우 쇠약해져 있는 노인, 장애인, 정신지체, 정신질환자가 많다. 간병인들이 하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이들의 생리현상 즉 배설물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냄새만 맡아도 알아요.”
환자의 배설물을 몇 년 동안 치워오던 병원 간병인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던진다.
나는 짐짓 모른?채 하면서 연신 감탄사를 날린다.
“오호 그래요. 대단하시네요.”

오랜 경험의 산물일 것으로 생각했다. 수십 명의 환자들 중 상당수가 조절을 못하든지, 아예 방출하는 수준이다. 돌아서면 누가 실례했다고도 하고, 치료 도중에 실례하는 일도 허다하다. 정말 생리현상은 막을 길이 없는 것 같다. 먹는 것은 일정한 시간에 정할 수 있지만 나오는 것은 자유방임이다.

생각해보면 원시의학이 거기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의과대학을 다니던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선생님의 선생님이 수련의들을 데리고 회진을 했는데, 소아환자들을 대상으로?변의 색깔과 냄새 등을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병실에 들어서면 아기들이 기저귀에 실례한 것을 들고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 선생님의 선생님이 아기들의 변 색깔과 냄새를 맡아 보면 그 뒤를 따르는 수련의들도 똑같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아이의 배설물을 손가락으로 쿡 찍어서 맛을 보았더니?수련의들도 똑같이 따라 했다고 한다.

선생님 왈, “자네들은 뭐 하는가?”라고 했다.
“선생님이 하시니 아이들의 배설물을 맛본 것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새끼손가락을 들고 눈을 찡긋했다. 수련의들은 당혹해하면서 선생님의 장난에 몹시 속이 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환자의 배설물은 환자의 상태를 알아보는 데 그 첫 단추가 된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일 지 모르지만 대학시절 선배에게 들은 작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지는 않지만 향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매우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한 생물(生物)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은 순간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는 다양하다. 화려함, 부유함, 그리고 필요할 때 있어주는 것이 아름다움의 보편적인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향기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저녁 달빛을 받고 사립문을 여는 소리만으로도 낭군님이 들어오는 지 맏아들이 들어오는 지 아는 것은 그 여인만 알고 있는 향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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