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칼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조 법조계

돈에 오염되어 공정성을 상실한 법조계의 실망스런 풍토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 ‘유전무죄·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다. 돈 많은 사람들은 죄가 있더라도 판검사에게 뇌물을 주거나 유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처벌을 면하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재벌그룹 총수들이 저지른 비리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은 사실을 기억하는 상당수의 시민들은 실제로 우리 사회가 ‘유전무죄’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경제력의 유무가 사법적 판단의 기준이 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꿀 수 있는 사회를 우리는 결코 공정한 사회로 볼 수 없다.

물론 법조인 가운데는 엄정한 자기 관리를 통해 사법적 정의 구현의 전범(典範)으로 칭송받는 사람이 없지 않다. 46살의 이른 나이에 타계한 ‘대쪽판사’ 한기택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남편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 관용차를 배정받았으나 한 번도 동승의 기회를 갖지 못한 한 판사의 부인은 급기야 “동네 한 바퀴만 돌아보자”고 청했다는 것이다. 부인의 이러한 간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한 판사는 자녀들조차 관용차에 한 차례도 태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장례식날 장지로 가는 고인의 부인에게 동료 판사가 관용차를 타도록 권했으나 부인은 “남편이 원하지 않을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세계일보>는 2006년 7월21일자에서 보도했다. 이와 같이 공사(公私)를 분별하는 많은 법조인들은 엄정한 입장에서 공정하게 판결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사법적 질서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법리적 측면이나 상식 차원에서 조금도 그릇됨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은 1심 판결의 결과가 고등법원에서 정반대로 뒤집어지고, 그 재판을 담당한 고등법원 판사가 재판 바로 다음날 사표를 낸 뒤 자신이 손들어준 측의 법무법인(law firm)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판결 결과를 누가 공정하다고 하겠는가?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것이 우리 법조계의 현실이다. 사법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임계점(臨界点)을 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에 비치는 법조계의 모습은 혼탁하기 그지없다. 최고권력층의 사돈 기업으로 불리는 효성그룹 2세들의 회삿돈 횡령 사건이 불거졌으나 검찰은 상당 기간 손을 놓고 있었으며, 여론의 질타로 마지못해 수사가 진행됐지만 수사가 지연되는 사이 핵심 공소사실의 공소시효가 지나 결국 법원의 면소 판결에 빌미를 줬다.

‘그랜저 검사’, ‘스폰서 검사’처럼 검찰 내부인사가 관여된 비리사건은 ‘봐주기 수사’로 눈총을 사고 있다. 건설업자로부터 사건 청탁 대가로 그랜저를 선물받은 정아무개 검사는 뇌물 혐의로 고발됐지만,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고발된 지 1년 3개월이 지난 2010년 7월에 무혐의 처분을 했다. 물론 이런 사건은 검찰 내부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특수한 일부 사례에 불과한 것이겠으나,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특수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사법적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벤츠 여검사’ 사건은 사법적 공정성이 법조계 이면의 어두운 거래에 의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 속살을 보여준 씁쓸한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현직 여검사가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로부터 법무법인 명의의 벤츠 승용차를 수년간 빌려 타고 다니면서 법인카드도 받아 수천만원씩 사용하였다. 서로 주고받은 문자의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해당검사가 변호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판사ㆍ검사ㆍ변호사 간에 이루어진 검은 거래의 과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건 담당 검사에게) 뜻대로 전달했다, (해당 검사가 구속)영장청구도 고려해 보겠다고 한다”, “나쁜 인간, 둘 다 기각했다”, “정의감이라곤 없는 판사들 만만한 사람만 구속하나”

문제의 여검사는 고가의 샤넬 가방을 산 뒤, “백값 보내달라”며 자신의 은행계좌번호를 알려주면서 가방 값 540만원을 문자로 요구하기도 하였다. 보도내용대로라면 사법적 정의가 사건 당 얼마씩의 금전적 가치로 환원되어 거래된 것이다. 법조계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허물어버린 우울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다.

재판과정에서 돈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유리한 판결을 받게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일반적 인식이다. 피고인에 대한 형량을 정하는데도 경제력의 유무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사람들은 믿고 있다. 현대차그룹 회장의 횡령 배임 사건에 대한 2008년 6월 판결과 삼성그룹 회장의 배임 및 조세포탈 사건에 대한 2009년 판결 결과를, 많은 사람들은 유전무죄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2012년 8월16일에 있은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2부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한 징역 4년의 선고 및 법정구속 판결은 대기업그룹 총수에 대한 유전무죄 판결 관행이 바뀔 수 있다는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에서 재벌총수가 관련된 사건에서 재벌총수들은 ‘경제·사회적 공헌도’를 구실삼은 판결에서 한결같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정찰제 판결’을 받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우리나라의 10대 재벌 그룹총수 가운데 7명이 총 22년 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집행유예마저도 추후 대부분 사면으로 이어졌다.

근래 법조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사회 각 부문의 부패도에 관한 인식조사(2010년)?는 사법부 71.1%, 입법부 67.7%, 행정부 64.6%의 순으로, 사법부의 부패도가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부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인식되어 온 사법 영역의 부패도가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 이 조사결과는 또한,? 2005년 이후 법조인의 부패도가 정치인보다는 낮으나 경찰공무원, 세무공무원의 부패도보다 크게 높은 것을 나타났다.

사법부는 사회적 공정성 확보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공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여야 한다. ‘정의와 형평’이 살아있는 공정사회의 구현은, 모든 사회구성원에 대한 엄정하고 공정한 법 집행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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