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칼럼] 50명 채용에 청와대·국회·국세청 ‘청탁’ 100건인 나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사상 불공정성은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에까지 널리 만연되고 있다. 특권 집단의 자녀들이 공사(公私) 부문을 가리지 않고 ‘낙하산’을 타고 들어와 온갖 특혜와 특권을 누리는, 이른바 ‘똥돼지’ 사회가 된 것이다.
특권적 관행이 ‘제도’로 굳어지게 되면, 수명이 다된 왕조(王朝) 말기와 같이 다이나믹한 발전 에너지를 상실한, 정체된 사회가 된다. 불평등 구조의 고착화는 비단 발전의 정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분노한 서민층의 저항을 초래해 기득권 구조가 전면적으로 해체되는 혁명적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사회적 강자 집단을 위한 특혜 장치의 확산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간 부문의 인사특혜 상황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몇 년 전 한 재벌그룹 자회사에서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의 일이다. 신입직원 50명을 채용하는데 청와대와 국회, 국세청 등 권력기관으로부터 인사 청탁을 받은 건수가 100건이 넘었다고 한다. 청와대와 경제부처 등 기업의 사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권력기관의 청탁을 기업의 입장에서 거절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부회의를 거쳐 권력층과 고위공무원의 직계비속만 배려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더니 수용해야 할 청탁 건수가 1/3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고도성장을 지속하던 개발연대 동안에는 기업체에서 신규직원을 채용할 때, 필기고사를 통해 먼저 일정 배수를 걸러낸 뒤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가리는 선발절차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근년 들어 대부분의 기업들은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신입직원을 채용한다.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신입직원을 채용할 경우 외부의 인사청탁을 거절할 절차상의 장치와 명분이 없어지는 셈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권력층 자녀뿐 아니라 해당 기업 임직원 자녀도 채용상의 특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노동조합 간부 자녀들도 입사상 특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3~2007년 기업에 신규 채용된 청년 616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56.4%(3477명)가 친구·친척·가족 등 인맥(人脈) 덕분에 일자리를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수하게 공개경쟁 절차를 거쳐 채용되는 인력의 비율은 이 수치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특권구조가 뿌리깊이 내린 일부 서구 사회의 채용 관행은 우리보다 더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기업 신규 채용 인력조차 15%만 공개채용 절차를 거쳐 선발되고 나머지는 ‘연줄’로 채용된다는 것이다. 명문대 법대를 나와도 판사·검사 부모를 두지 못한 학생은 법조인이 되거나 유명 로펌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며, ‘배경’ 없는 서민 청년이 정규직 일자리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청년실업은 오늘날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이 예측하듯이 산업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일자리’ 자체가 없어지는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산업시설의 자동화와 컴퓨터 및 로봇 사용의 증가에 따라 총체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젊은 세대가 더욱 절망하는 이유는 기득권 구조의 공고화로 그나마 있는 일자리에 서민층 자녀들이 접근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양극화와 청년실업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등 사회적 갈등 수준을 근본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일자리 자체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구성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개경쟁채용 제도의 확산을 통해 사회적 공정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일자리 부족으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청년 백수가 많아 지면서 미래를 불안해 하고,현재의 생활은 고통으로 점철되는 상황이다. 못가진 자의 아픔은 너무도 슬프다. 이런 상황에서 특권집단의 특혜와 특권은 말이 안되는 짓이다. 교수님의 공개경쟁채용 제도의 확산을 통해 사회적 공정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말씀 너무도 옳은 말씀이시다. 기득권층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