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EBS ‘인문학특강’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내로라하는 대학마다 인문학 최고위 과정을 개설해 대기업 임원, 국회의원, 정부 고위관료 모시기 열풍이 불고 있다. 도대체 인문학이 무엇이기에? 서강대 최진석 교수가 낸 <인간이 그리는 무늬>(소나무, 2013년 5월6일 초판발행)는 인문학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풀어내고 있다. 북경대학에서?<成玄 英的 ‘莊子疎’ 硏究>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 자신의 삶이 ‘인문학적 발자취’와 다름없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바라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최 교수는 ‘저기 사람이 내게 걸어 들어오네’를 머리말 제목으로 뽑았다. 참 맘에 드는 말 아닌가? 서문부터 독자들 가슴을 활짝 열어젖혀 준다.

“마음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비밀스런 내면의 충동을 억누르면서 자신을 줄여나가면 사람이기 어렵습니다… 경지 정리가 매끄럽게 잘된 땅에서 누구나 심으려고 하는 작물을 심고, 남들보다 더 잘되기만을 바라는 경쟁적 요행심을 갖는 것보다 차라리 측량도 안 된 황량한 들판에 서서 땅과 자신의 관계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민하는 우직한 자, 자와 컴퍼스로 그려진 정치한 설계도에 의지하는 것보다 땅 위에 서서 바람의 소리를 따르고 태양의 빛을 살펴, 점 몇 개로 설계를 마무리하는 자….

외국 철학자의 말을 들먹이며 토씨 하나하나 외우는 자가 아닌, 거칠고 투박하게 자신만의 말을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 봄이 오다고 하는 대신, 새싹이 움을 틔우는 순간을 직접 경험하려고 하는 자…?들은 말을 여기저기 옮기지 않을 수 있는 자. 호들갑스럽지 않고 의연한 자. 10여 시간이 넘는 비행기 여정에서도 내릴 때까지 시계를 한번도 보지 않을 수 있는 자, 편안한 어느 한편을 선택하기보다, 경계에 서서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자. 바로 이런 자들이 사람입니다.

이성이 아니라, 욕망의 힘이 주도권을 가진 것이지요. 그런 자가 내 작은 정원에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올 때 저는 비로소 공간에 갇힌 시간이 튀어나는 느낌을 받으면서 느낍니다. “저기, 사람이 내게 걸어 들어오네”

이 책은, 아래의 제목을 단 몇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인문적 통찰을 통한 독립적 주체되기’, ‘인간이 그리는 무늬와 마주서기’,?‘명사에서 벗어나 동사로 존재하라’,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필자는 버릇대로 이 책도 밑줄 쳐가며 읽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는 연필 자국이 딴 책들보다 유난히 많이 남았다. 다소 길지만 소개하여 아시아엔(The AsiaN)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한국에서 나온 철학 박사학위 논문의 99%는 먼저 나온 세계관을 설명하고자 해석하려고 하는 ‘무엇 무엇에 관한 연구’들입니다. 그런데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나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같은 책들은 그들의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려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논문들이지요. 마치 장르를 새로 개척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 서양에서는 시대를 주도하는 창의적인 연구와 그 연구를 분명하게 치밀하고 해주는 무엇 무엇에 관한 연구의 형식이 공존하는 반면, 한국에서의 철학연구는 무엇 무엇에 관한 연구로만 채워진다는 것이지요. 훈고의 기운으로만 채워져서 창의의 기운이 발휘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32~33쪽)

“큰 상인들은 대개 의사결정을 할 때 논리를 따지거나 분석을 하지 않고 바로바로 판단하더라구요. 학자들도 대개는 다 이 사람이 훌륭한 학자인지 아닌지 딱 보면 알아요. ‘딱’이라는 뭐 뭐냐 이게 통찰이에요. 이게 바로 더듬이란 거죠. 세상사는 생각하기 시작하면 꼬여버리죠. 저는 우리의 많은 능력이라는 것이 이 ‘딱’ 보고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더듬이를 조금 더 고급스런 표현으로 하면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37~39쪽)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단지 ‘좋다’라거나 ‘나쁘다’일 뿐이라면 여러분은 리더가 될 준비가 없는 사람입니다” (43쪽)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위대한 리더를 성인이라고 했지요. 성인은 일반인과 다른 특징이 있어요. 바로 조짐을 읽는 능력입니다” (45쪽)

“인문적 통찰은 대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서 열립니다. 모두가 대답하려 할 때 혼자서 질문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46~47쪽)

저자는 문과와 이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理’라는 글자를 볼까요, 옥돌에는 무늬가 있죠. 즉 결이 있는 거에요. 옥돌에 새겨진 무늬를 리라고 해요. 리는 자연이 그린 거죠. 인간과 아무 상관이 없이 그려진 거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존재여부와 상관없는 것들에 대한 연구, 그것이 바로 이과 학문이에요. 한편 文이란 글자를 봅시다. 문은 원래 무늬라는 뜻입니다. 문이란 인간이 그려요. 그럼 인문은 뭐냐?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말입니다” (56~58쪽)

