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칼럼] “월가를 점령하라!” 함성이 다시 들리기 전에···
사회구성원들이 인식하기에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는 지도층의 부도덕성과 불공정성이다. 사회적 자원을 많이 점유하고 있는 강자 집단의 탐욕은, 2011년 서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시위에서 보듯이, 가난한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성숙된 선진 사회에서는 사회지도층이 스스로 부당한 특권을 포기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강조된다.
미국의 ‘재정 건전성을 추구하는 애국적 백만장자(Patriotic Millionaire for Fiscal Strength)’ 클럽은 2011년 7월 21일 뵈너(John Boehner) 하원의장 등에게 보낸 서한에서 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 부유층의 소득세율을 35%에서 최소한(at least) 39.6%로 올려줄 것을 촉구했다.?현재 미국의 납세자 가운데 연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백만장자는 1%가 채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 가는 부자로 알려진 버핏(Warren Buffett) 또한 2011년 8월 14일자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부자들을 애지중지하지 말라(Stop Coddling the Super-Rich)”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고통분담(shared sacrifice)을 요구했다. 그들은 그러나 고통분담을 요구해 놓고는 나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거부인 내 친구들에게 어떠한 고통을 각오하고 있었는지를 점검해 보았으나, 그들 역시 그냥 그대로 있었다(left untouched).?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를 위해 싸우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겨우겨우 살아가는 동안 큰 부자인 우리는 엄청난 세금우대(tax breaks)를 받아온 것이다. 투자매니저로 일하는 일부 우리 동료들은 하루 노동의 대가로 수십억 달러를 벌지만, 그 소득은 ‘보유이자(carried interest: 증권 지분 보유로부터 얻는 이자 수익)’로 간주됨으로써 15%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중략)
지난해 나에게 부과된 연방세, 즉 내 소득세와 내가 납부한 지불 급여세(payroll tax: 급료·임금 등에 대해 과세되는 세금)는 693만 8744달러였다. 엄청 많은 세금을 낸 것 같지만, 내가 납부한 세금은 내 과세소득(taxable income)의 17.4%에 불과하다. 그 세율은 실제로 내 사무실에 근무하는 다른 20명의 직원이 납부한 세금의 세율보다 낮다. 그들의 조세 부담은 평균 36%로, 33%에서 41%의 구간에 걸쳐 있다.”
미국 사회에서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최근 들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공정 경제 연대(United for a Fair Economy)’는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공공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1994년 창립된 전국적인 민간 기구다. 이 단체는 2004년 <나 혼자 이룬 것은 아니다: 개인적 부와 성공의 바탕을 이룬 사회의 공헌>(I Didn’t Do It Alone: Society’s Contribution to Individual Wealth and Success)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콜린스 등(Collins et al., 2004)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로텐버그(Martin Rothenberg)와 코헨(Ben Cohen), 그리고 버핏 등 성공한 기업가들의 말을 빌려 자수성가(self-made success)의 신화가 그릇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 보고서에 등장한 많은 사람들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전형적인 기업가들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사업적 성공이 그들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다른 많은 사회적 혜택을 입어 그렇게 된 것으로 믿고 있다. 공립학교 교육, 연구 및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투자, 근로자들의 헌신, 강력한 법체계와 재정시스템 등의 혜택을 입어 사업적 성공을 이룩했기 때문에 그 몫을 이제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인식이다.
또한 벤처자본가이자 젠자임(Genzyme) 회사의 전 CFO(chief financial officer)인 쉐르블롬(Jim Sherblom)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부(富)는 도로, 교통기관, 시장 등 모든 공공재와 공공투자를 활용하여 창출된다. 우리 모두는 선조들의 업적을 활용하고 있으며(We are all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all that came before us), 또한 후손들을 위하여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사회의 일부로서 (사회에 대한) 책무를 지고 있다.”
2008년 출판된 <불공정한 보상: 부자들은 우리들의 공동유산을 어떻게 탈취하였으며 우리는 왜 그것을 회수하여야 하는가>(Unjust Deserts – How the Rich Are Taking Our Common Inheritance and Why We Should Take It Back)라는 책에서 저자들은 더 공격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Alperovitz and Daly, 2008). 저자들은 부패한 정치, 공유되지 않은 국부(national wealth), 통제되지 않은 탐욕이 결합되어 경제적 불평등과 번영이라는 망상을 낳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부자들이 거둔 성공의 큰 몫은 사회 전체의 소유인 ‘상속된 지식(inherited knowledge)’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결국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유층이 누리고 있는 부는 사회 일반이 ‘도둑맞은 부(stolen wealth)’라는 것이다. 오늘날 월가의 금융자본가들이 누리고 있는 막대한 부는, 금융시장에서 얻은 이득은 개인화(personalize)하고, 그 비용은 사회화(socialize)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부실은행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은 그 부담이 궁극적으로 시민일반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측면에서 비용의 사회화라고 할 수 있다.
상위 1%의 부유층이 전체 국부의 35%를 차지하고 있고 상위 20%가 85%의 국부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같은 심각한 불평등 구조 속에서, ‘책임 있는 부(responsible wealth)’를 주창하는 일부 부유집단이 “나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라(Tax me more!)”는 운동을 펼치는 미국 사회는 그만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부유층이 비록 그들에게 닥쳐올지도 모를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계몽적 이기심’ 때문에 그러한 주장을 편다 하더라도, 그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불려 손색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