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봉사는 이기심에서 시작된다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진료 중 들려오는 벨소리는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도 했지만, 진동으로 바꾸지 않은 자신을 나무라면서, 걸려온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알 수 없는 번호다. 뚜껑을 툭 치면서 끊어 버렸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상대에게 약간의 미안함이 들어 진가 끝나면 확인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다시 그 번호로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좀 전의 미안함이 내 목소리를 공손하게 했다.
“ㅇㅇ생명입니다. ???라고 합니다. 고객님이 납부한 보험을 담당합니다. 담당이 바뀌어서 인사차 전화드렸습니다.”
“예,그래요.잘 알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마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보험플래너는 기회를 노칠 리 없었다. 언제부터 보험을 지급받을 것이며 혹시 다른 계획은 없는지, 재무계획은 어떤지 등을 물으면서 나의 심장마저 빼앗아 갈 듯 파고들었다.
“알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종료를 선언했다. 좀전의 미안함은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사람의 감정이란 참으로 묘하다. 동물들도 감정이 있다면 사람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잠시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후가 되자 그 여성 플래너는 다시 전화를 했다. 안받을까 생각했지만 내 담당으로서 의무를 다하니 이번만 성의를 보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다름이 아니고 꽃동네에 근무하신다고 하셔서요. 가평은 어떤지 만나 뵙고 싶어요.”
“계시는 데가 어딘데요?”
“서울입니다.”
“그럼 이 먼 데까지 오시라고 하기도 그러니 제가 퇴근하거나, 주말에 시간을 내지요.”
“아니요, 꽃동네를 꼭 한번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선생님도 찾아 뵙고 싶어요.”

이런 저런 연유를 들먹여 결국 그 보험플래너는 퇴근 시간 무렵이 되어 내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생님 어찌 이런 곳에, 참 훌륭하세요. 좋은 일도 하시고…”
“나는 극구 그런 인물이 못되고 직업이 의사이니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칭찬을 사양했다. 사실이 그런 것이니 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 보험플래너는 어려운 환자를 본다는 것, 그리고 경제적으로 별로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한다는 데 결국 초점을 맞추어 나갔다. 그러니 봉사가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태껏 봉사에 대해 너무 몰랐을지도 모른다. 아니 별로 봉사한다는 생각을 안하고 살아왔던 것 같았다. 그저 의사가 되었으니 진료하고, 자질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다행히 좋은 선배 의사를 만나 무사히 수련을 마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환자들, 내가 만나지 못했던 질환에 대한 관심은 결국 꽃동네에서 진료하게 되는 단추가 되었던 것 같았다.

대개 사회인들은 직장에 다니거나 개인 자영업을 하면서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대상이 다른 것은 확실하지만 나는 의사가 아닌가. 의사가 환자를 보니 그것은 별로 봉사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나의 부족한 재능에 화살을 보내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긴다. 한때 우연히 진단을 내리게 되거나 수술 후 회복 상태가 좋으면 내심 우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나만의 성취감, 만족감, 그리고?안도감… 뭐 그런 흔한 감성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짧은 이야기, 흔히 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찰나의 만남에서 값진 교훈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이 불편하면 남의 불편을 내 것처럼 느끼기 힘든 것 같다. 긍휼(矜恤)과 연민(憐憫)은 아마 진정한 봉사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는 그런 경지가 안된 것 같다. 이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때로는 마음에 상처를 받아 온종일 가슴앓이 하는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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