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내가 아는 의사

1987년의 봄은 유난을 떠는 건조한 시기가 길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래도 봄가뭄을 해갈하는 비가 드문드문 오기도 했는데 그러지도 않았던 것이다. 의무장교 훈련을 마치고 갈색 흙먼지를 뒤로?음성꽃동네에 부임하게 되면서 인연의 꼬리가 시작되었다. 막상 의사면허를 취득하였지만 그 순간까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마치 거추장스런 장신구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남들은 그 부러운 의사가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한다. 의사란 그저 환자 보고 약 주고 돈 받고, 때로는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가 그냥 할 수 있는 일이란?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달달 외워서 마치 로봇처럼 환자를 만나면 주절주절 거리는 것이 고작이다. 때로는 다쳐서 오는 환자를 보고서 이것을 봉합해야 하는지 그냥 소독치료만 해야 하는 지를 고민해야 하는 나는?새내기 철부지 의사였다.

꽃동네는 난생 처음 만나는 특별한 장소였다. 깊은 산골에 들어서니 당시로는 보기 힘든 높은 건물이 있었고, 그만큼 생각지 않은 광경에 놀라기도 했다. 공중보건의사로서 근무한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막상 신참 의사에게는 너무 버거운 환자였던 것이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는 보편적 명제를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졸업하면서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보건지소나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보편적 명제를 실천에 옮기고자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감기 증상을 낫게 하고, 불편증상의 원인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것도 의사의 중요한?역할이지만, 정녕 깊은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그 근본을 해결하지 못하는 나는 괜한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했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의사라면 그 한계상황의 설정이 너무 다양하므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일종의 결벽증과 같은 것이 있다. 아마도 그 후로도 이 결벽증은 지속되어 지금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죽음을 삶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식하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큰 슬픔이었다.

지금도 지병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 의사가 인간으로서의 낙을 누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의사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삶이 있다. 의료는 나날이 발전하면서 복잡해지고, 예전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심지어 뇌에 구멍을 뚫어서 전기 자극을?하기도 하고, 신기한 빛을 비추어 환부를 제거하기도 한다. 몸속의 죽은 장기를 제거하고 남의 장기를 가져다 심기도 한다.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을 하느님의 뜻, 신의 뜻, 인살라, 부처님의 가호, 뭐 자신들이 믿음에 따라 생명유지에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육체의 생명은 결정되어 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육체의 생명은 없다.

영원한 생명의 안식이란 말 속에 담긴 ‘영원’은 무엇인가. 육체는 영원할 수 없다는 반문도 성립이 될 것이다. 지금의 행복과 삶의 기쁨이 충만하다면 영원을 바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현재의 행복이 어느 순간 날아가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은 영원한 약속을 기약하기 위해 많은 정신적, 육체적 노력을 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유무라는 개념에서 많이 생각하고 때로는 묵상한다. 이는 단순히 반대적 개념이 아니다. 있으되 없는 것이고, 없는 듯하면서도 있는 것이다. 생명, 신, 진리 이런 것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느끼고, 고뇌하며, 때로는 참회하게 된다. 막연한 불안감, 오늘의 행복이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랬으면 한다. 또 한편으로는 삶의 깊은 고뇌가 더 이상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기도하고, 기원한다.

어느날

머리가 약간 벗겨질 듯 말 듯한 내과 전문의사가 꽃동네 근무를 자원해서 온다고 했다. 나는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마음속으로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되겠구나, 뭔가 내가 배울 것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의사가 여기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무지를 깨우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내심 기대가 대단했다. 다만 같이 근무하던 의사는 환자에 대한 관심이 나와 사뭇 달랐던 탓에 그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당시 꽃동네는 지금보다 별로 더 못할 것 없는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지만 환자는 그 중증도가 매우 심각한 반면 부족한 의료시설, 걸맞지 않은 초라한 의사가 있었으니 내과 전문의의 근무는 나에게 빛과 같은 길을 제시해 줄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개인적인 접촉보다는 그 분의 시간이 바빴고, 어찌보면 자신의 신앙생활이 더 바쁜 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은 중년이 되어 버린 이 의사는 아직도 꽃동네에서 일하고 있다. 하느님의 종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헐벗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수리적 계산으로는 힘든 일을 하고 있다. 낡은 구두를, 끈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넘치는 정력으로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모르지만 기도하고, 진료하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환자들은 잘 익은 과일을 따러 달려온다. 언제나 과수를 심으면 바로 달짝한 과일이 열리리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믿음이다. 심지어 의료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달은 예전에 치료가 불가능하던 질병도 장기를 이식하여 살리고 있다. 하지만 의사에 대한 기대는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기만 하다. 제대로 된 의사를 만났다는 친구의 한마디가 왜 그리 반가운지 한편 서글프다는 느낌이 실감나는 그런 날도 있었다.

오래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환자는 이기적인 생명체라고 하셨다. 평소에는 그렇게 여유가 있던 사람도 환자가 되어서는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생리적 반응이다. 과연 이런 이기적 생명체와 나는 얼마나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의사는 이기적 생명체와 영혼과 안식에 대해서 나누고, 생명을 나누며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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