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물 박사’ 김현원 교수의 평창올림픽 뒷담화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생명의 물, 기적의 물> <뉴패러다임 과학과 의학> 저자] 평창올림픽 많이 걱정도 했지만 개막식과 폐회식 모두 날씨가 춥지도 않고 쾌청했다. 올림픽 전후 통틀어 개막식과 폐회식 날만 날씨가 따뜻했으니 하늘이 도왔나보다. 나는 올림픽 개막식과 폐회식을 꼭 본다. 개·폐회식은 주최국의 모든 것을 집약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4년 넘게 준비하는 유일한 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다.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나는 영국 옥스포드에 있었다. 개막식이 끝나고 영국친구가 나 보고 이렇게 말했다. “참 자랑스럽겠다. 올림픽을 보면서 우리와 다른 당신들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운동회에서도 늘 하는 고싸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폐회식도 떠나가는 배와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들에게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5음계의 민요들과 이어지는 살풀이 춤에 대해서 영국의 캐스터가 처음 보는 다른 문화에 감탄하면서 칭찬하던 장면들이 생각난다. 서울 올림픽은 미지의 나라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전 세계에 처음 알리는 자리였다.
이번 올림픽 개·폐막식을 총감독한 송승환씨는 나와 비슷한 연배다. 초등학교 때 나는 남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했는데 송승환씨는 초등학교 때 이미 어른들과 함께 하는 대담의 사회를 보기도 했다. 그 모습을 TV에서 보면서 엄청난 열등감을 느꼈던 인연이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필자는 감동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평창올림픽은 서구와 다른 문화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면서 현재의 한국을 참 잘 알렸다는 생각을 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송승환 총감독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개막식 장면 가운데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는 어릴 때 모래를 만지면서 하던 노래이다. 새로운 IT혁명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이 노래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2008년 런던올림픽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영국사람들은 얼마나 자부심을 느낄까? 전 세계가 영어를 사용하고, 산업혁명을 처음 시작했으며, 우리의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수많은 과학자들과 발명품 상당수가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문화적으로도 비틀즈를 비롯해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절반은 영국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비롯해서 오늘날 민주주의 틀이 이 나라에서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니 공산주의 이론도 마르크스가 영국의 대영도서관에서 완성했다. 의사당이 좁아서 많은 의원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 있어야 하면서 상대방에 우우 하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 상대에 대한 야유소리에 가발을 쓴 국회의장이 오다 오다(Order)를 외치는 모습도 신기했다. 개에 디지털코드를 주사해서 개를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국회에서 심각하게 오갈 때 한없는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평창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올림픽에서 뭘 보여줄까 이런 생각을 했다. ‘측우기와 같은 발명품들이 나올 건가? 그건 안 되는데···. 얼마나 자랑할 것이 없어서 측우기 같은 걸 발명품으로 보여주나?’ 이태리의 카스틸리오네 라는 이름의 측우기의 발명가 이름까지 기억해야 하는 상황이 나는 어릴때부터 부끄럽게 느껴졌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발명품이 있었는가? 2가지가 분명히 떠올랐다. 바로 한글과 금속활자이다. 우리나라가 급속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한글이라고 볼 수 있다. 한글로 인해 문맹이 사라질 수 있었다. 일본만 해도 문맹을 벗어나려면 적어도 1000자는 알아야 하고, 중국은 3000자를 기본으로 외어야 한다. 한글은 그야말로 자음 14개, 모음 10개 등 기본 24자만 알면 평범한 사람도 글자를 만들수 있고 읽을 수 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발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의 위대성은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금속활자의 중요성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에서 종교혁명이 일어난 배경에는 금속활자 발명이 있었다. 