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과유불급(過猶不及)

60대가 축구로 건강을?··· 각 연령대에 맞는 건강법 알아야 ??

가끔 이곳에, 꽃동네, 근무하는 자신에 대해 질문이 온다. 처음 이곳을 정하고, 있던 자리에서 엉덩이를 뗄려고 할 때와 같은 질문이다.

“왜?”

그러다 오랜만에 연락온 동기들의 모임에 갔을 때도 그랬다.

“왜?”

마치 삶의 질문과 같았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의문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인지,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통념에 약간 벗어난 행동으로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기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지에 대해 그냥 느낌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들은 골프를 치러 다닌다. 하지만 나는 체육센터에서 걷기운동을 한다. 아마도 늘어나는 통장을 가진 사람들과, 달마다 마이너스 통장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는 자신과 다를 것이다.

이곳은 외진 곳이어서 평상시에도 소통이 잘 안 되는 곳이다. 소통은 어디나 필요하지만, 사회적 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인구 밀도는 높은 편이다. 그것이 그들의 삶이다.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근데 존중이란 것이 애매한 단어여서, 또한 개인의 차이가 심한 것이어서 정하기가 어렵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의 범위에서 그 존중이란 의미를 찾고 싶다.

겨울이 시작할 때 즈음에는 스스로 추위를 피해 들어오거나, 근무자들의 도움으로 들어오게 된다. 겨울을 지내고 나면 떠나는 이들도 있다. 아마도 인생의 여정에서 영원한 종착역은 없는 것 같다.? 그들을 돌보아 주고자 하는 어떤 윤리적 , 신앙적 가치가 약간은 남아 있다. 가련하게 생각하는 것, 긍휼하게 생각하는 것, 등이 있다.

신경과 진료를 계속 받아오던 환자가 있었다. 기록상에는 통증으로 투약을 오랜 기간 받아왔다. 뇌 질환으로 한쪽이 마비가 되어 침상생활을 한다고 한다. 오기가 어렵다고 한다.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이동시킨다는 것이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어서 어디 가능한 상황이면 모셔오라고 했다.

그날 오후 진료는 예상보다 많았다. 내 진료실은 주로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도 못하고, 의사 소통은 그저 짐작으로만 가능할 경우가 많다. 침상에 누운 상태로 들어오는 환자는 왼쪽 어깨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음 역시나 누워 지내시는 군.’

돌보는 이는 오랫동안 누워 계시는 데 갑자기 아프다고 하더란다.

말씀은 한마디도 안하신다. 기록은 뇌경색, 이상했다. 돌보는 이에게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물어봤다. 시간은 자꾸 흘렀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신경이 쓰였다. 마음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문득 환자에게 왼팔을 들어보라고 했다. 움찔 했다.

“못 움직이세요.”

오랫동안 그 상태로 있었다는 것이다. 돌보는 이의 말이다.

눈짓을 했다. 환자는 그 눈짓에 답이라도 하듯이

“으응 요만큼 돼요.”라며 왼팔을 꽤나 움직였다.

“그럼 다리도 할 수 있는 만큼 들어 보세요.”

약간 움직였다.

“오른쪽만 마비가 왔죠? 좌측은 좀 움직일 수 있을텐데요.”

와상의 환자가 좌측 팔과 다리를 움직일려고 한다.

“그럴 겁니다.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움직여 보세요. 너무 아프면 안 움직여도 됩니다.”

“돼요, 돼.”라며 환자는 좌측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간에 환자는 자신은 스스로 와상환자이니 움직이질 않았다. 어떤 경추손상 환자가 마비에서 탈출한 경우를 설명해주었다. 시일이 너무 오래되어 어렵겠지만 한번 노력해보자고 환자와 약속했다. 환자는 매우 큰소리로 “예” 라고 이야기 했다. 돌보는 이는 그 환자의 밝고 큰 목소리에 “아니 이 아저씨가 이런 적이 없었는데”?라며 웃었다.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그저 우리들 일상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일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도 생각은 언제나 청춘이다.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이지만 실상 생각은 건강한 이십대를 생각하고 있다.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좋아지더라도 라는 생각이 앞서면 우울해진다. 젊을 때의 움직임이 있고, 늙어서의 움직임이 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연령대에 맞는 건강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을 나는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잘 사용한다. 마음이 이십대라 고령에 그 마음 따라 움직이면 과하니 나이에 맞추어 건강을 챙기시라고 말한다. 나의 몸은 초인이 아니다. 생물의 자연 현상에 불과하니 그만큼 순리에 맞추어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