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에서①] 어르신들의 사랑방을 아시나요?
난데없이 가을비가 쏟아질 듯한 기세다. 날씨가 짓궂게 장난을 친다. 잠시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내비치더니 저녁이 되면서 붉은 노을은 흔적도 없이 잿빛 하늘로 금세 변해 버렸다. 드문드문 내리던 빗방울이 조금 지나니 기세가 점점 드세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할머니는 묘하게 비가 오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미리 빨래를 거둬들이셨다. 가끔 외출하셨다가 돌아 와서 빨래가 널려 있으면 비 맞는다고 호통을 치기도 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일기예보가 너무도 신기했고, 어떻게 미리 비가 오는지 알았는지도 궁금했다. 의사가 된 후에 그런 할머니의 일기예보는 신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의 섭리는 대기의 압력 변화로 노인들의 관절통을 심하게 하니 그 과학적 원리를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는 수많은 세월을 지내면서 체득한 경험으로 일기예보를 하신 것이다. 역시 자연과학은 경험론이 대세다.
내가 보건소에 다닐 때 이야기다. 도심 보건소라는 것이 구청과 같이 있는 경우가 많다. 구청과 이웃하고 있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행정관서 속에 묻혀 있다. 관의 행정업무를 보러 왔다가 가끔 기웃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몰랐던 사실의 발견에 감탄을 내뱉기도 한다.
보건소 진료실은 노인들에겐 만남의 광장이다. 아침 일찍부터 열댓 명의 노인들이 순서를 기다리는 진풍경을 기대한다면 그 시절 보건소 진료실을 상상해보면 된다. 전산시설이 안되었을 때는 보험증을 순서대로 쌓아두면 간호사가 출근하여 순서대로 호명을 하고 진료를 보게 된다.
행여 누가 새치기라도 할까봐 그 앞을 떠나지 않고 철통같이 지켜본다. 어느 심술궂은 분이 순서를 뒤바꾸어 놓거나, 처음 오신 분이 실수로 앞에 보험증을 두게 되면 대기실이 전쟁터가 되고 만다.
우리나라 할머니들은 나이가 들어도 바쁘다. 보건소 오는 날은 대개 달력에다 표시를 해둔다고 한다. 보건소 오는 길에 가까운 시장이라도 있으면 원스톱 쇼핑을 한다. 시장 먼저 갔다가 보건소 들렀다가 어린이집 손주 녀석들을 데려가면 딱 하루 걸린다. 때로는 보건소에 먼저 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후딱 간다고 할머니들은 힘들어 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당시는 만 65세만 넘어도 노인 대접을 받았다. 요즘은 오래 사시는 분들이 많아서 일흔이 되어도 경로당에서는 명함 내밀기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만 65세는 국가와 사회가 공인하는 노인이었다.
진료실에 앉아있는 것이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두어 평 될까 하는 좁은 공간에 책상, 환자용 침대, 컴퓨터가 자리를 차지하면 의사고, 환자고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다. 좁은 틈새로 겨우?움직여 탈출하기는 양쪽 다 조심스럽기가 마찬가지다. 겨울이 되면 두툼한 옷을 입고 오시기 때문에 혈압을 측정해야 하는 분들은 들어오기 전에 외투를 벗고 들어오시라고 해도 진료실에 들어와서야 벗기 시작한다.
또한 보건소 진료실의 분쟁은 좀 색다르다.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이라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공간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은 대개 아래 것(?)이 되는 데 이 또한 즐거운 만남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 격한 감정의 골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 분들이 있어, 좁은 진료실은 훈훈한 정이 넘쳐난다. 환갑생일을 봤다고 떡이며, 감주를 들고 오시는 분, 가끔 장보다 생각이 나서 인절미를 사셨다고 가져 오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곳이 보건소다. 보건소 의사 시절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내게 진료하는 의사로서의 길을 인도해주신 또 다른 선생님들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