문서를 쉽게 인쇄할 수 있게 되면서 성경을 성직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측우기를 발명한 사람을 전세계에서 한국사람만 기억하지만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구텐베르그보다 200년이나 앞서서 금속활자를 발명한 나라라는 사실만으로도 전세계인이 깜짝 놀랄 것이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주제가 바로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다오”였다. 우리나라가 IT강국이 된데 한글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글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는 우주의 근본원리로 모음이 만들어졌고 소리를 발생하는 발음기관의 형태로 자음이 만들어진 과학의 산물이다. 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문화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유일무이한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더구나 과학적 조어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판들이 최소한으로 배열될뿐 아니라 한 자판에 같은 계열 소리를 내는 음소들이 배열되어 단순한 소리와 복잡한 소리가 서로 연결되면서 만들어진다. 서로 의미없는 알파벳들이 자판을 공유하는 영어를 비롯한 서구의 언어와 비교하더라도 컴퓨터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든 IT기기에서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개막식에 5명의 아이들 앞에 홀로그램으로 나타나는 한국의 문화유산 가운데 훈민정음도, 금속활자도 있었다. 하지만 훈민정음과 금속활자의 경우 1분만이라도 더 할애해서 헌집으로부터 새집으로 이어지는 다리로 연결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마음대로 어떤 주제든지 얘기할 권리를 갖고 전세계 수십억명이 시청하는 자리였는데, “한국의 독특한 문화뿐 아니라 한글과 금속활자라는 시대를 앞선 대단한 발명품들이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소개하고 각인시켜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는 이번 평창올림픽에도 바쁜 핑계로 경기장에 가지 못하고 TV 중계를 통해 경기를 관람했다. 믿기 어려운 얘기이지만 나는 사실 스포츠 전문가이다. 40년 전의 스포츠 사건들을 지금도 그대로 얘기해서 주위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만…) 언젠가 올림픽의 육상에 관해서 책을 쓸 계획을 하고 있다.
나는 한국선수들 경기 외에도 다양하게 거의 전 경기를 지켜본다. 그런데 항상 불평을 토로하지만 이번에는 한국팀만 편향중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다. 중계되지 않은 경기는 ‘다시보기’로 보려고ㅠ 노력하지만 ‘다시보기’로 볼 수 없는 귀중한 장면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체코의 레데스키는 알파인 스키 수퍼 대회전과 스노우 보드에서 우승했다. 스노우 보드와 알파인스키는 육상선수와 수영선수가 다른 것만큼 다르다. 그러나 레데스키는 완전히 다른 2개 종목에서 우승하는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기록을 세운 것이다. 레데스키는 알파인 스키 수퍼대회전에서 깜짝 우승 후 고글을 벗지 않고 인터뷰했는데 자신이 메달을 딸 가능성이 없어서 인터뷰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화장을 안 했다고 했다. 이처럼 경기 후 인터뷰 장면은 있었으나 막상 레데스키의 경기장면은 ‘다시보기’에도 없었다. 나는 결국 유튜브에서 찾아서 겨우 보았지만 경기 중에 일어나는 실제 상황을 보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것들이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는 안타까웠던 대목이다.
더구나 아직도 금메달 숫자를 세며 한국의 순위가 몇위라고 강조하고, 목표가 얼마인데 달성했네 못 했네 하는 얘기를 매스컴에서 들을 때, 한국의 국민에 비해서 아직도 언론은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언론 뿐 아니라 아직도 국민을 이끌어야 할 정치와 종교 등에서 오히려 국민의 의식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이번 올림픽 기간 북한응원단이나 통일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은 올드 세대들과 정말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도 느꼈다. 하긴 세계최빈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와 같은 세대와 티없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한편 이런 세상을 만든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자부심도 느낀다. 우리의 젊은 세대가 세상의 주역이 될 때 우리의 문화 정치도 바뀔 것으로 기대해 본다. IT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다오”를 기대해본다.
이번 올림픽에 직접 경기장에서 관람하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대기업 사장 출신이자 정부고위직에 있기도 했으며, 교수이면서 자원보상자로 참가한 내 친구를 보면서 다음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는 어떤 식으로든 참가할 것을. 다짐한다. 내 생애에 우리나라에서 한번만 더 올림픽이 열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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