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에서②] 어느 할머니의 기나긴 여행

일흔이 넘어서 열심히 수영장을 다니는 할머니가 계셨다. 경상도 사투리에 목소리는 장부 못지않게 컸다.

“내 스포츠센터 다닌다. 내가 칠십이 넘어도 아침에 수영갔다가 장보고 그래 한바퀴 돌고 나문 하루가 훌쩍 간다. 그라고 이렇게 보건소 한번 들르는 게 와! 선생 한번 보고 가야제.” 그러던 분이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하고 오시는 날에는 견과류 등 간식거리를 사갖고 오셨다.

“내 질부 사위가 의사 아이가. 사람 좋데이. 우리 선상님이 꼭 그 사람 닮았구마. 노인들 상대할라 카문 힘들제, 가끔 이거 먹고 힘내라이.”

그렇게 건강하고 씩씩한 할머니셨다. 힘을 실어주는 분이셨다. 몇년을 다니시던 어느 날 할머니는 여느 밝고 명랑한 얼굴과 달리 약간 핼쓱한 얼굴로 부산에 내려가게 되었다며 ‘오늘이 마지막이라’ 인사하고 가신단다. 나는 그간의 정이 있어 약간 서운함에 부산에 내려가셔도 규칙적으로 운동하시고 너무 무리하지 마시라고 당부드렸다.

의사는 환자의 이름이나 얼굴보다 잘 기억하는 것이 환자의 차트, 즉 처방내역이다. 환자분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얼굴로 기억하기를 원하지만 진료에 신경쓰다 보면 중요한 것만 기억에 남는 편이다. 전화로 “제가 누구인데요, 아시지요?” 그러면 대개 기억 못한다. 그러다가 차트를 꺼내 그분과의 대화나 진료내역을 보면 그제서야 “아, 예 그분이시지요”라고 대꾸하는 경우가 흔하다.

지나간 환자의 기억은 금방 지워진다. 그러다가 다시 차트를 보게 되면 아 그때 그 수영하던 할머니라고 맞장구치면서 금세 반가워하게 된다. 부산으로 떠난 후 그해 겨울을 넘기고 꽃샘추위가 막 지나갈 무렵 벚꽃 봉오리가 나뭇가지에 자리를 틀고 있을 즈음이었다.

낯선 중년 여인이 진료실에 들어서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아무개 할머니 아시는지요?”
분명 내가 진료한 환자이기에 여기에 들렀을 텐데 차마 기억 안 난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
“시할머니신데 할머니가 서울 의사를 한번 봐야 한다고 하셔서.”
“할머니 오셨으면 들어오시면 됩니다.”
“밑에 계세요”
“그럼 접수하세요.”

환자분들이 일층까지 왔다가 이층 진료실에 못 오시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내려가서 만나보기도 했기에 그러려니 했다. 접수된 차트를 보니 몇 달 전에 부산에 내려간 그 할머니셨다.

“부산에 가신다고 했는데”
“예 부산에 내려가셨다가, 꼭 서울 의사를 한번 만나봐야 한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지요.”

건강에 누구보다 자신하시던 분이 어찌된 일인지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내려가려는데 진료실 근처까지 휠체어를 타고 올라오신다.

“부산 할매 아닙니까?”
“아, 그래 그 의사 선생 아이가?”

몇 달 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에 얼굴은 약간 굳은 듯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무표정함은 문듯 치매현상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보호자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늘 서울의사를 만나러 가야한다고 하더란다. 부산에도 좋은 의사 많으니 부산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라고 가족들이 설득을 해도 듣지 않더란 이야기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얼굴이라도 봐야 될 거 같아서 서울까지 오시게 되었다고 하는 거였다.

세상에 건강한 모습으로 환자가 의사를 만나 감사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내 마음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문득 때를 느끼신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삶에 집착이 강할 때는 자신의 처한 상황 때문에 그 때를 모르고 지내는 데 천수를 다 하시는 분들은 그 때를 어느 정도 예감한다는 것이다.

나는 보호자에게 “그러신 거죠?” 하고 입을 뗐다.
보호자는 나의 질문에 눈짓으로 약간 찡긋하는 듯 했다.
“편히 모시기 바랍니다.”
“할머니, 마음을 잘 다스리세요.”
“아 그래 그 이사(의사)가?! 봤으면 됐다.”
“…”
나는 그 한마디에 차마 대답하려니 가슴이 메어 왔다.
“힘드신데 이렇게 멀리 오셨네요.”
“봐야제, 의산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늘 웃으시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나왔다고 소리치며 보건소 진료실을 드나들던 분이셨다.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자신의 건강을 자신하던 분이셨고, 세월의 풍파도 자신감 넘치게 살아오셨던 분이셨다. 하지만 병마의 고통과 삶의 종착역은 누군가는 한번 꼭 지나야하는 정거장과 같은 것. 몸은 그리 변하지 않았지만 정신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 년 동안 만나 진료 받았던 의사를 찾으시더란다.

그래도 그렇지! 힘든 몸을 이끌고 이 먼 곳까지 오셨단 말인가. 설령 서울에 자손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지 않은 건강을 생각한다면 그분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 것은 아닌지, 그 때문이었다면 의사로서 너무 과한 행동은 아니었을까?

가시는 길 사랑하는 가족과 일가 친척들이 함께하도록 기원하는 것이 의사로서 더 마땅한 역할이 아니었을까?

생명이 있는 만물은 그 때를 안다는 말이 틀린 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한 감사로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하느님을 믿고 있으나, 이럴 때마다 부족한 재능으로 의사의 신분을 득한 내가 너무 과한 은총을 받은 것은 아닐까 새삼 조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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