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무의 진료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간병비’ 시대
Patients burdened by high cost of caregivers(월 200만원, 배보다 배꼽이 큰 간병비/중앙일보 3월25일)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라고 ‘건강한 100세’를 누릴 것이라는 각 개인의 희망이 담긴 메시지는 매우 반갑습니다. 마지막 그날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가족들과 도란 도란 이야기하다가, 꿈꾸듯이 마감을 하는 그런 행복을 기대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무병 무탈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생물은 나이가 들면, 심지어 식물까지도 그렇습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영양상태가 좋아지고, 자신의 건강을 더욱 잘 관리하여 우리 사회에는 ‘백세시대’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노인들의 질병은 젊은이들 보다 몇 갑절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세월이란 시간의 화살은 쏜살같이 날아가게 됩니다. 질병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젊음을 유지한다고 성형도 해보고, 좋다는 약을 먹어보지만 역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움직이기 힘들어지면서, 경제활동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마이너스 가정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사람들이 더욱 불안해지고 우울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분들을 돌보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병상의 정도가 심할수록 그 수고료가 높아지게 되고, 심지어 너무 심하면 돈을 준다고 해도 돌보는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참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 부모님도 어느덧 팔순의 나이를 훌쩍 넘겼습니다. 아버님은 담도암으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두분 다 팔순을 넘겼습니다. 어머니는 소위 망각이란 특이한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셨습니다. 가족들은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있어서 조심하지만 어머니의 특이한 말과 행동은 때로는 모르는 분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게 됩니다.
당신은 매우 옳은 일과 말을 하니 당연하다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이 황폐해지지는 않습니다. 가족들이 가까이 다가가기에 어려워 합니다. 그런 상황을 정작 본인은 받아들이지 못하십니다. 이해를 못하시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런 정신적인 상황은 그분을 돌보는 제 형님과 주변 분들에게 많은 심리적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지각, 공간, 이해력 등은 아직 명료하니 지내시는 데 많은 불편은 없으실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간병은 이런 가벼운 증상부터 아주 중증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100세 시대에 준비해야 할 것이 과연 보험일까요, 간병비에 대한 준비일까요? 저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미래 즉 노인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혹 잘 나가는 친구들은 이미 십여년 전부터 나중에 늙어서 대비한다고 보험을 두둑히 들어 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래전 일이어서 그분의 모친이 몇 세였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아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분의 모친에 대한 지극정성은 당시에 별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별난 행동도 보통 심성으로는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당시 밤마다 늦게 링거를 들고 왔다갔다 하시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의사니까 그렇게 하시겠지’라며 담담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제가 그분의 댁에 무슨 일로 가게 되었는데 방 한 켠에 노인 한분이 병원용 침대를 마련해서 누워 계셨습니다. 암 말기로 식사도 못하시게 되었고, 대소변 수발을 직접 하신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심지어 못 드시니 경구용 관을 삽입하여 유동식도 정기적으로 투여하고 있었습니다. 밤늦도록 그렇게 어른을 돌보다가, 그 다음날 새벽같이 출근하여 진료하고 때로는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러고도 몇 년인지 흘러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분의 우직함이 오히려 성심과 정성으로 뭉쳐진 것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그런 의사가 아닌, 내공이 최소 저보다는 수 만배 강한 그런 분이었기에 존경스러웠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대단한 내공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100세 시대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돌아보고, 묵념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이미 100세를 바라보고 침상에 누워 하염없이 눈만 껌벅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이 없었다면 그 누구도 마지막을 바라봐 줄 분이 없었을 텐데 그나마 마지막이라도 지켜봐 줄 수 있는 곳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명 방송에 출연하는 그런 의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약간은 우직한 듯 보이는 그분은 지금도 묵묵히 수술실을 지키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의사가 여러분의 곁을 지켜주었으면 합니까? 좋은 기술을 배우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인고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아껴주는 의사를 부디 만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