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통증에도 등급이 있다

의사라고 하면 질문이 아픈 곳에 대한 것들이다. 혹은 가족 중에 누가 어찌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다. 이전에는 그런 질문이 어떤 분야에 관한 것, 예를 들면 내가 외과의사이니까 외과적인 것만 물어보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저 외과 의사요’라고 이야기 하면 다른 질문은 쑥 들어간다.

질문의 내용도 여러 가지이지만 들어보면 사실 진료실에서?이루어지면 좋을 법한 내용들이 많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런 전문적인 내용들은 전문포털을 찾거나, 전문가를 찾아서 물어보거나 진료를 받아보아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그만큼 국민들의 의학에 대한 집중도가 예전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좀 난해하거나 애매한 증상으로 진료를 받을 때 그 즉시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의사라도 증상이 제대로 자리를 찾아가거나, 환자와 진료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점차 그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꽃동네에서도 말을 못하거나, 반응이 없는 경우, 아예 정신지체인 상황, 정신질환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중인 환자들은 어떤 변화에 대한 직접적인 상담이 불가능하니 일반 환자들처럼 상세한 접근이 어렵다. 그들이 말을 못하고, 질환에 대한 반응 또한 스스로 느끼지 못하니 생활상의 관찰, 주기적인 신체변화 관찰, 진료시 눈동자, 몸동작, 안면의 변화 등을 보면서 어떤 추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말을 하되 소통이 어렵고, 소통이 안 되니 환자는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어찌 할 바 모르고 끙끙 앓는다. 돌보는 이, 의료진, 환자 모두가 벙어리 냉가슴 앓게 되는 것이다.

사지 마비, 정신지체, 장애 환자 중 내가 소청하여 내원하기를 기대한 바, 그분은 벌써 두 번째 외래진료를 왔다.

첫 번 만남은 매우 형식적이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분들은 심리적으로 외과의사가 이런 말을 하면 약간 이상하다는 식의 피해의식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적절한 반응이 잘못 비춰질까도 우려할 수 있다. 그저 마음을 조금이라도 진실되게 열어보이는 순간을 포착해야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들어서는 빼빼 마른 체구의 노인은 그 눈매에서 뿜어 나오는 생명에 대한 강한 열기가 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목소리에 힘이 실려 듣는 이도 사지 마비 이외에는 오히려 활력이 가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은 목덜미를 타고 내려오는 강력한 전류같은 통증을 매우 잘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신경통증이 어떤지를 잘 안다. 의사로서 그냥 상상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신경을 절단하는 듯한 통증은 ‘그냥 참으세요’라고 말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척추신경 손상으로 손상된 부위 이하는 전혀 감각이 없어진다. 물론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함이 가득한 통증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분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쉬운 말로 어쩌나, 안됐다, 불쌍하다, 그런 표현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다고 한다. 그것은 의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인들 별로 할 것이 없단다. 단계별 통증조절이 그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느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약효가 없으면 할 일 다했다는 느낌으로 그 치료를 마치게 될 것이다.

이분의 신경손상은 그 경계가 확실하여 손상받은 부위가 뚜렷이 구분된다. 양측 손과 팔의 안쪽은 감각이 없고 바깥쪽은 감각이 살아 있다. 그 경계가 되는 부위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매우 심한 통증을 일으킨다며 이상한 감각을 말하기도 한다. “아주 이상해요 미치겠어요. 그럴 때면 이 약을 한알 먹어요”라고 한다. 신경 손상으로 인해 피부도 양쪽이 다르게 보였다. 이전에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에서도 목뼈의 손상이 뚜렷했다.

“어떻게 알고 미리 약을 복용하시는 건가요?”

“아! 미리 알지요. 벌써 몇 년이 뭐야 수십년이 되었는데. 이때쯤 되면 아프겠구나, 하고 먹지 않으면 안 돼요. 다른 때도 아프지만 아 어떡하든지 약을 잘 안 먹을려고요. 진통제를 많이 먹으면 좋은가요?”

오래전에 발생한 신경손상이 고착이 되어 더 이상의 기대는 사실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사지가 마비되고, 이상신경 증상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가 남은 기간동안 여력이 닿는 한 증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환자는 진통제를 조금만 먹고도 자신이 잘 견디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지금은 정신력으로 통증을 이기고 있지만 그것도 자주, 오래 가면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통증에 지배당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통증을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이 들면 의사와 상담해서 제대로 조절하세요.”

순간 그 환자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그, 그, 그러죠”

나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의 피부가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느끼고 있음을 안다. 이는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독특한 감각이다. 그의 눈을 보지 않아도, 그가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나의 감각이 감성을 포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 피곤한 일이다. 그저 말하는 그대로 알아들으면 되는 데 나도 모르게 그것을 느끼다니.

그들에게는 약을 적게 복용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훈장이 될 지도 모른다. 아니면 진정 더 적절한 방법이 있다면 투약받고 싶은 마음이 실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 어찌보면 나는 그의 그런 심정을 약간 건드렸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런 감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약을, 그것도 진통제를 더 복용하라고 하니 자신의 신념과 상반되는 의사의 주장에 자신의 신념이 무너질까 두려운 것일까?

굳이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알고자 하면 알게 될 것이고, 드러나지 않더라도 아는 이는 아는 것이다. 숨겨도 아는 이는 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될 거라는 것은 사람의 지혜와 의지, 그리고 물리적 능력으로 계측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영민하고, 지혜로워도 또한 아무리 무지하고, 어리석어도 깨달음은 그것과 비례하지 않을 것이다.?다만 그렇게 되도록 허락을 받았을 것이다.

일간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척추신경손상에 의한 만성 신경통증은 흔히 알고 있는, 호소하는 증상에서는 사실 그 실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연한 기회로 낫고 나면 그렇게 믿는 그런 믿음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많은?경우 그렇게 심한 질환은 많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우연의 법칙에 의해 세상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

꽃동네에는 이미 숱한 고난의 시간을 거쳐온 환자가 많다. 우연의 법칙보다는 마치 지금의 고통, 고난은 필연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승자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면 세상의 저 건너편에서는 오히려 패자의 법칙이 성립되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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