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결핵환자의 마지막 인사

20대 초반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꽃동네에는 활동성 결핵환자라고 하여 당분간 다른 환자들과 별도로 거주하는 공간으로 상당히 큰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삼면이 모두 창으로 되어 환기가 잘 되었던 곳으로 다른 방들보다 두배 이상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의무실-당시 시설에는 적절한 설비도 없었던 시절이라 그렇게 불렀습니다-에 도착해보니 한 20대 초반의 앳된 여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사연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모 업소 관리인이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말기 결핵환자로, 내성균이 많이 생겨서 더 이상 치료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호흡부전이 매우 심했습니다.

대개 결핵환자가 그렇습니다. 하얀 살색이 더욱 서럽게 보입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러하기도 하지만 매우 말라보입니다. 눈망울은 움푹 들어가 그늘져 보입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말을 걸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고, 호흡도 안 좋아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눈인사만 하는 정도였습니다.

“선생님”
떨리듯 밀려나오는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 들었습니다. 힘없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그 여인임을 알게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 숨 쉴 때마다 내뱉는 말은 그 끝을 잇기도 힘들 정도처럼 보였습니다.

실제 그 여성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소공급, 기관지 확장제, 진해거담제 등 때로는 항생제 등을 투여하지만 내 자신도 과연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그나마 그 정도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암담한 하루였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녀가 생각나는 것은 희다 못해 창백한 그녀의 피부 색깔 때문도 아니고, 너무 무력했던 내자신의 반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관지 확장제를 쓰고 있으니 좀 봐야지요.”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결핵환자의 치료는 쉬운 듯하면서도 재발하거나, 치료를 소홀히 하면 심한 폐의 손상으로 호흡부전에 이르게 됩니다.

창백하다 못해 점점 저산소증으로 파리해진 여윈 그녀의 얼굴에는 젊고 생기 넘치는 모습을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끈이라도 잡고 싶은 듯한 그녀의 눈망울이 나를 원망하는 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붉게 물들인 저녁 노을과 함께 저물어 갔습니다.
‘부디 내일도 볼 수 있었으면….’
갈 곳이 없던 그녀는 결국 이 곳에서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돌봐줘서 고마워요”
“……”

그녀의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직감으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에 대한 진정 감사의 인사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이곳에 데려다 준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마지막 안식처나마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한 점의 이슬을 머금고 사라지는 꽃잎처럼 가냘프게 떨다가 사라져 갔습니다.

사고(四苦)라는 말이 석보상절에 나온다고 합니다. 이 네 가지는 사는 일(生), 늙어가는 일(老), 병마로 고통 받는 것(病),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일(死)을 말합니다.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 앞으로 살아가는 일이 구만리 같다고 합니다. 늙어가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신체적 쇠약 현상은 슬프게 느껴집니다. 병마로 고통을 받는 것은 하루하루가 마치 지옥과도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어느 누구도 죽음의 힘든 과정은?단정할 수 없습니다. 앞서 말하는 세 가지가 종결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을 찾기도 하며, 불전에 공을 드리기도 합니다. 힘들 때는 어디든 달려갑니다. 때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지만 그 믿음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고뇌하며, 변화를 겪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죽음을 알리는 것은 언제나 떨리고, 긴장되는 일입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고인과 교감을 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죽음을 무어라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 뇌사, 심정지로 인한 사망 등의 규정을 정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종류를 정하는 것도 사람의 이기심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利己)’란 사전적 의미에서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마음을 뜻하지만, 무언가 이차적 기대를 가지게 되는 마음이라고 정하고 싶습니다. 자의, 타의에 의해서 결정되는 ‘이기’가 삶의 마지막을 흐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