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불공정 대한민국’ 만드는 ‘불편한 진실들’
“대한민국은 과연 공정한가?” 이렇게 묻는다면 한국인 10명 중 7~8명은 공정하지 않다고 답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2012년 2월, 20~40대 1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78.8%가 ‘부모의 지위에 의해 계층상승 기회가 결정되는 폐쇄적 사회’, 75.5%는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불공정한 사회’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행정학회 회장을 지낸 이종수 한성대 교수(행정학)는 최근 낸 <대한민국은 공정한가?>(도서출판 대영문화사, 2013년 1월5일)에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권력, 부, 명예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다투는 경쟁규칙이 공정하게 설계되고 운영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책에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공정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이아무개, 강아무개 등으로 표현했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군지 금세 알 수 있도록 까발린 것도 특징이다. 이들 가운데는 저자가 다닌 경기고와 서울대 동문들이 여럿 있다. 공정사회를 해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학연 지연 근무연 같은 인적네트워크도 한몫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듯하다. 머리말과 6부, 23장 및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로 구성된 이 책 가운데 제2부 ‘대한민국, 무너지는 계층상승 사다리’와 제5부 ‘공정한 사회제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는 꼭 일독하길 바란다. 저자는 특히 교육 및 시험 사다리의 와해, 인사특혜 확산, 전관예우, 쪽지예산 같은 실태를 꼼꼼히 고발한다.
“몇년 전 한 재벌그룹 자회사에서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의 일이다. 신입 직원 50명을 채용하는데 청와대와 국세청 등 권력기관으로부터 인사청탁을 받은 건수가 100건이 넘었다고 한다. 간부회의를 거쳐 청탁을 넣은 기관장의 직계비속만을 배려하기로 결론을 내렸더니 수용해야 할 청탁건수가 1/3 정도로 줄었다는 것이다.”(37쪽)
“2006년부터 2010년 5년간 외교통상부에서 신규채용된 698명 가운데 63%가 특별채용을 통해 들어왔다.”(57쪽)
“2004년 12월 당시 이아무개 경제부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역특구위원회는 경제부총리의 부인 및 처남의 땅 수십만평이 포함된 전북 고창군 공음면 일대를 경관농업특구로 지정했다.”(72쪽)
“2006년 8월27일에는 강아무개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이 갑작스럽게 사표를 제출했다. 직위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제직하던 1999년, 그 처제와 동창생들이 공항 인근 개발예정지역의 알짜배기 땅을 사들였는데, 그 석달 뒤 해당지역의 관광단지 기본계획이 확정되면서 시세가 급상승했다는 것이다.”(72쪽)
독자들은 두 분이 누군지 이미 짐작하셨을 것이다. 작년 여수엑스포와 안철수씨 출마선언 즈음에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인물임을.
“행정부 관료 출신에 대한 전관예우는 금융감독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같은 경제부처는 물론 국방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비경제부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처에 연관된다. 경실련은 2011년 5월 김앤장 등 국내 인수합병전문 대형로펌의 전문인력 96명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와 금감원, 국세청 출신 관료가 53명으로 55.2%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직에 재직했던 전문인력 85명 가운데 72명(84.7%)은 퇴임 뒤 로펌에 재취업하기까지 1년이 걸리지 않았다.”(76쪽)
국회도 ‘불공정한 대한민국 만들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2011년 예결특위 야당측 간사인 강아무개 의원은 지역사업의 예산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와 모 호텔에서 밤부터 아침까지 줄다리기를 벌여 극적으로 반영됐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예산실장이 ‘하늘이 무너져도 F1대회(국제 자동차 경주대회)지원은 안 된다’고 해서 ‘그럼 한나라당과 잠정합의한 새해 예산안도 무효다. 알아서 하라’고 협박한 얘기도 전했다. ‘지역예산을 협조해 주면 예산안 처리 때 혼자라도 본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제안해 예산당국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서게 했다고 주장한 그는 실제로 소속당 의원 모두가 퇴장한 가운데 유일하게 본 회의장에 남아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85쪽)
2012년 12월31일과 2013년 1월1일 2년에 걸쳐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쪽지예산’을 돌린 우리 국회의 민낯은 이미 오래전부터 숙성되고 있었다고 이 책은 소개한다.
