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칼럼] 내규·지침 등 하위규범 꼼꼼히 감시해야 ‘공정성’ 유지
일선 행정기관의 업무처리 과정에서는 국회에서 만든 ‘법률’보다는 행정부에서 만든 시행령이나 규칙, 규정, 내규, 지침 등 하위규정이 더 직접적 기준으로 작용한다. 목표가 수단에 의해 대치되거나 목표-수단의 우선순위가 바뀌게 되는 이른바 목표전도(displacement of goals) 현상이 나타난다.
법령체계의 최상위 규범으로서의 헌법은 국가통치의 기본원리를 담고 있다.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나 기본원칙을 표명한 상위규범들은 그러나 그 추상성으로 인해 현실세계에 대한 작용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시행령과 규칙 등 하위 규정에서 구체적으로 표명된 수단적 가치는 오히려 상위 규범의 본질적 가치를 압도할 정도로 실질적 작용력이 강해진다. 최하위 규정인 내규와 지침의 단계에 이르면 당초의 보편적 가치규범은 형해화(形骸化)되고, 수단적 가치만 남게 된다.
하위규범으로서의 내규와 지침이 상위규범보다 더 직접적 기준으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성원들은 하위규범의 작성 과정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규와 지침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가 한정되어 있고 관심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사회적 감시체계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서 만들어지는 이러한 하위규범들이 사회적 강자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작용,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주된 통로가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헌법과 같은 상위규범의 제정 및 개정 과정에서는 시민사회의 총체적 감시 속에서 여야당이 논리적 정당성을 다투게 됨으로써 비교적 공정하고 균형 잡힌 규범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사회적 감시가 결여된 밀실 속에서 만들어지는 내규와 지침의 작성 과정에는 반대 집단의 이익이 투입될 통로가 없다는 점에서 그만큼 공정성의 기준이 도외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내규와 지침이 행정실무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 하는 점은 1996년 정보통신부의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 및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 심사과정에 불거진 심사결과의 공정성 시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PCS 사업자선정과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선정 작업은, 두 사업 모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돼 관련 산업계의 초미의 관심거리가 되었었다. 이 두 사건 모두 해당 기관에서 자의적으로 만든 선정 기준이 문제가 되었다. PCS 사업자 선정과정에서는 특히 기존의 심사 기준을, 심사 도중에 기관장이 임의적으로 바꿈으로써 순위가 뒤바뀌게 된 것이 문제가 되었다.
1996년 당시 이아무개 정보통신부 장관은 PCS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성 시비로 그 후 구속·기소되는 홍역을 치렀다. 그는 PCS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청문심사 배점방식을 특정회사에 유리하게 변경하도록 지시하는 등 관련 업체들이 공정한 심사를 받을 권리를 방해한 혐의(형법 123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2001년 4월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구속영장에서 “이씨가 1996년 5월 PCS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LG텔레콤측에 유리하도록 심사요건에 ‘도덕성’ 항목을 추가하고 청문심사의 배점 방식을 ‘평균배점’에서 ‘전무 배점’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변경토록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이 장관은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및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이 PCS 사업자 선정 배점방식을 임의로 바꾸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로 인해 특정업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게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PCS 사업자 선정 심사 도중에 심사기준을 바꾼 것은, 마치 대학입시에서 가채점을 해본 결과 특정 수험생이 불합격될 것으로 판단되자 채점기준을 변경함으로써 수험생들의 당락을 바꾼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것은 명백한 부정행위에 해당된다.
2011년 1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심사 과정에서도 유사한 시비가 일었다. 보도채널 탈락사인 CBS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과 보도채널사업자 심사를 불과 1주일 만에 해치웠다고 하면서 심사기준과 심사위원의 구성 및 절차상의 문제점 등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모든 시비가 행정기관에서 임의적으로 작성되지만, 심사 과정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내규·지침과 같은 하위 규정의 공정성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내규나 지침과 같은 하위 규범 작성 과정에서의 공정성 확보에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법규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단, 000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등의 예외 규정이 군더더기처럼 붙지 않은 순수 규정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행정적·사회적으로 문제가 야기된 많은 사건들은 결국 사소한 단서조항에서 문제가 발단된 것임을 많은 경험이 증언해 준다.
또한 공정성 확보의 핵심요건이 되지만 하위규정에 위임됨으로써 기관장의 의중에 따라 임의대로 변경될 수 있는 심사 기준에 대해서는 보다 엄정한 제도 운영 장치를 마련한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사승진 기준이나 사업자 선정기준을 작성할 때는 그것이 비록 ‘사소한’ 하위규범의 소관사항이라 할지라도, ‘사전(事前)’에 특정기구의 ‘공정성 심사’를 거쳐 확정토록 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휴대통신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보듯이, 기관장이 임의적으로 바꾼 심사기준에 의해 탈락된 측은 그 심사를 어떻게 공정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며, 이러한 불공정 행위가 일선 행정기관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그러한 행위가 재량권의 이름으로 용인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정부를 어떻게 공정한 정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