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칼럼] ‘계층 고착화’ 수렁에 빠진 한국

미국부자 상위 5명 모두 ‘자수성가’···한국은?‘상속 증식’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계층 고착화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부문에서는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계층구조가 굳어졌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하도급 관계는 착취를 일삼는 엄격한 ‘갑을관계’로 구조화되었다. 여타 부문에서도 기득권층의 특권을 굳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끊임없이 꾀해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적인 불경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본 외국 언론들은 ‘역동적인 한국(dynamic Korea)’을 찬양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추세로 계층 고착화가 진행된다면 한국사회에 대한 기대는 몇 년 안에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2012년 9월19일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주제는 ‘한국부자 vs 미국부자’였다. 2011년도 미국의 <포브스> 자료와 한국의 <재벌닷컴>(www.chaebul.com) 자료를 인용한 내용을 보면, 미국의 부자 100명 가운데 자수성가한 사람이 74명인데 비해, 한국에서는 23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 미국의 부자 상위 5명 모두 ‘자수성가’한 사람인데 비해, 한국의 부자 상위 5명 모두는 ‘상속 증식’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통계치는, 한국에서 1960년 이후 태어난 신생기업 가운데 기업집단 상위 40위 안에 든 기업이 하나도 없는데 비해, 미국에서는 시가총액 상위 40개 회사 중 13개가 1970년 이후에 설립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사회는 아직도 ‘엘리트 순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건강한 사회인 것이다.

우리 사회 주요 이슈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거래관행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향후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엔 갑과 을의 ‘착취구조’로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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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그동안 계층상승의 주요 통로 역할을 해오던 교육 사다리와 시험 사다리들이 무너지고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객관성이 담보되는 공개채용이 축소되고, 특권 개입 여지가 많은 특별채용이 확대되는 것도 문제다. 외무고시 대신 국립외교원 수료자를 대상으로 외무공무원이 채용되고, 대학입시에서 전형 과정이 암상자(black box) 속에서 이루어지는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는 것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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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하반기 한국사회는 역사상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하였다. 별다른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그것도 일제의 수탈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반세기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우리나라의 1인당 GNP는 67달러였다. 1998년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7년 우리나라의 1인당 GNP는 2만 1655달러로, 마(魔)의 ‘2만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반세기만에 1인당 GNP가 323배 늘어난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의 에피소드를 모은 영화 <매쉬(mash)>에서 마음껏 조롱당한 한국사회가 사상 유례 없는 경이적인 압축성장을 이룬 것이다.???

한국사회의 주된 발전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된다. 국내에서는 특정한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에 힘입은 것이라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하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반되는 관점들이 제시되고 있다. 보다 중립적 입장에서 경제학자들은 물적·인적 자본의 축적률과 같은 객관적 지표를 사용하여 한국의 발전을 설명하고자 한다.??

한편 <문명의 충돌( Clash of Civilizations)>(1993 및 1996)로 잘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학의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 1927?2008) 교수는 한국 발전의 결정적 원인을 ‘독특한 문화’에서 찾는다. 그는 2001년 9월 해리슨(Lawrence E. Harrison)과 공편(共編)한 <문화가 중요하다(Culture Matters)>에서, 1960년대에 아프리카 가나의 경제상황과 비슷했던 한국이 30년 뒤 세계 14위의 산업 강국으로 발전한 결정적 요인을 ‘문화’로 진단했다. 헌팅턴은 “한국인들의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克己) 정신 등이 하나의 가치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한국이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진단했다.?

‘기회균등’과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

한국사회의 발전원인으로는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요인을 제시하지만 필자는 주된 성장 요인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평했던 ‘기회균등’과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이라고 본다.?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를 거치면서 구체제의 기득권 계층이 두 차례에 걸쳐 완전히 붕괴됨으로써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발점이 공평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짧은 압축성장 기간을 거치면서 기득권 계층이 미처 특권장치를 고착화시킬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함으로써 비교적 공정한 사회적 게임이 벌어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됐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재능 있는 서민계층은 치열한 사회경제적 게임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계층상승의 기회를 갖게 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국가사회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되는 계기를 갖게 됐었다.?

개발연대(development decades) 동안 계층상승을 위한 우리 사회의 시험사다리와 시장사다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공정하게 작동됐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그러하듯이 일정한 발전단계를 거쳐 기득권 계층이 특권 고착화를 시도하게 되면 사회발전 에너지는 소진되고 계층 간 갈등이 표출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먼저 상류층에 다다른 기득권 집단이 후발 계층의 상류층 진입을 가로 막고 계층상승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게 되면, 소외집단이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에 대해 시비를 걸게 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다. 이른 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일정한 발전 단계에서 성장을 멈추게 되는 ‘중진국 함정’의 원인을, 자본의 투입이 줄어든다든가 기술혁신이 정체되는 데서 찾는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요인은 경제지표상의 원인 즉 ‘근인(近因, proximate causes)’에 불과하며, 보다 심층적인 원인 즉 ‘심인(深因, deeper determinants)’은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이 훼손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이 계층상승의 희망을 포기하고 제로섬(zero-sum) 게임에 몰두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한 사회가 고도 성장기를 지나 계층상승의 기회가 줄어들게 되면 소외계층은 열심히 노력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길을 찾기보다는 부유 계층의 자산을 나눠 갖기 위한 제로섬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이에 따라 사회발전이 정체되기 마련이다.???

기득권층의 특권을 공고히 하려는 제도들이 뿌리내리면,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계층상승의 기대를 접고 제로섬 게임에 몰두하게 된다.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은 증폭하고 국가사회의 발전은 정체되고 만다. 박근혜 정부는 특권옹호 장치들이 제도로 굳게 뿌리내리기 전에 그 방향을 돌려놓는 것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절망에 늪에서?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comments

  1. 기득권층의 특권을 공고히 하려는 제도들이 뿌리내리면, 결국 폰 노이만과 모드겐 쉬테른에 의해 발안한 제로섬 게임에 몰두하게 된다는 것. 이로인해 사회적 갈등 증폭 , 국가사회의 발전의 정체가 생긴다는 말씀 가슴에 와 닫습니다. 공감 백배!!!

  2. 꿈을 꿀 상황이 못 되는 사회적 환경이라면, 꿈도 가지지도 못하고 자포자기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기회균등’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이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기득권층의 특권이 계속 강화된다면, 야기되는 문제점에 적극 의견을 같이 한다. 기득권층이 아닌 젊은이들도 꿈을 갖게 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정책이 계속 나오길 바란다.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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