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칼럼] ‘교육사다리’ 붕괴된 대한민국 공정한가?
입학사정관제, 부유가정 학생에 ‘절대 유리’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강조하는 일단의 학자들은 동아시아 경제성장의 주요 요인의 하나로 ‘높은 교육열’을 내세운다. 전통적으로 동양사회에서는 교육이 주요 신분상승 통로로 작용하였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다른 사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공정한 사회로 인식되었던 것은 계층 상승 통로로서의 교육 사다리와 시험 사다리가 비교적 공정하게 작동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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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우리 사회의 교육 사다리는 큰 변화의 계기를 맞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대학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이 늘어나고 가난한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이 확대되는 것은 긍정적 방향으로의 변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있어 중등 교육 과정의 공교육이 황폐화되고 사교육이 활성화되며, 대학입시가 시험성적 위주의 선발 방식에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 복합적 선발 방식으로 바뀌는 것은, ‘형평성’ 기준에 초점을 맞출 경우, 부정적 방향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교육의 영역에서는 ‘수월성’과 ‘형평성’의 기준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대학입시에서 본고사ㆍ기여 입학제ㆍ고교등급제의 허용 여부를 둘러싼 이른바 ‘3불 정책’이 끊임없는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인의 발전’, ‘국가경쟁력 강화’, ‘대학의 자치와 자율’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국가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수한 학생들에게 그들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길러주는 수월성 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형평성’의 기준을 중시하는 반대 진영에서는, 학벌이 신분 상승 및 소득 수준 결정의 주요 수단이 되는 현실에서는 계층 고착화 및 부의 세습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여 입학제ㆍ고교등급제ㆍ본고사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들은 ‘3불 정책’의 포기가 초래할 ‘기회 평등 원칙’의 침해,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의 확대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확산, 공동체 연대의식의 붕괴, 자본의 논리에 의한 교육적 가치의 침해 문제 등을 강조한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대학 입시제도는 큰 방향 전환을 모색해 왔다. 시험성적 위주의 단순한 선발 방식에서, 입학사정관제와 같이 다양한 재능과 잠재능력을 함께 고려하는 복합적 선발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복합적 선발 기준은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적 역량을 측정ㆍ반영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많은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와 같이 복합적 기준을 적용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는 입시 제도는 가난한 학생보다는 부유한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게 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그동안의 입시 결과를 통해 드러났듯이, 외국어 능력, 경시대회 성적, 사회봉사 등 다양한 스펙(specification)을 폭넓게 쌓을 수 있는 부유한 집안 자녀들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또한 전형 과정이 상대적으로 덜 투명할 수밖에 없다는 더 큰 문제점을 지닌다.?
연합뉴스는 2010년 10월 19일자 기사에서 교수와 교사 가운데 60~70%는 입학사정관제의 확대가 특혜 시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한국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 한국교육학회, 한국교육행정학회 소속 교수·학자 203명과 현장 교원 7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수·학자그룹의 61.6%, 교원그룹의 70.4%가 입학사정관제 확대에 대해 ‘특혜시비 등의 우려가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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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교육비 분배지수, 참여정부의 62%에 불과
우리 사회에서 교육양극화 현상은 근년 들어 더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교육 부문의 5분위 분배율(소득 상위 20% 계층의 지출을 하위 20% 계층의 지출로 나눈 것)을 분석한 결과, 이명박정부 들어 ‘교육 양극화’ 현상이 훨씬 더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정부 시절의 분배지수를 100으로 할 때, 이명박정부의 교육비 분배지수는 평균 62.6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교육 기회의 공정성 확보에 초점을 둔다면, 대학입시 제도는 성적 중심으로 단순화하는 것이 저소득층에 유리하다고 하겠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험 성적 중심으로 입학전형을 하게 되면 오히려 학원비 등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하는 부유계층에 더 유리하게 된다는 주장을 펴나, 다양한 스펙을 활용하는 전형 제도보다는 그래도 객관성이 담보된 성적 위주의 단순한 평가 제도가 혜택받지 못하는 집단(the less-advantaged group)에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 새롭게 도입된 ‘입학사정관’ 제도가 사회적 계급의 대물림 수단으로 오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선발 기준의 타당성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동의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발 기준과 과정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한국사회가 공정한 사회적 경쟁을 통해 21세기에도 역동적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특권층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입학사정관제보다는 기존의 성적 기준 전형 제도를 더 확고하게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 사다리와 시험 사다리는 그나마 아직도 남아 있는 공정경쟁 장치이기 때문이다.
”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이제 없어진 것 같다는 자조적인 말이 오죽하면 많이 나올까. 부유한 집 자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입학사정관제가 투명성을 가지길 바라고, 가난한 집 자녀에게도 적합한 기회를 제공하길 바란다. 아울러 기존의 성적 기준 전형 제도를 더 확고하게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동참한다. 교육의 공정 경쟁 장치가 남아 있길 꼭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