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칼럼] 법조출신 의원이 변호사 일자리 늘리는데 ‘혈안’인 나라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연루된 사건의 재판관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nemo judex in causa sua; No one can be judge in his own case)”

19세기 독일의 로마법학자 예링(Rudolf von Jhering)은 저서 <로마법 정신>(Geist des r?mischen Rechts)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로마는 세계를 세 차례 제패하고, 세 번 여러 민족을 통합시켰다. 첫 번째는 로마민족이 융성기에 있을 때 여러 국가를 통합하였고, 두 번째는 로마민족이 이미 쇠망한 후에 교회를 통해 통합하였으며, 세 번째는 중세에 로마법 체계로 법률체계를 통합시켰다.”

로마법 체계로 세계 각국의 법률체계를 통합시킨 로마의 법언(法諺) 가운데 하나는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연루된 사건의 재판관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원칙에 따라 사법 절차에서는 재판부의 공정성이 의심될 경우 ‘재판부기피(recusal)’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었다.

그런데 우리 국회에서는 ‘사회적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이러한 원칙들이 무시되기 일쑤다. 대부분 변호사로 구성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과 직결된 변호사 선발 인원수를 결정하고 법률 시장의 개방 문제를 다루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한다.

교육과학위원회에서는 사설학원 원장 출신의 위원들이 학원 정책을 주무르고 있다. 물론 국회법 제40조의2는 “상임위원은 소관 상임위원회의 직무와 관련한 영리 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의원 자신이 직접적인 ‘영리행위’만 하지 않으면 되는 만큼 실효성이 없다. 또한 의원 가운데는 사업체의 명의만 타인으로 바꿔 놓았을 뿐 사실상 본인이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원 모두가 자신이 연루된 사건의 재판관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공익적 관점에서 법안을 공정하게 심의·의결해야 할 책무를 지닌 의원들이 자신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사익적 관점에서 일을 처리해도 그것을 제재할 장치가 없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겨 놓은 것과 같다. 입법부가 ‘불공정의 온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이해충돌 회피(avoiding conflict of interest)를 위한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입법부의 상임위원회 또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때 위원의 선임기준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없으나(국회법 제48조), 관례적으로 ‘전문성’을 고려하여 위원을 선임한다. 전문성을 기준으로 할 경우 법제사법위원회에는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배치되어야 할 것이며, 보건복지위원회에는 의사 출신 의원과 약사 출신 의원들이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입법부 위원회가 특수 직업 영역 출신 의원들로만 구성된다면 이해충돌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대기업의 이익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지식경제위원회를 장악하여 대기업에 유리한 법안만을 통과시키고, 농림수산식품위원회를 점령한 농촌 출신 의원들이 농민에 유리한 법안만을 다루게 된다면 국민 일반(public at large)의 공공이익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겠는가?

국회는 각 직능단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작은 이익집단의 대변 기구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국회 설치의 기본 취지는 각 직역 출신 전문가들이 끼리끼리 모여 모태(母胎)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싸우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과 도덕성을 갖춘 민주시민의 대표들이 ‘국익’과 ‘공익’의 차원에서 공공정책을 균형 있게 결정하도록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국회는 헌법기관으로서 헤겔의 이른바 일반이익(general interest)을 대표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부족한 전문성은 의원들의 판단을 도와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확보하면 될 것이다.

국회에는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각 상임위원회에는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위원’들이 배치되어 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각종 위원회는 당해 안건에 관하여 학식과 경험이 있는 3인 이내의 전문가를 심사보조자로 위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국회법 제43조). 그리고 의회의 여러 위원회는 공청회를 통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진술을 들을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입법부의 각종 위원회에,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의원들을 굳이 배치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해충돌 회피’ 원칙에 충실하자면, 오히려 특정 직역 출신 위원들을 배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운영의 묘를 살려, 전문 직역 출신 위원들에게 의견진술권은 주되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배제하는 것과 같은 기피(recusal)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법제사법위원회와 같이 구성원이 대부분 특정 직역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해관계 사안을 다룰 경우에는, ‘정무위원회’나 ‘특별위원회’ 등 이해관계를 벗어난 다른 위원회에서 결정하게 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법조 출신 의원들이 변호사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한 ‘준법(遵法)지원인제 관련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 것과 같은 ‘도둑정치(kleptocracy)’는 더 이상 방관해선 안 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제도의 기본틀을 설계하는 입법부부터 공정하게 구성·운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원회 구성 단계부터 제도적으로 의원들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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