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의사에게 ‘폼잡는 것’이란?
오늘날 좋은 일이란 돈을 잘 버는 것이 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자~알 버는 것이다. 그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그나마 폼이라는 것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폼을 잡는다”라고 함은 일의 시작형태를 잡거나, 으쓱대고 뻐기는 예를 말한다. ‘개발에 편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등은 어울림이 없다는 것, 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제차 탄다고 눈길 주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폼 나잖아요”라고 한다.
하얀 밍크 목도리를 한 앞 가슴에는 검은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다. 때때로 거르지 않고 전문 피부관리를 받은 얼굴에는 윤기가 흐르고 반짝거린다. 어려운 일을 한 것 같지 않은 부드러운 손마디가 검은 실루엣 장갑을 빠져 나와서 가볍게 악수를 청한다. 멋진 모습이다. 남을 배려하는 모습도 그럴 듯하다. 자기 관리를 잘하여 남에게 칭찬을 받는다. 구리한 몸 냄새도 향긋한 화장품 냄새에 가려서 잘 느낄 수도 없다. 그것을 폼이라고 말한다.
폼에 대한 생각, 멋 내는 방법이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은 것 같다. 폼을 낸다는 것, 가식이 있는 폼이라는 것, 그저 폼 나게 살고 싶다는 등의 ‘폼’을 이용하는 많은 어구들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그저 삶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사람들은 폼 나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화두가 되지 않으면 세간의 이목을 모을 수 없다. 여느 모임에 참석하면 나를 폼 나게 소개해 준다. 꽃동네에서 봉사하는 의사라고 부추겨 준다. 그럴 때마다 낯이 간지러워진다. 삶의 일부분이 참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꽃동네에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굳이 소외라는 말을 정의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 특별해지는 것 같다. 이분들이 앓고 있는 병마가 특별한 질병은 아니다. 때로는 매우 특별한 환자도?있다. 살다보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아마도 질병의 무게가 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혼자 힘으로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 힘들어 이곳에 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노숙자 혹은 돌봄을 받아보지 못하다가 처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깨끗하지 못한 몸에서는 아주 역한 냄새가 난다. 우선 몇날 며칠을 씻지 못해서 나는 심한 체취는 그날 목욕하고 씻어도 그 다음날까지 계속된다. 건강상태는 처했던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 잘 못 먹어 탈수가 심한 경우, 동상에 두 발과 다리가 시퍼렇게 멍든 것 같은 경우, 두 다리가 찢겨진 상처로 인해 감염이 심해져 퉁퉁 부어 있는 경우, 의식도 혼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수액주사를 맞고, 투약 조치를 하면 점차 화색이 돌아서, 본래의 모습을?찾아가게 된다. 환자가 제 모습을 찾을 때 나는 괜히 마음 속에 ‘가오’ 즉 폼을 잡고 싶어진다.
어느 시에서 데려온 한?노숙자는 이미 환갑을 넘은 듯 보였다. 가끔 증상에 따른 처방으로 몇 번 약을 복용한 적이 있지만, 상태에 대한 적당한 평가 결과가 없었다. 수염은 한자나 될 듯이 길어 있었고, 때때로 내뿜는 체취는 매우 심한 냄새를 풍겼다. 자신을 돌보지 못한, 한 생물의 향기였다.
두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였고, 차고 온 종이 기저귀는 배설물로 가득하였다. 퉁퉁 부은 두 다리, 오랜?외부 생활로?인한 저체온, 하지를 제대로 못쓰니 기능부전, 어릴 적부터 앓아오던 질환, 혹은 신경계 질환 등등을 억지로 끼워 맞추어 보았다. 얼굴은 오랫동안 깎지 못한 수염으로 짙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머리털은 제멋대로 뒹굴고 꼬여 있어서 마치 건초더미처럼 보였다. 환자에게 소리를 질러도 겨우 목소리에서 꺽꺽 대는 소리만 들려 나왔다.
“아이고, 다리 아프다, 아이고, 못 살겠다”는 외침이었던 것 같다. 수일간 주사를 놓고, 외부 상처를 치료했다. 소변줄을 끼워서 도뇨가 되게 하고 관찰하기로 하였다. 애초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이는 노숙자의 얼굴은 일주일이 지나자 눈빛이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다.
양 다리의 부기가 빠지고 점차 본 모습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염증치료가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식사를 제대로 하기 시작하자 환자의 혈색도 거의 2주 만에 제대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배설물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여 큰 숙제였다.
상태는 다행히 점차 호전되어 갔다. 말도 몇마디 더 하게 되었다. 경계하던 눈빛은 점점 사라지면서, 마치 주위에 뭐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들짐승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것은 환자에게 좋은 징조가 된다. 정신이 선명해지지 않고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일주일이 지나서야 퇴원했다.
바쁜 진료실은 예전의 환자에 대한 기억을 하기에는 너무 사치스러운 곳이다. 밀려드는 환자 치료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다음 환자에 대한 기대 속에 기다리고 있는데 완연히 바뀐 모습으로 들어서는 그 환자의 모습에 나는 사뭇 사람의 모습이 저렇게 변할 수 있다는 놀라움을 갖게 됐다.
돌보는 이들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생명의 변화, 꾸벅 인사하는 그 환자의 눈가 주름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폼을 좀 잡아도 될까 하는 마음이 움틀거렸다. 간사한 마음이다. 우리네 의사들의 성취감이란 이런 것 같다. 여느 사업가처럼 거래를 성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여느 직장인처럼 그해 업무성과를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사망확률이 높은 상태에서 다행히도 삶의 과정으로 그 물길을 돌려놓은 것으로 우리는 만족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폼은 다행히 운 좋게 고비를 넘긴 것에 대한 한숨 돌리는 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