저자는 훗날 미국 제6대 대통령이 된 존 퀸시 애덤스 상원의원의 사례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존 애덤스, 제2대 대통령)를 떨어뜨린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대영금수조치(對英禁輸措置)’에 찬성함으로써 지역과 소속 정당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이 일 후 18년 만에 부자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91쪽)
또 다른?사례. 대쪽판사로 2005년 여름 숨진 故한기택의 일화다.
“남편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 관영차를 배정받았으나 한번도 동승의 기회를 갖지 못한 한판사의 부인은 동네 한 바퀴만 돌아보자고 청했다. 부인의 간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한판사는 자녀들조차 관영차에 한 차례도 태운 적이 없었다. 장례식날 장지로 가는 고인의 부인에게 동료판사가 관영차를 타도록 권했으나 부인은 ‘남편이 원하지 않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96쪽)
“서울중앙지검에 부장검사출신 변호사는 개업 1년 만에 100억원이 넘는 수익료를 벌었다는 등, 의뢰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형사부 부장판사 출신들은 개업 첫해에 20억~30억원까지 벌게 된다는 등” (101쪽)
“김앤장, 광장, 태평양, 세정, 화우 등 5개의 대형로펌이 2006년부터 3년간 1682건을 수임해 14.3%의 무죄율을 기록했는데 전체 형사사건의 평균 무죄율 1.4%의 10배에 이르는 것이다.” (102쪽)
저자는 제5부에서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한다. 신인선수 선발의 불공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드래프트 시스템제도 역시?그중 한 사례로 들고 있다. (246쪽)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자 또는 가진 자들의 의식전환이 해결책이라고 이종수 교수는 주장한다. 그는 2011년 8월 14일자 <뉴욕타임즈>에 워런버핏이 기고한 ‘부자들을 애지중지 하지 말라’는 제목의 칼럼을 예로 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를 위해 싸우고 대부분의 미국인이 겨우겨우 살아가는 동안 큰 부자인 우리는 엄청난 세금우대를 받아왔다. 투자매니저로 일하는 우리 동료들은 하루 수십억 달러를 벌지만 그 소득은 보유이자(증권지분 보유로부터 얻는 이자수익)로 간주됨으로써 15%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주가지수 선물 단 10분간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마치 장기 투자자인양 수익의 60%에 대해 15%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지난해 나에게 부과된 연방세 즉, 소득세와 지불급여세(급여, 임금등에 과세되는 세금)는 693만 8744달러였다. 엄청 많은 세금을 낸 것 같지만 내가 낸 세금은 내 과세소득의 17.4%에 불과했다. 그 세율은 실제 내 사무실에 근무하는 다른 20명의 직원이 납부한 세금의 세율보다 낮다. 그들의 조세부담은 평균 36%로, 33~41%의 구간에 걸쳐 있다.” (258~259쪽)
<대한민국은 공정한가>의 저자는 책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건 우리 사회와 정부, 아니 좀더 솔직히 표현하면 힘있고 돈 많은 사람들을 향한 호소다.
“상위 1%인 부유층이 국부의 35%를 차지하고 상위 20%가 85%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같은 심각한 불평등구조 속에서 ‘책임 있는 부’를 주장하는 일부 부유집단이 ‘나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라(tax me more!)’는 운동을 펼치는 미국사회는 그만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비록 그들에게 닥쳐올지도 모르는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계몽적 이기심 때문에 그런 주장을 편다 하더라도 그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62쪽)
이 책 뒷 표지 날개에 실린 장 자크 루소의 초상과 그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부자들은 기존에 노예를 부려 이웃들을 정복하고 예속시킴으로써 새로운 노예를 얻으려는 생각밖에 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사회적 강자에 의한 강탈과 가난한 자의 약탈 그리고 이들 양자의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 자연적 연민이나 정의의 목소리를 잠재우면서 인간들을 탐욕과 야망 그리고 악덕에 빠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