“인문학적 훈련이 되어있지 않을 때 어떤 새로운 사건이나 사태를 만나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대개는 좋다 나쁘다 이렇게 판단합니다. 이 판단이 바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이념이나 신념 때문이죠. 이념과 신념을 뚫고 이 세계에 우뚝 서는 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63~64쪽)

“‘상상력을 갖기를 원하는가?’ 먼저 자기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내 신념을 나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내 지식과 가치를 나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이 자신인지를 인식할 때 비로소 인문학적 통찰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67~68쪽)

“‘우리’는 ‘나’를 가두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나를 가두는 ‘감옥’입니다” (71쪽)

“어떤 학생이 대학원을 오겠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대화를 하는 내내 어떻게 점잖게 거절해 빨리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죠. 몇가지 질문을 했으나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어요.

문: 무엇 연구하려고 하는지요?
답: 도가 철학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문: 왜 도가 철학을 공부하고 싶지요?
2분 정도 끙끙 앓더니 대답했습니다.
‘저는 <도덕경>을 읽는 때가 제일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아, 저는 그 순간 내가 바라던 학생이 왔구나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사명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에 따라서 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걸어와 준 김재익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저도 무척 행복했습니다“ (76~78쪽)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실 버릇없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에요. 당연한 것, 정해진 것들에 한번 고개를 쳐들어 보는 일이에요. 익숙한 것은, 자기가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인문학의 기본출발은 생각이에요. 일반적으로 서양 철학의 시조를 탈레스라고 합니다. 이 한마디의 말이 그를 서양 철학으로 등극시킵니다. 탈레스 이전 사람들이 모두 이 세계의 근원을 신이라 믿을 때 탈레스는 과감하게 이 세계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세계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탈레스의 판단이 신의 계시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이미 정해진 믿음의 체계를 따른 것도 아니며, 오직 탈레스 본인 생각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103~104쪽)

“한국 사회는 이념의 억압과 지배, 신념에 대한 신뢰가 특히 강한 사회 같습니다. 한국 사회를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극단적 표현도 있더군요. 그것은 행복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기 않기 때문이에요” (106쪽)

“자신에 대한 무한애정! 자시에 대한 무한신뢰! 이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입니다“ (112쪽)

“이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회는 경색되고 이념간의 무한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어요. 이념은 항상 추종자를 원하니까요. 순교자와 수행자에게 타협이란 없습니다. 경화된 이념과 신념은 우리를 억압합니다. 그리고 광기와 폭력을 부릅니다.” (131~132쪽)

“멋대로 하라. 그러면 안되는 일이 없다(無爲而無不爲) <도덕경> 37장 (135쪽)

“공자는 인간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인간인 성인들이 만들고 사회적 합의에 의해 공인된 바람직한 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원칙. 그리고 좋다고 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따르고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이와 정반대로 ‘바람직한 일‘보다는 바라는 일, ‘해야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 ‘좋은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곧 보편적 이상에서 벗어나 개별적 욕망에 집중해야 멋대로 할 수 있고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습니다” (136쪽)

“헤겔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부엉이는 지혜를 상징합니다.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는 대낮에 뭐하다가 황혼에만 날개를 펼까요. 대낮은 어떤 시간이죠?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간이지요. 황혼은 고요해지는 시간이구요. 부엉이가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는 것은, 사건이 마무리되고 조용해지고 나서야 날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의 수동성과 지식인의 소극성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황혼이 되면, 지혜를 관리하는 지식인들이 그제서야 나타납니다. 그때 나온 것이 이론이고 지식입니다.… 군사전문가가 그리 많아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막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연평도 폭격 시는 가만히 있다가 포격이 멈추고 조용해지자 황혼 무렵 서서히 나타나고, 사후전망까지 예측합니다. 지식은 사건이 남긴 똥인거에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건은 흐르지만, 지식은 정지해 있다는 점입니다” (142~144쪽)

“학창시절에 그 많던 1등들을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을 지배하는 지식이나 이념이 아니라, 그 사람을 움직이는 내적 동력. 그 사람의 바탕이죠. 바로 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176~ 177쪽)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한 자는 알지 못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도덕경> 56장 (187쪽)

“하품할 때 자기가 진짜에요, 하품을 죽어라 참는 게 진짜에요? 제 말은 하품하는 순간에 드러나는 자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191쪽)

“서양 학자들에게, 당신은 왜 이 공부를 합니까? 라고 하면 한 문장으로 대답합니다. ‘Because I like it!’”(195쪽)

