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칼럼] 도 넘은 기득권층 부패

자녀취업·학비대납 등 편법 극성… 제도화되기 전 막아야

얼마 전 언론에서 검찰총장이 한 발언을 읽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일선 검찰에서 확실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은 채 구속기소부터 무혐의 처분까지 모든 결정이 가능하다는 식의 보고서를 보내 총장의 결정에 의존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얘기다. 비록 검찰총장의 권한을 분권화하겠다는 선의에서 한 말이라 하더라도 한국은 법치국가가 아님을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특정 피의자가 범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구속 기소될 수도, 무혐의 처분될 수도 있다면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공정한 법질서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최근 판사 사위의 불륜상대라는 의심을 품고 여대생을 청부 살인한 중죄인에 대해 검찰과 법원이 수형기간의 상당 기간을 민간병원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호화생활 하도록 허용하고 방치한 행태는 검찰과 사법부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사회를 뒤흔든 ‘스폰서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은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검찰권력을 견제하지 않고서는 사회정의를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지경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사회 각 부문의 부패도에 관한 인식조사(2010년)에서 국민이 부패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사법부 71.1%, 입법부 67.7%, 행정부 64.6%로 나타났다. 사법영역이 상대적으로 부패가 덜하다고 생각해온 기존의 인식을 뒤집은 조사결과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같이 강력하고 독립적인 사정기관 설치가 필요함을 확인시켜준다.

전관예우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사법부와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와 국방부·교육부 등 비경제부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정부부처가 ‘갑 중의 갑’으로 행세하며 대형 로펌. 민간기업, 대학 등에서 수억원의 연봉을 받고 고위직에 안착하고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제17조)은 “공무원과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업무와 관련 있는 사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퇴직 공무원들이 재직 당시 업무와 관련 있는 사기업에 취업하면서 유무형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전관예우, ‘범죄수법’ 전수 통로

유관업무 근무경력을 세탁하기 위해 퇴직 전 일정기간 동안 업무 관련성이 없는 부서로 옮겨 근무하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2년 8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현행 법규상 범죄로 규정하기 어려운 자녀 취업보장, 학비 대납, 장학금 지급, 고액 임대차 계약, 특허 공동등록, 용역발주 등 부패행위가 다양화·은밀화·고도화되고 있다.

전직 고위관료들은 대형 로펌과 대기업 등에 취업하면서 ‘범죄수법’ 전수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2011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를 떠나 한 법률회사로 자리를 옮긴 전 사무처장은 짬짜미 의혹을 받고 있던 한 정유회사가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면제받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이런 사건은 특성상 사법당국에서 공식 개입하기 전에는 사실 여부가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후배 공무원들이 퇴직한 선배 공무원들의 청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자신들도 머잖아 그 길로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불공정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몇 년 전 재벌그룹 자회사에서 신입직원 50명을 채용하는데 청와대와 국회, 국세청 등 권력기관으로부터 100건이 넘는 인사청탁이 들어왔다. 기업의 사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권력기관의 청탁을 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간부회의를 거쳐 권력층과 고위공무원의 직계비속만 배려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더니 수용해야 할 청탁 건수가 3분의 1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2011~2012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에서 한국은 OECD 34개국 가운데 27위로 국가청렴도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게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도 이같은 실태를 확인시켜준다. 부패공직자의 수는 2007년 761명에서 2008년 835명, 2009년 1226명, 2010년 1652명으로 증가추세에 있다.

부패 관련 통계치는 그러나 한 사회의 개략적인 변화 추세만 나타내 줄 뿐이다. 사정당국에 의해 적발된 부패공직자의 수는 거대한 빙산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현행법에 의해 위법으로 간주되지 않는 온갖 부패행위, 공직자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 행태는 워낙 광범위해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공직자가 공익(public interests)을 수호하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부여 받은 권한을 사익(private interests)을 위해 행사한다면 그것이 바로 부패다. 경제부처 관료가 개발지역 예정지 농지를 사들인다거나, 특정주식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의 공무원이 해당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가 되판다거나, 판사가 가족·친지가 연루된 사건에서 해당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는 등의 이해충돌 행태는 형법이 적용되는 부패행위로 규정되어야 마땅하다.

한국 국가청렴도 OECD 27위

어느 사회나 일정 발전단계를 거쳐 사회가 안정화되면 기득권집단이 형성된다. 큰 부패는 보통 힘있는 기득권층에 의해, 또는 특권층과 연계해 저질러진다. 기득권집단은 권력·부 등 사회적 가치를 부당하게 많이 차지한 ‘특권집단’을 말한다. 기득권집단의 특권이 제도적으로 고착화되면 사회적 게임이 공정하지 않은 계층사회, 신분사회가 된다.

지배집단은 사회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부패활동에 관여한다. 이른바 권력형 부패가 그것이다. 지배집단은 나아가 사회적 가치의 지속적 장악을 위해 특권의 제도화를 획책하게 된다. 특정 사회적 제도는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도구라 할 수 있다. 안정된 사회란 지배집단의 특권이 공고화, 제도화되어 소외계층(have-nots)의 도전이 억제된 사회다. 그만큼 사회적 역동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부패는 기득권층의 특권이 제도로 굳어지기 이전 불법화 단계에 놓여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게임의 룰이 공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득권층의 특권이 부패로 규정되지만 그것이 굳어지게 되면 제도로서 정당성을 획득하고 사회체제는 곧바로 신분사회로 바뀌게 된다.

한국사회가 역동성을 상실한 신분사회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려면 기득권층의 권력형 부패에 대해 보다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기득권층의 특권이 제도화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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