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칼럼] 박근혜정부 관료-기업 ‘비리동맹구조’ 깰 수 있을까?
전관예우란 일반적으로 전직 판사 또는 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되면 그 수임사건에 대해 초기 일정 기간 동안 옛 직장 동료들이 판결이나 기소 과정에서 유리하게 처분을 해주는 법조계의 악습(惡習)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행정부 소속 퇴직 공무원들의 유사한 행태를 가리키는 ‘新전관예우’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퇴직 관료들의 역할은 대기업이나 세무법인 등에 고용되어 옛 직장 동료를 대상으로 단순한 로비활동을 벌이는데 그치지 않고, 고액 연봉의 법무법인에 취업하여 행정부 관련 쟁점 사건에 대해 유리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역할까지 한다. 심지어 이들은 조세 회피나 법규 회피의 ‘범죄적 수법’까지 전수하여 적지 않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전직 관료들의 이러한 행태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공정성을 훼손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자본에 의한 관료집단의 총체적 포획(capture)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신전관예우 문제의 심각성은 2011년 불거진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그 속살을 부분적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16개 부실 저축은행의 퇴출로 귀결된 저축은행 사건은 불법대출, 정관계 로비, 부실감독, 예금 및 투자자 피해 등 많은 사회적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서류상으로만 회사의 형태를 갖춘 120개의 종이회사(paper company)를 독립사업체로 위장하여 불법 대출 등 부실 영업을 일삼아 온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수많은 정·관·금융계 인사들이 비리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으로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이 현직 감사위원으로는 건국 이래 최초로 구속되고 김두우 대통령 홍보수석 역시 구속됐다. 정관계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것이다. 그리고 저축은행의 비리를 조사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 직원 여러 명이 수억원 또는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구속되었다.
감사 무마와 금융권 퇴출을 막기 위해 거액의 뇌물을 주고받은 불법 사건에 대해서는 응분의 사법처리를 하면 그만이겠지만,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감독기관과 피감기관 간의 제도화된 유착구조에 있다. 다시 말하면 공직재임 중엔 피감기관과 유착해 불법행위를 눈감아주고 퇴임 후엔 해당기관에 취업해 비리 은폐를 위한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비리동맹구조’가 문제다.
행정부 관료출신에 대한 전관예우 문제는 비단 금융감독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와 같은 경제부처는 물론 국방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비경제부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처에 연관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011년 5월, 김앤장 등 국내 인수·합병(M&A) 전문 대형로펌의 전문 인력 96명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세청 출신 전직관료가 53명으로 55.2%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공직에 재직했던 전문 인력 85명 가운데 72명(84.7%)은 퇴임 뒤 로펌에 재취업하기까지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경실련은 “공직자들이 퇴직한 지 1년도 안 돼 로펌으로 가는 것은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 문제와 똑같은 양상”이라며 퇴직공무원의 취업 제한 대상 업체에 대형로펌이나 회계법인도 포함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 전직관료들이 대형로펌과 대기업 등에 취업하여 ‘범죄적 수법’의 전수까지도 서슴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10년도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의원은 대기업에 취업한 전직관료들이 업무상 체득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회피 방법까지 기업에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직업윤리뿐 아니라 도덕적 해이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질타했다. 실제로 2011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를 떠나 한 법률회사로 자리를 옮긴 박아무개 전 사무처장은 짬짜미 의혹을 받고 있던 한 정유회사가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면제받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물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이러한 사건의 특성상 사법당국에서 공식적으로 개입하기 이전에는 그 사실 여부가 쉽게 확인되지 않겠으나, 억대가 넘는 거액의 연봉을 받는 퇴직 공직자들이 로펌이나 대기업에서 이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관련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현실적으로 후배 공무원들이 퇴직한 선배 공무원들의 청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11년 5월 여론조사기관인 현대리서치에 의뢰해 중앙부처 공무원 1676명을 대상으로 전관예우 관행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고위 공무원 24.3%가 퇴직한 전직 상관을 의식해 의사결정을 내린 경험이 있으며, 15.7%는 부당한 압력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답했다. 많은 국민이 공직사회가 부패했다고 생각하거나 정부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공직사회에 만연된 이러한 ‘청탁풍토’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퇴직 공직자들의 이같은 부당한 청탁과 야합 행태가 비록 현행법상으로는 위법한 행위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심각한 정책 왜곡을 초래하고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나라의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한 고위 공무원이 재직 중의 업무와 관련된 기업이나 단체에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4급 이상 공직자가 퇴직 후 외형거래액 150억원 이상의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에 취업하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도록 기준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 규정을 회피하기 위한 대응 행태 또한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유관 업무 근무경력을 세탁하기 위해 퇴직 전 일정기간 동안 업무 관련성이 없는 부서로 옮겨 근무하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2년 8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현행법 규정상 범죄로 규정하기 곤란한 자녀 취업 보장, 학비 대납, 장학금 지급, 고액 임대차 계약, 특허 공동 등록, 용역 발주 등 부패 행위가 다양화?은밀화?고도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전관예우 관행으로 행해지는 퇴직 공무원들의 불법행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종이제도화 되고 있는 퇴직공무원의 취업심사도 실효성 있게 강화되어야 할 것이며, 퇴직공무원의 부정한 청탁에 대해서는 보다 엄정한 사법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2011년 7월 개정된 우리나라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들이 퇴직공무원으로부터 부정한 청탁 또는 알선을 받은 때에는 이를 소속기관의 장에게 신고하여야 하며, 기관장은 신고된 사항에 대해 수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수사기관에 통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제18조의4).
문제는 우리 사회의 온정적 풍토 속에서 이러한 제도 개선책들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 당국의 강력한 법집행 의지가 없는 경우 이러한 제도 개선책들은 선언적 의미만 지니는 ‘종이제도(paper institution)’로 곧바로 전락해 버리는 것을 과거의 경험들이 증언하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의 강력한 법집행 의지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들이 나서서 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