“기말고사 때 학생들에게 이런 시험을 내곤합니다. 문제도 당신이 답도 당신이 정하시오. (단, 어떤 개념 설명하거나 논술하는 것은 문제가 아님. 문제에는 구체적 내용이나 사건이 포함되어야 함.) 처음에는 희희낙락하던 학생들 사이에 한숨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답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문제를 출제하기가 어려워서입니다. 한 학기 수업을 하면서도 그냥 앉아서 지식을 흡수하는 데에만 집중했기 때문이겠지요? 문제의식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9쪽)

“안정이나 완벽은 죽음의 세계에요. 살아있는 것은 불안정합니다. 죽은 것은 안정을 유지하고 살아있는 것은 불안정합니다. 불안을 피해 안정이나 완벽에 도달하려는 꿈.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없는 일이니까요” (207~208쪽)

“어떤 사람이 국제기구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합니다. 빈민 목욕을 돕고 집안청소도 도와줍니다. 몇 달간이나 그 어려운 봉사를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장모님의 대소변도 받아내지 못합니다.?인간은 대개 일상에서 좌절합니다. (210~211쪽)

“이 세계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개념이에요. 구체적인 실재가 아니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죽어가는 일’이 존재해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건’입니다“ (228~229쪽)

“깨어있다는 것은 예민함을 유지한다는 말입니다” (237쪽)

“낯설게 보이는 골목길에 서서 나무를 보고 발생한 사유의 궤적이 바로 속도에까지 꽂힐 수 있는 활동, 이것이 바로 철학적 태도의 시원적인 출발형식입니다. 단 여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과음을 할 것, 둘째, 외박을 할 것, 셋째, 같은 시간대에 역류를 할 것. 이 역류의 과정 속에서 여러분은 매우 보배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낯섦입니다”(240쪽)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 귀중히 여긴다면 천하를 줄 수 있고,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이나 아낀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도덕경> 13장 (251쪽)

“선거철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말하는 사람 믿지 마세요. 국민을 위해 이 한몸 바치겠습니다,라는 말은 절대 믿지 마세요. 자기 몸을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덕이 있고, 천하를 자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덕 대신에 이념이 있어요. 자기 활동의 동력을 이념에서 구하면 거기에는 자기가 존재하지 않아요. 자기 존엄의식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해도 부끄러운 줄 모르죠” (253~254쪽)

“대답이라는게 뭘까요? 되도록 빨리 많이 섭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답하는 곳에는 자기가 존재하지 않아요. 질문하는 곳에 자기가 존재합니다. 자기가 ‘우리’라는 집단 속에 용해되어 있으면 대답만 가능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주인으로 살아 있을 때, 질문이 시작됩니다” (256~257쪽)

아시아엔(The AsiaN) 독자 여러분, 지루하지 않으시죠? 거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조금만 더 눈과 귀를 귀울여 봅시다!

저자는 자기를 만나는 법에 대해, 세가지 대안을 제시합니다. 글쓰기, 운동하기, 그리고 낭송입니다.

“스스로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다른 사람의 글을 베끼세요. 글로 쓰면 자신과의 약속이 더 선명해집니다.… 자기를 대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운동입니다. 운동은 온통 자신으로만 가득합니다.… 자기를 대면할 수 있는 장치는 낭송입니다. 낭송은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지요. 바로 소리를 내어 읽은 다음 그것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는 내용이 실체화되는 것입니다” (266~268쪽)

“개그맨 김병만씨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이런 말을 하는군요. ‘내가 이렇게 해도 웃지 않고, 저렇게 해도 웃기 않아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버렸다. 그러니까 웃더라’” (276쪽)

“논문에는 감동이 없지만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여백이 존재하여 다른 ‘나’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다른 공간을 준비해주기 때문이지요” (279쪽)

“비오는 날 오후에 소주 한잔 생각 안 나면 죽은 목숨이에요. 첫눈 오는 날 첫사랑 생각 안 나면 죽은 목숨이에요. 비오면 옷 젖을 생각에 짜증나고 눈 오면 미끄러질 생각에 근심만 하면 죽은 목숨이란 말이죠. 항상 예민함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289쪽)

“오직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오직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라” (290쪽)

늦깎이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삼성 CEO들을 대상으로 두 번 특강을 했다.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한다. 최근 매주 목요일 밤 진행되는 그의 EBS <인문학 특강> 제목이 ‘현대 철학자, 노자’로 잡힌 것만 봐도 그의 내공을 알 것 같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장자철학> <노자의 소, 도교, 불교와 만나다> <개념과 시대로 읽는 중국사상 명강의>는 그가 33년째 함께 대화하고 마시는 유재현씨가 대표로 있는 소나무에서 나온 최 교수의 저서 혹은 역서들이다. 책을 덮을 때, ‘벌써 여기까지 왔나?’ 아쉬움이 남는 오랜만의 읽을거리를 준 최 교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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