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무장중립화’로 북핵문제 근본해결을

한미연합훈련 잠정연기는 미봉책···’동아시아 비핵화’·한반도 영세중립화 논의를

[아시아엔=이종수 한성대 명예교수, (사)팍스코리아나 연구소 소장, 한국행정학회 회장 역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핵을 둘러싼 게임 양상도 크게 바뀌는 것 같다. 오죽 다급했으면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까지 특사로 파견하여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고, ‘건군절’ 열병식을 축소하는 모양새까지 연출하였겠는가?

미리 얘기하자면 이러한 미봉책으로는 한번 틀어진 물길이 옛 흐름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 않다. 2월 9일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연회에서 펜스 미국 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한 테이블에 앉는 것을 거부하며 행사를 보이콧한 데서 올림픽 이후의 상황 전개를 짐작케 해준다.

올림픽 이후 핵과 미사일 실험이 언제 다시 시도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한미군사훈련이 언제 재개되면서 군사적 긴장이 어느 정도 더 고조될 것인가에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북핵 문제는 이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교착 상태에 빠지며 북측이 주창하는 핵보유국 지위가 주변국들에 의해 순순히 받아들여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북측이 ‘무조건 항복’을 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면 해결책이 보일 수 있다. 주체를 객관화시켜야만 상황을 바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조건으로 고리를 풀어야 한다.

한반도의 길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북핵문제는 만주·일본까지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무장(武裝) 영세중립화를 조건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영세중립화’는 국익을 앞세우는 미 국무부의,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시기마다 재등장하는 전통적 구상일 뿐더러 북측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방안도 될 수 있다.

또한 화평굴기(和平?起)를 내세우는 중국측의 안보 부담을 궁극적으로 덜어주는 방안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군부 및 국무성은 분단 이전의 해방정국에서도, 6·25 개전 초기에도, UN군이 38선을 돌파했을 때도 그리고 1953년 휴전협정 시에도 한반도 중립화안을 끊임없이 검토·제안하였다.

이와 함께 1960년대의 맨스필드(Mansfield)안에서도, 그리고 최근 부각된 키신저 안에서도, 비록 한국 언론에 의해 방향이 틀어지긴 하였으나, ‘한반도 중립화안’은 그 알맹이를 차지하고 있는 중심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한반도 중립화안’은 우리 사회에서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미국이 휴전협정 체결 후 ‘중립화 통일안’을 이승만 행정부에 제안하였으나 거절당한 뒤, 한국정부는 ‘중립화 통일안’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약소국들은 언제나 중립화를 부르짖은데 반해 강대국들은 동맹을 강압했다. 그러나 미국, 소련, 일본과 같은 큰 나라들도 세(勢)의 흐름에 따라 중립을 표방한 적이 없지 않았다. 벨기에 같은 힘없는 약소국은 중립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웃 강대국들로부터 유린당하기 일쑤였다.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내세웠으나 히틀러 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당했다. 약소국의 전시 중립화 ‘구걸’은 주변국의 웃음거리만 살뿐이었다.

그러나 스위스 같은 나라는 1815년 1월 이후 200년 넘게 다변적 국제조약에 의해 영세중립(permanent neutrality)의 지위를 지켜왔다. 그것도 ‘무장중립’을 강대국에 의해 보증받으면서. 오스트리아도 오늘날 관계국 간의 다변적 조약에 의해 영세중립국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핵 시대의 중립화는 여러 상황을 바뀌게 만들었다. ‘핵우산에 의한 종속’을 평화의 이름으로 호도(糊塗)하든 어떻든 이전보다 광범한 ‘비핵지대의 설치’를 필요로 한다. ‘한반도 중립화’를 주창하면서, 동아시아 전역의 비핵화를 조건으로 내세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무장중립’에 의해 자위권을 갖지 않는 약소국의 중립 표방이 얼마나 허망한 ‘구걸’인지 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의 조건으로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 무장 중립화’를 내세워야 하는 이유다.

국제적으로 중립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내적 여론의 통일이 중요하다. 현실정치(Real Politics)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동맹파를 자처할 경우 세상살이의 여러 이점도 있을 수 있다. 그만큼 중립화로 구성원의 소리를 모으는 일은 더 힘들기 마련이다.

평창올림픽을 단순히 ‘올림픽 휴전’으로 활용하겠다거나 한미군사훈련을 연기하는 잠정적 수단으로 이용하겠다는 등의 근시안적 접근으로는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도모할 수 없다. 돌파구 없이 꽉 막힌 북핵문제를 풀 길은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의 무장중립화에 있다. 그것은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좀더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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